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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24. 2016

그냥 한 끼, 어쩌면 전부

엄마 나가고 싶어요


어린이집에서는 부모가 참여하는 수업을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부모교육도 시켜주고 전체 원아가 함께 숲 체험을 하거나 테마파크로 놀러도 가는 것이다. 주말마다 데리고 다니기 힘든 맞벌이 부부임을 감안하면 가끔 이런 일정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던 작년에는 남편과 아이, 둘만 보냈었다. 그날 있었던 점심 도시락 대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 거리지만 이번에 직접 참석해서 다녀오고 보니 그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은 영유아 전담기관이었고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가 어렸다. 역시나 어리던 우리 아이에게 밖에서 간단하게 무얼 먹이면 좋을지 잘 생각이 나질 않아 고민이 되었다. 김밥을 제대로 먹어본 적 없는 아이에게 김밥으로 구색을 맞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밥을 '쌀' 생각도 없었지만 흔하게 김밥을 '살' 생각도 안 했다.


잘 먹지 않는걸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간단히 요기나 하고 오라고 나름대로의 솜씨를 발휘했다. 남편도 양이 많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야채 넣고 볶은밥을 조그맣게 쥐어 말아 계란을 둘러 미니 주먹밥을 만들고 죽통에 뜨끈한 국물이랑 해서 들려 보냈다.

 

그때만 해도 시중에서 파는 과자도 잘 먹지 않던 아이였기 때문에 따로 간식도 많이 준비하지 않았다. 음료도 평상시에 주스라고 알고 마시는 매실 물을 물통에 담고 우유 정도만 여분으로, 혹시 양이 차지 않을까 싶어 삶은 고구마와 요플레, 귤을 넣었다.


집에 돌아온 두 부자에게 재미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하루를 무사히 마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얘기를 하던 중에 선생님들이 우리 도시락을 보고 본인들의 음식을 엄청 챙겨주더란 말과 차 안에서 다른 아이들이 먹고있는 과자를 하도 쳐다봐서 다른 엄마들이 우리 아이에게 간식을 나눠줬다는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내가 불편할까 봐 전하지 않으려 했지만 선생님들 도시락까지 챙겨 온 엄마들도 꽤 많았다고 했다. 처음엔 조금 더 챙겨보낼 걸 너무 무심했나 싶다가, 내가 갔으면 있는 걸로도 알차게 먹였을 텐데 괜히 둘만 보냈네 싶기도 하고, 평상시에 점심 한 끼 정도는 대강 때우기도 하는데 굳이 바리바리 싸들고 가야 하나 심통도 나서 아예 보내지 말 걸 약간의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린이집이 바뀌고 처음으로 가는 이번 행사에는 양쪽 부모가 모두 참석하게 된 것이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지 않게 해주겠어.' 작년 생각이 떠올라 뭐라도 해볼까 의지를 불태우다가 같은 회사 직원에게 선생님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지 정도만 물었다. 그것도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원 분위기가 그런 걸 챙기지 않고 본인들 먹을 것만 싸오면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또다시 그냥 대강 때우기로 생각을 바꿨다.  


하루 전날 마트에 들려 음료와 과일 그리고 여분의 아이 간식만 조금 구입했다. 다음날 아침, 이만하면 됐다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김밥은 싸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가 못 먹어서 안 쌌지만 지금은 맛있는데서 사면되지 싶어 안 쌌다. 으뜸 간식으로 생각하는 삶은 계란과 감자까지 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시간에 맞춰 차를 대고 함께 탑승할 버스로 이동하는 길에 보니 손잡이가 달린 큰 아이스박스를 준비한 집도 보였다. 나는 보냉 가방과 아이 여벌 옷이 담긴 작은 가방으로도 양손이 무거웠는데 다른 집들은 대단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여 살짝 위축이 되었다.


