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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12. 2016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뜻

King's Kids Christian Academy


바탕가스에 가자고 했다.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당신과 아이와 셋이서 그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제2의 고향 같은 그곳을 보여주고 싶다며 상상 속 광경이 눈앞에 닿은 듯 몰입해 말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맛난 열대과일을 실컷 먹게 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진 몰랐다. 언젠가 언젠가 하며 시간을 보내면 그냥 바라는 소망만으로, 좋은 계획 하나를 달고 사는 그런 상태로 남아있어도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일정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필리핀 바탕가스에는 약 30여 년 전부터 아이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와 교회를 짓고 필리핀 문교부로부터 인가 받은 사립학교를 헌신적으로 운영해 오시는 선교사님 부부가 계시다. 남편은 9년 전 현지에서 우연한 기회로 선교사님 내외를 만난 후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분들을 방문해서 얼굴을 뵙고 새로 짓고 있는 학교에 쓰일 약간의 건축헌금을 전달하고 지내다 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나는 입장을 잡기가 참 애매했다. 나약한 믿음으로 아직까지 공부가 더 필요한 내가 느닷없이 선교라니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부담을 갖지 말라고 했고 한국에 잠깐 들어오셨을 때 나를 처음 보신 선교사님 부부는 그저 다니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입 밖으로 선교를 간다는 말을 하기까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저 열대과일을 먹으러 가는 건 아니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어쩌면 잘 알지 못하는 선교에 대한 편견에 얽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교지에 대단한 헌금을 내거나 현지 사람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야 하는 것, 그리고 애써 땀을 흘려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하는 것 등 내게 선교란 편치 않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괜찮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거니와 주도적으로 주변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기분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서로 종교적인 얘기를 꺼내지는 않지만 크리스천임을 알고 있는 지인 언니는 내가 선교를 가게 됐다는 말에 현지 아이들에게 줄 만한 물건들을 담아봐야겠다 하면서 다음 말을 아꼈다. 그 침묵의 의미를 알 것 같아 내 입장에 대한 속내를 먼저 밝히니 언니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다들 선교는 무슨, 자기들이 놀러 가는 거 아닌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던 그 말을 실제로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내가 무얼 하러 가는 건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걸 아이 짐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놀고 싶은 거구나.  

    

햇빛이 강하고 모기에 물릴지도 몰라 챙이 넓은 모자와 모기 패치를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안가에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나라인데 잠깐 물놀이를 할 수도 있지도 않을까?

    

그러자 기능성이 좋은 스윔 웨어를 새로 구입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려졌다. 예쁜 새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실컷 찍고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믿음이 약해도 우리가 관광하러 가는 건 아닌데, 목적이 있고 그에 맞는 애티튜드가 있을 지언데 애써 살랑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갈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회가 닿아 멀리까지 가게 되었는데 환경 자체가 그런 걸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에서 그냥 손 놓고 있다 돌아오는 건 어쩌면 바보 같은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준비했다가 못 쓰는 게 낫지, 갑작스러운 일정에 준비 부족으로 낭패를 보고 싶진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우선 아이 물건만은 챙겨 가기로 정리를 했다.     


나는 제일 처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조용히 조신하게 그곳에서의 삶을 체험하고 학교를 통해 전해진 신의 뜻을 깨달아 오고 싶다고. 그런데 출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생각이 점점 변하더니 놀고 싶고, 즐기고 싶은 마음은 부풀어 올라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지기도 했다. 결국 나는 새 옷도 새 스윔 웨어도 없이 비행기에 올라섰다.     

     

여행, 봉사 그 이름이 어찌 됐든 계획으로만 머물 줄 알았던 약 일주일간의 선교지 방문은 결과적으로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정신이 혼미했고 황송한 환대에 몸 둘 바를 몰라 일상에서 벗어나 있음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으니 진짜 꿈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학교는 방학이었고 우리가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시간을 비워두신 덕에 목사님께서는 온통 그 시간을 우리에게 할애해주셨다. 일정을 잡느라 여념이 없으셨고 어딘가를 데려가 주시고 체험시켜 주시기 위해 계속해서 의사를 물으셨다. 그리고 체력이 약한 나와 아이에게 어떤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를 여러 방안을 모색하셨다.


그 와중에 사모님은 새로 장을 봐 오신 신선하고 값어치 있는 식자재들로 세끼 식사를 손수 준비해주시며 끊임없이 곁에서 대화를 이끌어 주셨다. 30여 년간 보고 듣고 겪으신 일들을 어찌 며칠 사이에 다 들을 수 있겠느냐만은 바닷가를 가고 배를 타고 놀러 가는 것보다 그 풍성한 이야기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그곳에서 아이는 환했고 남편은 충족됐으며 나는 자유로웠다.

 

결국 목사님께서는 아이를 수영장에 데려가 주셨고 아이는 엄마가 사준 수영복을 개시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꿈속을 거닐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잠시 둘러본 그들의 주거지는 열악했고 식사의 질은 형편없었다. 영악하게 수단을 가리지 않는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들의 삶을 응시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남겼다. 한정된 공간에 머무는 동안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저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그곳의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도우미나 값싼 노동력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현지 사람들의 언어로 그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선교자의 삶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깊고 진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선교란 선교지에 있는 것만으로도 선교가 된다고. 예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을 그 말의 뜻이 심히 공감을 끌어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가기 전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무슨 기대를 했든 간에 다녀온 이후의 내 삶이 신의 뜻에 닿았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어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계획도 없고, 많이 걷지도 않고, 기념품과 지인의 선물 구입에 집착하지 않았던 여행이 다른 곳에서라면 가능했을까 싶다. 새 물건을 사지 않고 시작해서 거의 빈손으로 돌아온 것도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동안 그곳에서의 짧았지만 강렬한 기억이 나를 따를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와 잊은 채 지나다 문득 떠오르면 감사한 마음 또 그리운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창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별다른 도움도 되지 못했지만 이렇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내본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답이 아닐까? 부족해서 아직은 닿을 수 없는 그 뜻에 오늘도 한 걸음 다가서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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