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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18. 2016

아이의 노랫소리

엄마 노래를 불러주세요


뱃속에 있을 땐 어떻게 생겼을까? 누굴 닮았을까? 아이의 생김새가 가장 궁금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우유 먹이고 재우며 얼굴 맞대고 있다 보니 어떤 소리를 낼지 아이의 목소리가 가장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 옹알이를 하고 제법 아빠, 엄마도 할 때쯤 되니 아이가 문장으로 말하는 날이 오긴 올까, 내가 매일 불러주고 있는 이 노래를 이해는 할까, 매일 듣는 동요들은 따라 부르게 될까 궁금한 게 점점 많아졌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감동받은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동요 한 곡을 한 번에 불러줬을 때를 꼽고 싶다.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잊고 있던 노래를 아이의 가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듣던 날, 그 조그마한 입술을 옹알거리며 무슨 뜻인지도 모를 가사들을 읊조리는 아이를 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은 불식 간에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감사의 말이 튀어나왔다. '잘 지내고 잘 배우고 있구나. 선생님, 감사합니다.'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린이집을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이가 부를 수 있는 동요의 레퍼토리는 날로 날로 늘었다. 그 노래들을 들으며 순수한 가사들에 덩달아 엄마의 마음도 깨끗해졌다. 


동요의 효용성을 말해 뭐할까.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주 쓰지 않는 다양한 단어를 접하게 하고 복잡하지 않고 반복되는 운율 속에서 아이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 필요하지만 평상시에 엄마가 하면 잔소리 같은 말들도 노랫말에 담겨 리듬과 만나면 재밌고 어렵지 않게 따를 수 있는 놀이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동요를 더 많이 들려줘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새로 산 CD를 처음 틀어주던 날 노래 몇 곡을 귀 기울여 듣더니 "엄마 저 노래는 누가 튼 거예요?"한다. "어, 엄마가 왜 별로야?" "네." 딱 한마디뿐이었다. 헛웃음과 동시에 허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들 때까지 동요를 불러주는 것이 힘들어 티 안 나게 부린 엄마의 꼼수를 알아차린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이라는 허울에 가려 과한 욕심을 부리고 부적절한 접근을 시도했던 것 같다. 'CD가 딸려 있는 가사가 예쁜 동요집'이란 타이틀은 결국 소비를 합리화시키는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 주었을 뿐이다. 

 

CD는 가끔, 내가 좋아 듣는다. 이제는 좋든 싫든 잘하든 못하든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려줄 수 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자장가 같은 노래 몇 곡을 돌려가면서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자 했는데 언젠가부터 동요 두 곡을 곱씹으며 스르륵 잠이 든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어디서 배워와서는 아이가 먼저 나에게 불러 준 노래다. 아무리 불러도 아이도 나도 질리지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아기가 자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서정적이라 듣고 있는 아이도 편안한 것 같았다.


최근 가장 많이 불러달라고 하는 노래는 둥근 해가 떴습니다이다. 기찻길은 외우지만 둥근 해의 도입부만 아는 아이는 내가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부르다 보니 나도 이 노래의 전체 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음엔 같은 가사로 대강 때우고 허밍으로 불렀는데 이왕이면 제대로 불러주자 싶어 인터넷로 가사를 찾아 외우며 불러주었다. 


지금 하는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아이에게는 기억될 순간이 되고, 나를 향하는 믿음의 뿌리가 될 것 같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입을 통해 한 자 한 자 노랫말을 새긴 아이는 가사처럼 둥근 해가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를 할 것이다. 꼭꼭 씹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과일을 주니까 왜 과일만 먹는지 속으로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은 쑥쑥 커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방은 자기가 메고 헤어지려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말로 해주는 것보다 더 기분 좋게 받아들일 것이다. 동요가 참 좋고 동요를 함께 부르는 지금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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