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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18. 2016

이론과 현실의 차이

엄마 다 갖고 싶어요


"장난감은 사주지 않을 거야. 그거 알아? 아이의 장난감은 형태가 없어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고 색감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단순한 게 좋대. 블록도 원목으로 된 게 안전하고 질감도 좋다네. 인형도 천 쪼가리로 만든 덜 완성되고 못생긴 걸 갖고 놀게 할 거야."

    

책으로 육아를 배운 엄마는 이론에만 강하고 그 이론을 맹신했다.  


“우리 아들은 갖고 놀게 너무 없는데 장난감 좀 사줄까?”


“아니 괜찮아. 선물 받은 블록도 두 세트나 되고 우리 가베도 얻었잖아. 나중에 그걸 장난감처럼 갖고 놀게 하면 되지. 내가 부지런 떨어서 도담도담(시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대여업체)에서 장난감도 열심히 대여해올게. 시기에 맞게 해보고 넘어가야 하는 건 적당히 빌려서 쓰자. 응?”     


신랑은 마지못해 내 말을 들어주긴 했지만 속으론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모조리 숨기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마음이 어떠했든 아이는 언제나 장난감에 목말라했고 남편은 아쉬워했다.


눈치가 빠른 아들은 엄마에게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이나 조부모를 보면 당차게 장난감을 요구했다.   

   

돌쯤 선물 받은 자기 몸집 만한 소방차를 꾸준히 잘 가지고 놀았다. 그 소방차로 인해 소방관을 알게 되고 경찰차까지 좋아하게 되었으니 그만큼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이는 그냥 우연이려니 넘겼고 사실 일부러 외면하기까지 했다.


'장난감은 없어도 돼.' 진짜 책에서 본 게 확실한 것인지 기억이 가물 거리쯤 자기 암시를 하듯 혼자 중얼거렸다. ‘흙바닥에서 놀았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부지런히 데리고 흙바닥으로 이끌어주지도 못했다. 툭하면 아픈 아이는 병원에 데리고 가고 시간맞춰 약을 먹여야했다. 매일매일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계절마다 옷을 바꿔주며 신발과 속옷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체크해야 했다. 그렇게 당장의 짬이란 건 좀처럼 나질 않았다.


게다가 좀 더 입히고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외투와 안전용품 등이 더 이상 맞지 않아 쓸모가 없어지면 엄마는 좌절하고 가계부를 살피느라 아이의 장난감은 언제나 보류했다.      


가정 내 경제 논리에 힘을 잃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장난감 구입에 대한 지출은 결국 아빠의 용돈으로 때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내 용돈으로 변신로봇 하나 사줄 테니까 그냥 그건 허용했으면 좋겠어.” “흠, 그럼 그러든가” 못 이긴 척 동의를 하고 한 발 물러섰다.  사주지 말자고 설득하기엔 간만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아빠의 '부성애'에 맞설 논리가 없었다.     

아빠가 처음 사 준 변신 로봇, 쪼개지고 부서졌지만 테이핑을 한 채로 아직까지도 잘 가지고 논다

신이 난 아들은 길에서 경찰차를 만나면 반기고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신 자기 변신 로봇을 자랑했다. “우리 아빠가 사줬어요. 멋지지요?”   

 

아이가 변신로봇을 자랑하자 장난감을 거절하는 딸에게 제대로 선물조차 못하던 엄마는 옳다구나 싶어 당장 다른 시리즈를 구입해 오셨다.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상황이 정말 못마땅했지만 이때는 이미 내 마음에도 균열이 일어 난 뒤여서 딱히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장난감은 아이가 오랜 시간 정을 쏟고 길들여 훗날 추억하며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친구 같고 정다운 물건이어야만 했다.


'아들아 그렇게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강아지를 엄마가 처음 가 본 이케아에서, 그것도 오스트리아에 있는 이케아에서 사다 줬잖니. 이름도 붙여주고 함께 잠들며 너흰 진짜 친구가 되었는데 왜 만족하지 못하는 거니?'

     

너의 이름은 무무, 넌 멀리서도 왔구나. 내가 좋아하는 동화책 속 무무와 닮았어.

엄마의 외침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이론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길목으로 발을 떼어야만 했다. 시골로 데리고 가거나 집 안에서만 꽁꽁 묶어두고 키우지 않는 한 상업화되고 노출이 많은 세상에서 아들을 책 속의 옛날 아이처럼 키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흔들림 없던 고집은 기차 동영상에 목을 매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거금을 투자하여 기차 레일을 설치해주면서 무너졌다. 그 작은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며 움직임 없이 몇십 분이고 돌아가는 기차를 바라보고 신나 하는데 내가 그 돈 아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안 사주고 버텼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되도록 공룡같이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여러 번 갖고 싶다 말하는 장난감은 사주려고 노력한다. 절대 들여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장난감 수납함도 자그마한 걸로 구입해서 예쁘게 정리해주었다.


얼마 못가 엎어놓고 난장판을 만들어 순간의 후회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르륵 나열해 놓고 훑어보며 느낄 의기양양함이 아이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물욕이 생기면 안 되는데,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순 없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현실로 돌아오긴 했어도 언제든 다시 돌아가야 할 것처럼 엄마는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에 빠지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모질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목욕놀이, 공 풀, 모래놀이, 씽씽카, 세발자전거 등 집중할 수 있고 신체활동이 가능한 제품은 성장 시기에 맞춰 구입하려 애썼다. 어쩌면 너무 미리 알아두고 많이 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조금 늦은 듯 사준 미끄럼틀이었다. 바깥활동을 잘 시켜주지 못하는 직장맘의 패턴을 보완하고자 높이가 제일 높은 것을 골라 마루에 놓아주었는데 뒤로 내려오고 자유롭게 매달리며 아이는 미끄럼틀 하나를 가지고도 참 잘도 놀았다.     

 

미끄럼틀이 집에 도착한지 이틀째가 되던 날 상단에 올라앉아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말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보석이 되었다. 말도 잘 못 하면서 "나도 우이 엄마가 미끄염틀 사조 써."라고 하는데 누구한테 자랑을 하는 것인지 '아이도 좋은 건 다 아는구나,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구나.' 마음이 짠해졌다.


아직 고가의 유아 자동차나 값비싼 교구를 들여놓은 적 없고 품절사태에 뛰어들어 밤새워 가며 줄을 서본 적도 없지만 향후 몇 년내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다른 데 쓸 돈 아껴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비행기 태워주며 몸으로 놀아줘도 가위바위보 하나에도 깔깔거리고, 입씨름하며 말로 시간 때울 수 있는 그런 놀이에 아이가 만족하기를 바란다. 심심함 속에서 자기가 놀 거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자기만의 시간을 채워가는 아이로 자란다면 '부모로서의 보람'이라는 것을 조금은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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