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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r 17. 2017

차와 함께한 두런두런 우리 이야기

하나를 놓으니 둘이 되어 돌아왔다


차를 바꿨다. 아니 타던 차가 망가졌거나 매매로 정리를 한 것은 아니니 차가 ‘생겼다’는 말이 더 맞겠다. 지인 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작년 가을께 느닷없이 내 눈앞에서 유턴을 하는 빨간 차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쳐다본 적이 있다. 슬로 모션으로 각인된 이름도 모르는 그 ‘빨간 차’는 어쩐 일인지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어 잊히질 않았고 그 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여보, F.I.A로 시작하는 차가 모야?”      


남편의 입에서 바로 나온 브랜드 이름. ‘아, 그렇게 예쁜 걸 돈 많은 누가 혼자 타는 건 아닌가 보구나. 최소한 한국에서 구할 수 있긴 한가 보네.’ 처음 본 차에 대한 기대이자 감탄이었지만 분수에 맞는 삶에 익숙한 나는 더 이상 차 생각이 진행되는 것을 멈췄다. 가격의 압박 때문에라도 그 차를 구매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지만 여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굳이 차 두 대를 굴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차 이쁘더라고”      


정말 예뻐서 예쁘다고 혼잣말을 했던 것뿐이었는데 그 말을 계속 기억하고 있던 남편은 결국 어제저녁 그 차의 차키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빨간색에서 검은색으로 색깔만 바뀐 채였다. 바라면 정말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일까? 아니 분수를 알고 바라지 않아서 준 선물일까? 이러니 힘들고 막막한 인생이라도 살수록 재밌고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십여 년 전 업무상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해야만 했던 것이 힘에 겨워 급하게 마련한 중고차를 일여 년 만에 처분하고는 꽤 오랜 기간 운전을 하지 않고 지냈다.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기를 꼬박 4년. 새로 구입한 첫 차도 생각지 못한 시점에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왔었다.  

     

이직할 직장에서 면접을 보고 겨우 찾아낸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앉아 덜덜 떨며 버스를 기다리길 몇십 분이 흘렀을까. 텅텅 빈 버스 한 대가 정류소를 지나다 내 앞에서 멈춰 서더니 탁- 하고 문이 열린다. 운전수 아저씨가 큰 소리를 나를 불렀다. “아가씨! 거기 앉아 있다 얼어 죽어요!” 그리곤 나를 태워 차가 많이 다니는 길가에 내려주시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개발이 한창 중이던 삼둥이로 유명해진 그 지역에서 버스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게다가 내가 앉아있던 그 정류장은 그 당시 정식 정류소도 아니었다.      


‘이 회사를 다니려면 차가 필요하구나.’ 나는 차를 계약하고 나서야 회사 건물과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나만 모르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접하게 되었다. 난 대체 이런 정보도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무슨 수로 살아남은 걸까?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으며 내 특기인 합리화를 발동시켰다. 장거리 출퇴근 거리보다 같은 지역 내 애매한 거리가 오히려 차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자고.       


우리의 첫 번째 차

경차는 조금 작다 느껴졌고, 그때도 성능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박스형 차를 선택했는데 곧 닥칠 대출금 납입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잊을 만큼 차량 구매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회식이 있던 어느 날 내 차에 올라타 “지나는 길에 좀 내려줘요.” 지시인지 부탁인지 애매한 말투를 던지던 그 선배를 만나기 전까진. 그리고 그 선배는 내게 차를 사 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카풀을 할 만큼 가까운 동네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절을 하기에는 애매하게 같은 방향이라 어쩌다 보니 몇 번 태워주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뚜벅이 었던 남편은 회사 입사 2년 차로 사회초년생의 참으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었다. 관심없던 그 사람이 궁금해질 무렵 대중교통 이용에 저녁 값을 아끼고 심지어 데이트 비용마저 부담을 느당시 남편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남편은 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차 한 대를 살만큼의 돈을 아직 모으지도 못했고 형편상 바라서도 안 되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자기의 차를 갖고 싶다는 남편의 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고 남편은 결국 차를 계약했다.   

우리의 두 번째 차

그러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둘 중 한 사람의 차를 정리해야만 하는 때가 왔다. 같은 회사를 같은 동선으로 이동하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양가 도움 없이 결혼비용을 부담하려면 뭐 하나라도 지출을 줄여야 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남편은 결혼자금으로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차를 팔 생각부터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차를 팔겠다고 했다. 고민의 시간도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 사람의 차를 팔게 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에게 차는 남편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이것저것 가져보다 ‘한 가지 더 갖게 된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그 차는 ‘처음이자 전부’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더라도 와이프의 차를 받아서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차를 계속해서 운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의 입사 선물이었던 차와 헤어지며 더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빌었다.      

우리의 세 번째 차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조금 더 크고 튼튼한 차를 사자고 말했다. 아파트 대출금과 아이 양육비가 앞으로 더 무겁게 우릴 짓누를 테지만 나는 현재의 필요와 만족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지나가는 SUV만 쳐다보고 살았다. 똑같은 차를 보고도 차이점을 끄집어내고 다르게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차에 문외한이던 내가 지방 여행지에서 눈에 띄는 차를 가리키며 “저거 멋지다!”라고 말하자 남편은 바로 그 차를 계약했다. 그 차값을 갚기 위해 우리 자산의 전부인 안정된 직장이 망하지 않길 밤마다 비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2년 간 우리와 동고동락 한 그 차가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우리의 네 번째 차

남편이 제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우리에겐 세컨드 차가 필요하게 되었다. 나는 조금 저렴한 차를 알아보자 했지만 남편은 무리해서 내가 ‘예쁘다던’ 그 차를 선택했다. 이례적인 프로모션과 맞물려 계획한 금액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아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었지만 앞으로 더 벌게 될 거란 확신으로 자신의 가치와 맞바꾼 고마운 결정이라 조금 특별했다.      

채용 일정을 마무리하고 짐을 실어 다시 제주로 떠나야 하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음 주에나 가능하겠다던 차량 인수 가능 일자가 어제로 정해지면서 다행히 남편과 함께 차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혼자서도 잘 해내는 씩씩한 나였지만 함께 설명을 듣고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꽤 의지가 되고 또 다른 시작을 같이 할 수 있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퇴직선물이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미 퇴직금의 일부를 여행경비로 써버렸고, 나머지 퇴직금으로는 차량 금액의 반도 해결 안 된다는 계산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남편의 의기양양함을 받아주었다. 정말 퇴직금으로 사주어서 퇴직 선물이 아니라 사내 부부로서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단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기 때문이었다.  


다시 새로운 차를 마주하며 몇 대의 차들과 함께 했던 지난 우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갑자기 만나게 된 첫 번째 차, 조금 무리해서 얻은 두 번째 차, 정말 필요해서 구입한 세 번째 차, 그리고 선물 같은 지금의 차, 그 어느 하나도 그냥 온 것이 없고 우리에게 이야기가 되어 지금 이 순간마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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