역시나 한 시간 남짓 이동거리에서도 엄마들은 아이들을 시켜 서로에서 나눠먹을 만한 간식거리들을 보내고 또 보냈다. 흐뭇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풍경이었지만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거라 봐야 고작 젤리나 미니 초콜릿 따위가 전부였다. 심심함을 달래려 아이 입에 간식을 물려주기 시작하자 굳이 간식 생각이 없던 아이들도 서로 먹으려고 안달을 냈다.


혹시 몰라 싸온 개별 포장된 땅콩으로 어쩔 수 없는 호의에 보답하며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달고 짭짤한 간식에 음료까지 이미 배가 찰 데로 차있는 아이들이 점심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 이것도 추억이고 재미지. 언제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게 먹어보겠어.' 아이를 숨기고 키울 것도 아니고 나도 가끔 주는 간식들인데 굳이 예민을 떨어 밉상이 될 필요는 없었다.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고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햇볕이 뜨거웠지만 평상 주변은 솔솔바람이 불어 식사 장소로는 손색이 없었다. 간단하지만 우리 식구에겐 맞춤형처럼 보이는 식사를 먹다 다른 집에서 싸온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보려고 해서 본 건 아니었는데 점심으로 등갈비에 상추쌈을 싸온 집도 있었다. 저런 준비를 하려면 도대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지?


밤에 끓여서 식혀놓은 보리차를 보냉병에 담고 삶은 계란의 온기를 뺏기지 않도록 미니수건으로 감싸고 내 머리 말리고 아이 챙겨서 김밥 사 오는 것도 나는 할 일 다했다 싶었는데 그 열정과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예전 어린이집에 남편과 아들에게 들려 보냈던 때우기용 도시락이 1단계라면, 이번에 준비한 대강 도시락은 2단계쯤 되겠다. 여기에 좀 더 다양한 과일과 다른 친구들 간식까지 준비하면 그나마 보급형 3단계, 마지막으로 선생님 간식 준비 및 온가족이 여행 나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락이 4단계 완성형이라는 성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기에 비상시 대처할 만한 구급약품과 여벌 옷까지 하려면 짐이 정말 장난 아니게 늘어난다. 서너 시간 일정에 사용할 일이 없을 법해 보여도 아이들은 뛰다 넘어져 까지고 긁혔고 날씨가 덥다고 틀어놓은 미니분수에 날파리처럼 달려들어 옷을 적셨다.


'대강 인생'이 또 한 번 시련을 만났다. 앞으로 비슷한 일정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냥 한 끼로 때울 것인가 아니면 전부를 준비할 것인가. 나는 4단계 완성형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더 큰 노력을 할 자신도 없지만 한 번은 해봤다 싶을 만한 정성도 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정 내내 아이 뒤를 따르며 선생님의 통솔에 협조하고, 강한 햇볕에 씌웠던 모자를 그늘을 오갈 때마다 벗겼다 다시 씌였다를 반복했다. 냉방이 안 되는 간이 천막 속에서는 부채질을 해주고 관람이 쉽도록 시야를 터줬다. 중간중간 쉬가 마렵다는 것을 처리하고 신기한 것을 보면 엄마를 찾는 통에 그에 걸맞는 격렬한 반응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은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쉴 틈이 없었어도 이 모든 노력은 점심 도시락에 가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았다.


나들이하기 좋은 5월이라지만 폭염과 에어컨 냉방을 오가는 온도차에 어른이고 아이며 어떤 옷차림이라도 못내 아쉽고 적당한 식사와 간식량이라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늘 부족하거나 남아돌기 일쑤였고, 게다가 집에 오면 정리까지 어딜 한 번 다녀오려면 준비와 짐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대절한 버스 덕에 운전도 안 하고 일정이나 프로그램은 따르기만 하면 됐는데도 정신적 고민과 물리적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한 달에 두어 번씩 나가 주는 부모들은 도대체가 진정 철인들이란 말인가? 다른 친구들은 주말에 자주 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이가 최대한 늦게 알기만을 바라며 오늘도 이불속을 뒹굴자고 꼬셔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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