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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r 29. 2017

노력했지만 결국 떠나버린다

피부 노화 마주하기 그리고 극복하기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문득 마주하는 상실감늘 피어나는 결핍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럴 때마다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조금 커서 덜 아등바등 거리며 살 수 있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사소한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생활면에서도 여유가 깃들어 이만하면 됐다 싶은 순간이 찾아오자 여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상실과 결핍’이 있었다.  

    

아이를 출산한 뒤 체중이 불어나고 몸매가 망가져서 슬프다고, 그 슬픔에 지지 않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지 9개월이 흘렀다. 어느덧 운동은 습관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그렇게 널뛰던 체중이 안정화되고 체형에 균형이 잡히자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피부 노화’였다.      


몇 년 전 양 쪽 눈 밑에 자리 잡기 시작한 비립종을 처음 보고 엄마는 그거 좀 없애야겠다고 성화였지만 얼굴 전체적으로 눈에 뛸 만한 다른 얼룩이 많거나 하진 않아 생김새 가지고 유난 떨지 말자 싶어 그냥 한 귀로 흘려들었다. 엄마가 물려준 '나쁘지 않은 피부'를 믿고 나름 자신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눈 뜨고 일어나 마주하는 피부가 하루가 다르게 퍼석해지고 눈 밑 입가에 잔주름이 늘고 무엇보다 윤기를 잃고 칙칙해지자 나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 이제 좀 여러 가지로 안정이 되고 먹고 살만 해지니까 외모에만 신경을 쓰는 여자. 어쩔 수 없는 ‘중년 아줌마’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덜 바르고, 시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늙어가자고 언제든 찾아오는 주름과 노화를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마음은 금세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어쩜 얼굴이 이렇게 됐을까나.    

  

뭐에 이끌리듯 화장대를 정비하여 제일 먼저 갖춘 것이 기초라인 ‘세트’였다. 유기농 화장품으로 간단하게 보습만 하고 아주 가볍게 커버만 하고 다니던 나는 얼굴에 치덕치덕 바를 무언가가 필요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하는 계절 탓도 있었겠지만 묵은 각질이 허옇게 올라와 얼굴이 뜨기 시작해 고민하는 내게 ‘피부가 뽀얗게 빛나는’ 선임이 추천하는 오일클렌징도 낚아채듯 구매했다.    

건조함과 각질도 문제였지만 이번에 치고 올라온 고민거리는 다름 아닌 ‘기미’였다. 낼모레 마흔이라는 나이를 피부는 색깔로 드러내 주었고, 최근 휴양지와 아이가 지내는 시골을 연달아 다녀오면서 강한 햇볕에 노출되어 의식하지 못한 사이 눈에 띄게 짙어져 있었다.


'속이 화끈거리더라니. 느낌이 오더라니' 거울을 볼 때마다 그렇게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한숨이 늘어나던 사이 상담을 온 한 업체의 급격한 매출 상승 요인에 대해 이야기하다 ‘기미 크림 원료’가 효자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구세주를 만난 듯한 기쁨에 상품명을 받아 바로 온라인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제 기초로 수분 좀 채우고 오일로 잘 닦아내고 기미 크림으로 화이트닝까지는 됐는데 얼굴에 영양을 줬으면 싶었다. 공부 잔소리는 없던 엄마가 목욕가자를 외치고 눈 마주치면 내 얼굴에 발라주던 십 수년 전 엄마 마사지 크림이 생각이 났다. 그 제품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막연하던 차에 우연히 본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그 제품을 ‘추억의 크림’으로 포장해 파는 것을 보고 나는 뭐에 홀린 듯 마사지 크림 세 단지를 주문했다.


피부 변화를 감지하고 이 모든 일이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났다. 그리고 모든 관심과 시간을 온통 피부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런데 딱 일주일이 지나자 결과가 나타났다.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온다. 망했다. 평상시보다 과한 유분을 만난 데다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고 너무 살피니 피부도 피곤할 터였다. 멈춰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피부 속이 건조해 먹는 콜라겐도 구매하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돈 굳었다고 좋아해야 하나? 어찌 됐든 이쯤에서 그만해야 했다. 그 무렵 내 관심을 알아챈 동생한테서 얼굴이 환해진다는 크림을 선물 받고도 마음이 무겁고 씁쓸했다. 바르는 순간 화색이 도는 느낌을 두고 기쁜 마음보다는 서글픈 마음이 든 것이다.


어렸을 때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얼굴의 광이 이젠 돈을 들여 효과를 흉내 내야 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옷을 정리하며 나를 떠나보내던 그때처럼 나는 크림 한 통을 눈앞에 두고 다시 한 번 젊음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 이젠 나이들어도 멋진 사람을 롤모델로 찾으면 되지.' 노화를 마주하며 인간의 유한함을 깨달았다면 너무 심오한 접근일까? 사실 전혀 신경 못쓰던 때보다 피부가 조금 매끈해진 것도 같다. 처음부터 예뻤던 적 없던 아이가 지금까지 사랑받으며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외모가 아닌 다른 매력과 경쟁력을 갖추는데 매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는 건 절대 값싼 자기 위안이나 자조 섞인 포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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