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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Nov 18. 2016

꽃 같은 너의 말

엄마 내가 말을 잘하지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아이의 생김새가, 태어나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아이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그리고 옹알이를 하기 시작하자 언제 말을 하게 될지 점점 기다리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실제 아이가 말을 하게 되는 시기보다 '어떤 말'을 하게 될지가 더 중요했기에 나는 천천히 그 시간을 인내할 수 있었다.


말문이 트여 세상과 소통할  때 가능한 자신의 마음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아이는 얼마나 큰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까? 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엄마는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까?


자녀를 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선행학습을 시키고 수학과 영어를 우선시해서 배우게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과목뿐 아니라 사회와 과학 과목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국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당연히 국어를 잘하려면 절대적인 독서량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답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독서를 하려면 그냥 글자를 읽어내는데서 그치지 않고 단어의 쓰임을 알고 문맥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갖췄는지와 함께 다양한 어휘를 구사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단순히 어휘의 이해뿐 아니라 각 과목마다 물고 물려있는 관계가 학습에 영향을 끼치 것을 놓치고 세세한 것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갑자기 많은 양을 한꺼번에 쏟아부어 아이를 질리게 하거나 갈피를 못 잡고 길을 헤매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아이를 잡아 세울 수 있는 것이 차근차근 쌓아둔 '어휘'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어느 정도의 어휘를 구사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나온 아이가 자라나 입으로 내뱉기 시작하는 모든 말은 아이의 현재 아이에게 형성된 세상 전부를 보여주고 머릿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게 되는 말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고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이가 하는 말을 기록하는 일이다. 어휘는 모든 학습에 기본 토대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아이의 교육에 조금 수월하게 접근하고 싶은 욕심을 채워나가는 노력이기도 하다.


처음 아이가 생각지 못한 말을 하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기특해서 시작한 일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방안과 맞닿아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어제와 달라진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해주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오히려 내가 한뼘 성장한 기분이 든다. 아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봄으로써 조금씩 엄마라는 이름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이의 어휘를 늘려가야 할까? 우선 아이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때 아이가 엄마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한계를 짓거나 쉬운 말로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듣는 말이 아이에게 새겨져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는 아이 머릿속에서 아이의 것으로 용해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 말이다.


또한, 내가 지시하면 일방적으로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대화하고 함께 성장하는 하나의 인격체임을 기억해만 한다. 생활적인 면에서는 쉬운 말로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해주고, 실질적인 구조나 현상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평상시 쓰는 어른의 말을 섞어준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된다면 같은 말이라도 표현을 바꿔 설명해 주는 것도 좋다. 가령 '이틀 연속'이라는 단어를 쓰면 바로 '오하고 내일 두 번'이라고 이어서 풀어 설명해주는 식이다.


말문이 트일 무렵의 아이는 내 눈에 새롭고 기특함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엄청난 걱정을 샀다. 추석 명절 아이의 증조할아버지는 아이가 말이 느린 것을 보고 '장난감 마이크'를 알아봤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말이 늦는 걸 보고 말 연습을 시키고 싶은 바람으로 몇 달 동안 마음을 쓰신 듯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특이점이 발견되거나 전문가의 소견이 없다면 말이 조금 느리고 빠름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도 몇 가지 상황의 말만을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가 있고,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에도 덜 말하는 아이가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엄마의 믿음과 함께 중요한 것이 기다림이다. 어떤 아이가 좁고 높다란 언어의 탑을 쌓고 있는지, 넓고 튼튼한 둘레를 짓고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생활에서 엄마가 아이와 함께 빈번하게 유아어를 쓰고 잘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웅얼거리도록 두는 것은 어휘를 확장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어휘를 늘려야한다고 했지만 또 어휘를 늘리기 위해서 책을 자주 접하는 것 만큼 좋은 것도 없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금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좋아서 책 읽기를 즐기는 편이다. 내게 있어 책 읽는 재미 중 하나는 평상시 쓰지 않는 단어나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만나 내 머리가 반짝 트일 때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단어를 기억해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구사해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도록 만든다. 그런 재미를 아이에게도 알게 하고 싶었다.


성인이기에 의도를 갖고 하는 일도 아이에게는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실제로 아이는 책에서 들은 단어를 실생활에 활용하기도 한다. 어느 날 동영상을 보다가 다른 것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이것 찾아줘요'가 아니라 '검색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어휘의 재미를 느끼고 활용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이는 주변의 우려와 걱정을 딛고 '제대로' 말문이 트였다. 이렇게 말이 느리고 빠름에는 대부분이 아이의 기질과 개인적인 성향인 탓이 크다. 거기에 엄마의 몇가지 노력이 어우러진 덕도 있겠지만 아이가 엄마의 바람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보는 것은 한 명의 조력자로서 그 뿌듯함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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