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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24. 2016

내 아이만 생각하지 않을 용기

엄마 나는 같이 크고 싶어요


결혼을 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기존에 하던 후원에 각자의 이름으로 하나씩 추가를 하고 아이가 태어나 아이 이름으로 하나를 시작하니 어느새 후원만 네 종류가 되었다. 좋은 의도였고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중단하지 말자 다짐했었는데 새 집에 입주하고 아이 보육비가 이중 부담이 되면서 그 얼마 안 되는 돈이 자꾸 아쉽고 생각이 났다.


고민 끝에 지난달 후원을 정리하면서도 아이 이름으로 시작했던 '염소 보내기'만은 마지막까지 끊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후원하는 것에 대한 좋은 의미를 알려주고 사실 엄마가 이런 생각으로 너를 키웠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다.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전화통화를 하는 일은 참으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이었다. 중단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묻고, 다음에라도 후원을 꼭 이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별 말없이 그동안 후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곳도 있었다.


전화통화가 끝나고 이대로 끝내고 마는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들었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후원을 다시 어이 가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엄마가 된 후 내 달라진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잔정이 많고 오지랖도 넓은 편이지만 아이들을 보며 애달픈 마음이 든다거나 부족한 행동에 대해 폭넓게 이해해 주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매사에 냉정하게 따박따박 따져 들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내 이런 점을 솔직하고 꾸밈없다고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불편해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엄격한 편이었다. 비슷한 눈높이로 맞춰주며 친구처럼 대해주기도 하는 반면 응석을 부릴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 중에도 나를 따르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세상 모든 아이들이 소중하다는 진리에 눈을 떴다. 이 세상에 쉽게 생겨난 아이는 없으며 엄마 없는 아이가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고, 새로 배워나가야 할 것이 무궁무진한 존재로 내가 도와주고 알려주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내 안에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던 책임감과 사명감이 샘솟았다.


비단 내 아이에게 뿐만이 아니었다. 모르는 아이가 우는 모습만 봐도 안쓰럽고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다 서로의 부주의로 부딪혀 넘어지면 나는 '입으로는'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괜찮다고 위로하고 '손으로는' 상대 아이를 일으켜 안았다. 그리고 바로 상대방 부모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먼저 많이 다치지 않았는지, 괜찮을지를 살폈다.


그다음이 우리 아이였다. 넘어져도 부딪쳐도 별로 울지 않는 아이 덕에 그런 행동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먼저 안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혼자 이겨내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육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전혜성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동네 아이들을 함께 챙겼다고 밝혔다. 내 아이만 잘 키워서는 제대로 클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에 놀러 오는 아이들을 지하 공부방에 있는 빈 책상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모에게 "공부해.""저 친구랑 놀지마."는 너무 1차원적이고 쉬운 길이다. 그리고 부모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 1순위이다. 갈라놓고 내 아이를 보호한다고 해서 내 아이가 잘 크란 보장은 할 수가 없지만 내 아이 주변 친구들을 챙기고 함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그 아이가 최소한 잘못되진 않으리란 보장은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아는 한 분은 어린 시절 어머님을 일찍 여의고 배곯는 슬픔보다 다정한 손길에 더 굶주리며 외롭기 그지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자신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이고 용돈도 쥐어주시던 친구의 어머님을 아직도 잊지 못해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용돈을 부쳐 드린다고 했다.


좋은 책에서 한 번 배우고, 주변 이야기에 한 번 깨달으며 아는 대로 실천하자고 마음먹으면서도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똑같이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근무 중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가능하세요? 다른 아이를 밀어서 넘어뜨렸는데 보니까 친구가 손을 깨물었더라고요. 그래서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어요. 밀었다고 해서 놀랐는데 먼저 물려서 방어를 한 거라고 하니 아이가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선 안심이 되었다. 상대 아이가 다친 데는 없는지 묻고 아이가 많이 울었는지를 물었다.


괜찮다는 말에 피가 나진 않았는지 패이거나 흉 진 건 아닌지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그냥 넘어가자, 마음을 먹으면서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전화를 했다는 말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눈을 질끈 감고 엄마들끼리 사과를 대신해주는 건 바라지 않을 테니 더 이상 물지 않도록 훈육해줬으면 하고 그저 속으로만 바랬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물렸지만 다음번엔 우리 아이가 그 아이 혹은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까지 먼저 때리거나 물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기에 다행인 것일 뿐 언제고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이는 자라고 또 자라면서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방 엄마도 내가 좀 더 단단히 가르치고 이끌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아이가 잘 컸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친구가 되는 아이든, 잠깐 어울려 노는 아이든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제대로 잘 컸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그 아이들을 모두 감싸 안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그 넓어진 범주안에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을 넣을 수 있어야 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계획한 일이 기간 내 마무리되면 제일 먼저 정리했던 후원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렇게 아이를 위한 덕을 쌓고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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