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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19. 2016

키가 커도 불리하다

엄마 나도 여탕으로 갈래요


이래라 저래라 군말과는 거리가 멀게 나를 키운 엄마는 유일하게 하는 잔소리가 목욕탕엘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잔소리라 하기도 민망한 정도지만 싫다고 하면 다시 말하고, 안 간다고 해도 또 말하기를 반복하는 입씨름이 그때는 정말 싫었다.


주말이면 늘 그랬다. 대꾸 없이 앉아 버티거나 다른 걸 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도 그럼 먼저 가서 목욕 요금을 내놓을 테니 하던 거 마저 하고 천천히 오라고 할 말만을 남기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집을 나섰다.

      

그렇게 싫어하며 못 이긴 척 따라다니던 습관이 몸에 배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목욕이 되었다.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억지로 들인 습관이라도 어쩐 일인지 내 취향과 감성에도 영향을 끼쳐 여주인공이 목욕하고 사색하는 장면이 맘에 든다는 이유로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고 싶어 일본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아이에게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기쁨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신생아 때부터 목욕을 시켜도 울지 않더니 지금도 목욕하는 걸 꽤나 좋아한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공중탕에 가는 것도 매우 즐겨해서 가끔은 어린이집을 빼먹고 아이 봐주시는 분께 보내면 그분들을 따라 목욕을 하러 다니는 게 크나큰 낙이다.


"목욕탕으로 출발합니다."


문자가 오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물속에 들어앉아 한참을 응시하고 물장구도 치고 놀 아이 생각에 몸은 떨어져 있어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다. 긴 시간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에서도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가끔은 매점 냉장고 앞에서 오늘은 자기가 왜 요플레를 두 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피력하기도 한단다. 그런 문자들에 엄마는 흐뭇했고 소소한 일상일지라도 아이는 나중에 기억하기 좋을만한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키는 조금 큰 편이고 몸은 삐쭉하니 마른 체형이다. 평균보다 살짝 클 뿐이데도 그런 말을 들으니 억울하셨나보다.

그런 아이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아이가 피부 트러블로 밤새 가려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자 가끔 가는소금탕엘 급하게 가신 날이었는데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눈짓으로 위아래를 살피던 카운터 아저씨가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묻더니 4살 애가 왤케 크냐고 한 마디 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이었으면 위기의식까지는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오랜만에 찾아간 소금탕에서뿐만 아니라 자주 가던 목욕탕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으신 것이다. 모녀가 목욕을 다 마치고 나가며 들으란 듯 "저렇게 다 큰 애를 여탕에 데려와."라고 내뱉은 것이다.


한 번이었으면 웃고 넘어갔을 일들이 최근에 연달아 일어나자 걱정이 조금 되셨는지 '키가 커도 불리하네.'라는 문자를 보내오셨다.


아이가 목욕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셨기에 본인이 직접 챙겨줄 수 없을지도 모를 상황을 염두해두신 말이었을 것이다. 그 모녀가 아이를 보며 직접 물어보면 아직 세 돌도 안되었다고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자기들 말만 해버리고 나가버리니 남겨진 사람은 대꾸도 못해보고 속이 상하신 것 같았다. 본인 아들이 그런 말을 들었다 해도 분명 그냥 넘어가셨을 분인데 아이일에는 나보다 더 열을 올리셨다.

     

아이는 가끔 남탕으로 가기도 하지만 사모님 등에 비누칠해주는 걸 칭찬해주시는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 여탕을 더 좋아했다. 이제 커서 여탕 못 가겠다고 말해주니 “안돼! 갈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나,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네. 엄마 맘에도 더 이상은 못 보내겠다 싶었다.   

   

예전에는 미취학 아동은 물론이고 학교에 입학해서도 엄마들이 남자아이들을 목욕탕에 데려가 씻기곤 했다. 요금 때문에 실랑이하는 엄마도 창피했겠지만 같은 반 여자애를 만나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솔솔찮게 들려왔다.


지금은 오히려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들이 남자아이가 여탕에 가는 걸 싫어한단다. 어린아이라도 자기 몸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불편하고 꺼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탕에 입장이 가능한 연령은 점점 낮아져 어느새 다섯 살도 많은 나이가 되었다.


나름 이해가 가는 부분이고 그런 글을 읽었을 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불편을 겪게 하지 말아야지 싶어 그 시기를 알아서 조절하려 했었는데 쿵! 하고 길목 앞에 생각지 못한 바위가 놓인 기분이 들었다.


시기가 빨리 와도 너무 빨리 왔다. 통통하게 살이나 오르지 뭐하러 벌써 키는 커가지고 목욕탕 문턱에서 눈치를 받나 싶어 뿔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키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은 복에 겹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바라는 바가 각양각색이기 마련이다. 키가 커도 불리하다는 사모님 말마따나 정말 나는 키만 삐쭉 큰 아이가 마뜩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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