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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an 11. 2017

당신에게 '지금의' 직업은 천직인가요?

늘 언제나 내게 꼭 맞았던 나의 돈벌이들


우선 나의 대답은 '내가 가진 역량의 어떤 부분이라도 써먹고 있고 페이가 적하다면 맞다'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이란 것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업이 있어야 한다(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소시민은 그들을 논외로 하겠다). 그런데 직업이라는 것이 돈벌이로만 생각되면 굉장히 고달프게 여겨진다. 그리고 무척 힘들게 하루하루 버티는 삶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크게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꼭 맞는 천직이란 것은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정해져 있던 것일까? 정해진 그 일을 찾지 못하면 우린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적어도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직은 내가 찾아가는 것, 어쩌다 보니 나에게  꼭 맞춰진 일, 우연의 산물일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에겐 꿈이 없었다. 정확히는 되고 싶은 장래희망이 없었고, 정말이지 뭘 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막연했다.


그저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는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정할 수 있는 건 극소수에게 주어진 행운일 뿐이라 여겨졌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했기에 그나마 관심 있는 학과에 가려니 점수가 턱없이 부족했고, 어쩌다 선택하게 된 전공은 계속해서 이어갈 명분을 주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돈을 벌어야 했기에 특별한 준비 없이 소개로 얻은 일자리에서 우선 아이들을 가르쳤다. 일찍이 나에 한 가지 타고난 능력이 있다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학창 시절 학업이 많이 부진한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알게 된, 바로 크게 어렵지 않은 내용을 다른 사람이 더 알아듣기 쉽게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잊고 있던 그  능력을 다시 한번 활용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꽤나 즐겁게 느껴졌다. 말을 많이 하는 일은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고 기관지가 약한 내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때 나는 이 일이 평생 가져가야 할 나의 천직인가 싶었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한동안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고용이 불안하고 연차가 쌓여가며 월급을 더 늘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질 않아, 그 일은 단순히 경험으로만 남기고 다른 길을 찾았다. 내 자아실현도 중요했지만 적은 월급으로 살아갈 자신 또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저 안녕하고 싶었던 그때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지속되고 있다.


간단한 문장 몇 개를 살펴보자.

- A라는 업체가 있다.

- 공고된 지원사업이 있다.

- 업체는 이를 실제로 지원받고자 한다.


그저 공지된 내용을 올바르게 숙지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춰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고 그 부분만 알아서 챙기면 될 터인데 현장업무를 병행하는 이들은 아무리 자세히 쓰인 글도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한 자 한 자 읽고도 이해를 못한다기 보단 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 보였고,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하는지 차분히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그래서 지원 내용을 시작부터 끝까지 절차별로 쪼개어 설명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주며,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막히는 부분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주고 이해시킨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 이 일이 내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매일 전화를 받으며, 늘 처음 아이들을 가르쳤던 때를 기억한다. 친절과 정보전달이 생명인 콜센터 직원은 아니라서 정도에 넘치는 의무감은 없지만 자신이 모르는 부분과 맞닥뜨릴 때 누구나 아이와 같은 입장에 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에 되도록 친절하고자 노력한다. 나의 경험을 활용하고 있는 지금, 나 천직을 만난 게 아닐까?


나는 다 커서야 꿈을 하나 가졌었는데 느닷없이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메이저 항공사 최종면접에서 탈락하고 잠시 짧은 방황을 거쳤다. 그런데 지금의 일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승무원이 되지 못한 것을 굉장히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일을 하며 내 본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어렵게 돌려 말하거나 누군가를 홀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개 높은 사람의 지인이 내게 거드름을 피워도 그에게 특별대우는 없다.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부당하고 불합리적인 요구를 참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안전'보다는 '미소와 서비스'만을 강요받는 직업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만약 서비스직을 수행했다면 어쩌면 일 년도 못 견디고 제 발로 나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 생각하던 나의 천직이 마음속에서 작별을 했다. 하고 싶었던 일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믿고 싶다. 미련을 갖지 않고 내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갈 때 나는 천직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논리를 좋아하고 창의적이며 규율에 제약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반복적인 업무에 편안함을 느끼고, 구속력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일이 남의 지시를 받는 것보다는 주어진 책임 안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이나 수완대로 일을 처리하고 결과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몇 주고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보다는 잠시 잠깐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멀티로 일하다 그다음 업무로 진입하기까지 내 시간을 핸들링할 수 있는 업무가 진심으로 마음에 든다.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해서 공부하다 말고 자꾸 다른 할 일이 생각나는 학생들을 일컬어 공부 못하는 전형으로 꼽지만 나는 기안을 작성하다 모자란 통계를 입력하고, 수치를 맞추다 머리가 아프면 단순하게 서류철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벌려놓은 업무를 조금씩 건드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 와중에 전화도 받고, 보고할 사항이 있으면 분위기와 타이밍에 맞춰 알맞게 보고를 한 뒤, 좀 전에 띄워놓은 기안 작성을 마무리하는 그런 부잡스러움이 나는 좋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업무든 일정 이상의 숙련도는 갖추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에 스스로 얻은 자율시간 조차 당당하다. 그 시간 업무의 고민이 천천히 익어가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정말이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어떤 상태에 놓였을 때 자신이 능력의 최대치를 뽑을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잘하고 오래 할 수 있는지를. 내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마주하고 인식해서 나보다 부족한 사람과도 일해 보면서 그나마 내가 나은 점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내가 인정하지 않던 사람의 강점에 반성도 하면서 또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경쟁 속에서 내가 무엇을 더 알고 채워야 하는지도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다.

  

한 번에 제 길을 찾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건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탐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기에 고민의 시간은 늘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무엇보다 승무원 시험을 치르고 떨어져 본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까지 남들보다 오래 걸렸고, 그 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늘 새로운 곳에 시작하느라 갖고 있는 직함도 높지 않지만 이 곳에 정착하기까지 돌아온 시간이 있어 나는 지금 이직을 가슴에 매달지 않고 하루하루에 충실할 수 있다.  


어떤 일이 반드시 운명적인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지만 지나고 되돌아보면 '지금 이러려고 그때 그랬었구나' 하는 일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일지 우연의 힘을 믿을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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