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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Nov 24. 2016

놀아라 아이야

'하하하' 엄마 나는 웃음이 나와요


신나게 뛰어놀고 배불리 먹은 뒤 맥없이 곯아떨어지는 일 말고 아이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지내는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가 어떤 상태로 지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곤히 자는 아이를 깨워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배고프지 않다는데 시간 맞춰 먹이며, 아직 자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재워야 하는 엄마는 늘 '인지부조화' 상태의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직접 아이를 돌봐줄 수 없는 워킹맘에게 최선은 그나마 어린이집을 제대로 고르는 것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는 곳이 있을 리 만무하고 엄마가 마음 가는 대로 고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덜한 곳, 게다가 모든 조건에 더하여 아침 등 하원을 위해 엄마 직장과의 거리도 웬만큼 가까운 곳이어야 했기에 결국 남는 건 뻔한 선택뿐이었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고른 곳이라지만 그래도 공립데다 회사에서 가깝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먹고 쉬고 빈둥거리지 못하는 아이는 어린이집 등원만으로도 무척이나 벅찬 일이었기에 언감생심 사교육은 꿈도 꾸지 않았다. 미술이나 태권도뿐 아니라 그 흔한 한글 학습지 하나도 시키지 않는 엄마는 심지어 어린이집 특별활동 수업도 제외시켜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그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아이가 한 명도 없으면 우리 아이를 위해 따로 전담 교사가 배정되어 아이만을 돌봐야 하는게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단체생활이기에 따라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조금 답답한 마음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마음을 내색은 못하고 영어수업과 체육활동이라는 명목의 추가 비용을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냈다. 물론 인위적이지만 아이가 놀 환경과 놀 수 있는 거리를 어떻게든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 키즈까페나 방방이도 가고, 남들 가는 유료 도서관 정도는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놀 수 있게 하려면 언제나 결론은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것' 뿐. 그거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나에게는 아이를 키우며 방향키가 되어주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하면서 지켜본 장면 이 그 중 하나다. 지인의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근처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맨발로 흙무더기를 뛰어다니던 방과 후 아이들을 떠올리면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특히나 땡볕 아래서 모든 아이들이 모자를 쓴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자유로운 가운데 존중까지 받고 있다는 느낌 받았다.


작년 오스트리아에서 이케아를 찾아가며 다른 무엇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근처 보육시설의 놀이공간이었다. 장소도 인상적이었지만 바람이 불고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중무장한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랬다. 그리고 역시나 이곳의 아이들도 모자를 쓰고 있다. 아이의 체온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상태라면 노는데 계절은 상관없는 게 아닐까?

오스트리아 연수에서 만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2015)

한국에서 아이들은 시간이 없고 놀 공간이 없기도 하지만 추워서 못 놀고 더워서 못 놀고 비가 와서 못 논다. 어느샌가 나도 그 생각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산성비가 염려되고, 찬 바람에 감기라도 들라치면 병원을 오가는 게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그래서 나가는 것을 망설이고 자꾸 생각만 많아졌다. 아이의 놀이에 다시 한번 집중하고 실천사례를 확인하고자 노력하면서 '놀이터 전문가 편해문 씨'가 쓴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아이는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를 연달아 읽게 되었다.


책대로라면 한국에는 제대로 놀 공간이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최근 놀이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지만 아이들의 놀이터를 제대로 '정의하는 이'마저도 부재한 상황이어서 뾰족한 수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러다 독일의 놀이터를 소개하는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속 사진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독일로 날아가서 그 놀이터를 직접 보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 나라에 먹고 구경하고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놀이터 체험을 위한 여행 계획이라니! 왠지 너무나 허황돼서 내가 꼭 지켜버릴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 너무도 우연히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숲 놀이터'를 알게 되었다.  공원으로 조성된 곳에 아이의 놀이공간이 들어선 것인데 자세히 보면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일반 놀이터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물들이 하나둘 자리 잡고 있어 볼수록 신선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나무집이 있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유아용 짚라인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조금 위험해 보이는 놀이터, 책에서 본 듯한 놀이터, 언젠가 내 눈으로 확인하고 만나고 싶던 그런 놀이터였다. 

그런데 너무나 아쉬운 것이 이 숲 놀이터를 알게 되자마자 이제 막 추운 계절의 문턱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잠시 포근해진 날씨에 만나게 되었지만 언제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밀려올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케아 주변에서 보았던 모자 쓴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 나는 이미지화된 상상 속에서만 이상을 그리고 있었구나. 늘 최선은 주변에 있는데 나는 망설이기만 했었구나. 갑자기 머리가 깨이는 기분이 들었다.


우선 집 앞 놀이터에서 다시 한 번 아이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바람이 부는데도 동네 누나들과 어울려 기차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고 도토리를 찾으며 집중하는 아이를 보며 차가운 계절에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오자 그 날은 집안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래서 추위에 밖에서만 놀 수 없다면 집안에서 집중할만한 놀이 거리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이 평소처럼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을 이끌었다. 어린 시절 몸으로만 뛰어놀던 기억으로 '사방치기' 그림을 하나 그려주었다. 아이용으로 조금 변형되고 아담한 것이 아이가 좋아하는 파란색 라인으로 완성되어 내 기준 완벽한 그림이 되었다, 한발, 두 발 번갈아가며 마지막에 뿅! 하고 돌아서라는 엄마의 안내를 곧잘 숙지하고 숫자에 대한 호기심과 만나자 아이는 바닥 그림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날씨와 온도를 체크하고 조금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놀이터를 찾았다. 입구까지 휘몰아치던 바람이 놀이터 안에 들어서자 고요한 듯 잦아들었다. 마스크와 두꺼운 외투 없이도 아이가 노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이의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연신 이어진다. 안 왔으면 어땠을까. 추위를 무기 삼아 자기변명에 빠져 있었을 내 모습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영하의 날씨가 아니라면 아이와 중무장하고 숲으로 달려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이 작은 결심에 이토록 많은 기억과 자료가 필요하다니, 어쨌든 한동안 놀이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여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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