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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Sep 05. 2016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야 그게 인생

와일드(Wild, 2014) 2015년 10월 기록


영화 개봉 소식을 보고 이 영화다, 싶었는데 시기를 놓쳐 보질 못하고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손에 들어온 책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커 순식간에 읽어질 줄 알았는데 진도가 잘 나가질 않고 심지어 책을 읽다 잠시 멈춘 뒤로는 앞에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손도 맘도 잘 가지 않는데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 아무도 하란 사람 없는데 숙제처럼 느껴지는 책. 이상한 노릇이다. 다행히 부담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책은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으로 글자 한 자 한 자까지 이해되며 공감을 넘어서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착각까지 일어나게 만들었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은 행운이고 기쁨이다. 그러나 책 내용은 가볍지도, 그저 즐길 수 있기만 한 것이 아닌, 조금은 무겁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는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엄마와 함께하는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한다. 절망했지만 삶은 이어졌고, 잠시나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듯했으나 모든 것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변해버렸다. 그 이후의 생활이 묘사되고 우연히 발견한 안내책자를 통해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라 불리는 극한의 도보여행 코스를 걷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실제로 이를 행동에 옮긴 여정에 관한 책이다.   

   

배낭을 메고 시작된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285km를 걸어야 했을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야생동물이나 날씨의 변화 등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대자연 속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마주하며 심적인 공포감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 어디서 겪게 될지 모르는 여러 종류의 폭언과 폭행, 그리고 외로움까지. 이 책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나들며 모든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절망의 순간에서 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신화를 써 내려간 많은 여성들이 있다.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이 그랬고, '유명 토크쇼'의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그랬으며, '이 책'의 저자 셰릴도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이들 모두 놀라울 정도의 삶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고 있어 줄곧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특히나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해 과거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앞으로 내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영화와 비교해 보면 대부분 기억을 되살리는 범위에서 책의 내용과 일치한다. 무엇보다 실제 모습이 어떤지 궁금증이 일었던 PCT 광경을 볼 수 있었단 사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허나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로버트 프로스트) 


셰릴은 새로운 코스가 시작되는 곳마다 방명록에 글귀를 남기는데 고통스럽게 이어지는 걸음과 말도 안 되는 환경 속에서 묵묵히 그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저렇듯 그녀가 느끼고 충실하게 따른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리즈 위더스푼도 반가웠고, 왠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그녀가 보이는 듯 해 동질감이 일었다.      


끝으로, 내가 만약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캠핑- 그것도 글램핑이 아닌 흙먼지와 때 구정물 속에서 야생의 날 것 같은 캠핑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이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내 삶에 성찰을 주고, 기회를 주고, 영향을 끼치는 책들을 써주는 모든 작가들이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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