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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31. 2017

치약 사랑 취향 사랑

작은 사치를 부리다


살면서 자주 행복하다 느끼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은 가끔씩 작은 사치를 부리는 것이다. 예상 비용을 훌쩍 넘어서는 미용실에 가는 돈은 너무도 아까워하지만 5만 원짜리 샴푸를 구입하는 데는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맞이하는 상쾌하고 뽀득한 그 향과 느낌이 마음을 그렇게 평온하게 할 수가 없다. 이 샴푸로 두 달이 넘도록 매일이 행복하다면 그 정도는 크게 비싼 값을 지불했다고 볼 수 없다고 확신한다.

   

또 하나는 여행에서 돌아올 때 나만을 위한 기념품으로 여성용품, 치약 등의 생활용품을 사 오는 것이다. 저렴하면서도 질이 좋고 현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알 수 있는 이런 용품들은 나의 여행을, 여행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지속시켜준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물건은 잊어버렸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좋고, 매일 쓰는 용품은 매일 거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서 좋다.      


‘작은 사치’와 ‘기념품’, 이 두 가지가 접목되어 무엇보다 큰 기쁨을 주는 아이템이 바로 ‘치약’이다. 치약은 생활필수품으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지만 2~3천 원짜리부터 만원이 넘는 것까지 그 가격대의 편차가 꽤 큰 편이다. 그렇게 자주 사야 하면서도 일부 잔여물이 내 몸에 흡수되기도 하니 질 좋은 것을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을 비롯해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해 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남편으로부터 나오는 글 소재가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치약에 눈을 떠 그 차이를 알게 된 건 대략 15년 전 쯤 이었을 것이다.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닐 때 방문 판매를 생업으로 하던 한 아이의 모친이 스킨케어 제품을 권하시며 치약 하나를 서비스로 나눠주신 것이 계기라고나 할까? 우연찮게 접한 그 치약은 나중에 알았지만 유명 호텔에도 구비되어 있을 만큼 질은 보장된 것이었기에 그 당시 내 관심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평상시에 쓰는 치약과는 다르지만 그걸 설명할 길이 없던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치약을 구입해 썼고 그때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 두 배에 해당하는 치약 값에도 불구하고 몇 개나 구입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는 했다.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고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정보를 주고 싶어 하는 성격 탓에 그렇게 오지랖을 펴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치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그 치약을 꾸준히 썼다. 가끔은 선물로 받은 프로폴리스 치약이 있으면 또 그것에 빠져 비슷한 것을 구해 써보기도 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치약을 사서 쓰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또 한 번의 계기는 5년 전 신혼여행에서 찾아왔다. 돌아오던 날 남은 동전을 없애려고 마지막으로 들른 마트에서 우연히 고른 1.5 유로짜리 치약을 만난 것이 그다. 그 치약은 그동안 내가 쓴 치약 중에 여러 면에서 단연코 최고였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저렴하고 질 좋은 치약이 없는 걸까? 그 치약을 더 사 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만약 이탈리아에 다시 간다면 유명한 장미수보다 오히려 그 치약을 잔뜩 사 오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자연스레 나는 더 이상 흔하게 살 수 있는 치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유기농 제품을 파는 사이트에서 영양제만큼이나 여러 종류로 사 모은 것이 치약이었는데 거기서 살 수 있는 치약이 대부분 6천 원에서 8천 원대였으니 분명 소비욕이 발휘된 것임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치약을 사는 것은 나에게 작은 사치이자 고집이었고 가끔은 알뜰하거나 검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비싼 치약을 구비해두고 쓰는 내게 남편은 크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결혼 본식에 대여비만큼도 안 되는 15만 원짜리 드레스를 입고 들어가고, 200만 원짜리 아이 성장앨범 같은 건 눈길도 안주는 나라서 남편에게는 아내가 돈을 허투루 쓰진 않는 사람이라는 일말의 믿음 같은 것이 있었던 듯하다. 아니면 싸워봤자 어차피 자기 맘대로 할 거란 걸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쾌적하고 아늑한 것은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본능에 따라 남편은 그 치약들과 이외의 가글 제품들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습관처럼 치약을 이용해 화장실 청소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남편은 글의 소재를 위해 여러모로 고군분투한다.) 아, 아무리 허용된 사치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치약으로 마감 청소를 해야 개운하다는 남편을 위해 나는 잠시 그 사치부리기를 멈췄다. 다시 한번 치약을 알아봐야 할 때가 왔다. 저렴하고 질 좋은 치약이 필요했다.    

  

그렇게 치약에 대한 고민이 짙어질 무렵 거기에 새로운 계기 하나가 다시 추가된 건 작년 초여름 필리핀에 선교사님을 뵙고 다녀온 직후였다. 노동력과 물가가 싼 그곳에서 유난히 비싼 제품이 바로 치약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았다. 한국 제품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치약을 구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순간 치약을 사다 팔아 이문을 남겨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장사보다는 선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마트를 가거나 사이트를 둘러볼 일이 있으면 치약의 종류와 가격을 좀 더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값은 부담스럽지 않은데 그에 비해 용량도 크게 적지 않고 거품도 잘나면서 양치질을 하고 나면 입안이 개운해지는 그런 치약이 없을까? 하지만 그런 치약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사이 국내에서 널리 사용하던 치약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단 소식을 접했고 나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치약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가족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우리가 머문 숙소에서 호스트가 준비해 놓은 치약을 만났다. 포장디자인과 색감도 시원스러운 이 치약은 써보는 순간 마트에 들르면 ‘반드시 찾아내야 할 품목 1순위’로 떠올랐다. 손님용으로 구비한 것이니 분명 값비싼 제품은 아닐 테고 비싸지 않으면서 이 정도 퀄리티라면 내가 찾던 바로 그 치약이 될 수도 있다는 직감이 왔다.       


대형 쇼핑몰의 한 드럭스토어에서 다른 제품을 구경하다 드디어 치약을 찾아냈다. 순간 가격표를 보고 그 저렴한 가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금액은 천오백 원!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정도 값이라면 청소를 해도 용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마저 스쳤다.) 맘 같아서는 한 삼십 개 정도 싸들고 오고 싶었지만 세 가족 짐에 신발만 종류별로 열 켤레가 넘는 상태에서 도저히 욕심껏 집을 수가 없어 우선 다섯 개만 담았다.       


한 달간 사용한 지금, 샴푸하는 시간만큼 양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치약은 값을 떠나 어떤 건 너무 맵고, 어떤 건 흡사 찰흙 같은 질감을 보이고, 어떤 건 개운함이 전혀 없어 나를 당황시킨다.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무조건 좋지도 않고 정말 써보지 않고는 그 결과를 알 수가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이기까지 해서 너무나 어렵다. 한동안은 치약으로 인한 내 방황이 이것으로 잠시 멈출 듯하고 현지만큼 저렴하진 않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제품으로 구매대행이 가능한 듯 하니 조만간 필리핀에 선물도 가능할 것 같은 예감에 글을 쓰는 내내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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