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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27. 2016

너는 커서 뭐가 되니?

아빠의 로망


야구를 시청하는 아빠 옆에서 빨대 통에 담긴 우유를 빨아 마시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고 있었다. 노래를 불러주기는 애매하고 내려오는 눈꺼풀과 싸움 중인 아이를 위해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들릴지 말지 모를 말들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저건 야구라는 거야. 야구는 던지고 치고 달리는 경기야.” 아이는 관심이 없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대부분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다는 건 듣겠다는 신호라고 접수하고 혼잣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강한 어깨로 던지고 집중력 있게 치고 힘차게 달려가야 해. 운동은 힘들어. 매일매일 연습해야 하거든. 매일 던지고 매일 치고 매일 달려야 해. 그리고 센스가 있어야 해. 몸만 잘 쓴다고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머리가 좋아야 할 수가 있어.”     


계속 말을 하면서 남편을 힐끔 쳐다봤다.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내심 기분이 좋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이가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했다. 막연히 운동이었으면 하는 것도 아니고 딱 정해서 '야구선수'     

네가 살고 싶은 삶은 살았으면 좋겠어. 너의 선택이 '야구선수'라면 응원할께. 하지만 먼저 시키고 싶진 않구나.

남자들에게 있어 아들을 키우는 일이란 운동선수, 게임, 이런 걸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장난감도 어린 시절에 자신이 갖고 놀고 싶었던 걸 자주 언급했다. 그리고 무전기, 드론은 별 이유를 대서라도 사고 싶어 했다.


일종의 로망이라고나 할까. 로망이란 꼭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씩 거쳐 가는 과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다.      


지인들과 자식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샌가 똑같은 레퍼토리로 아들의 운동 여부, 즉 야구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편에게 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운동은 훈련비에 장비 구입 등 돈이 많이 든다,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비리는 또 어떻고, 그리고 경기에 따라다니면서 지원은 누가 할 건가?  

  

"모델이나 시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져본다. 평범한 부모가 자기 자식을 모델시키겠다고 보통은 계획하며 살지 않듯이 '야구선수 부모'란 그 소망도 한낱 바람 같은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란 의미로 던진 말이었다.   

   

"왜 당신 닮아서 키도 크고 얼굴도 작으면 모델시키는 게 낫지. 딱 이구만." (그 뒤에서 이어졌던 웃음은 자체 무음 처리하겠다.) 매번 외모 비하 수준까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그냥 웃고, 마무리 짓기 위함이지 절대 칭찬이 아니란 건 말하는 나보다 듣는 남편이 더 잘 알고 있다. "야구선수는 무슨, 모델하자 우리 아들. 돈 안 되면 어때 알바하면 되지."

 

똑같이 툭 던진 말이었지만 오히려 '알바'를 하라는 건 진담에 가까웠다. 십 년도 훨씬 전에 '프리터(프리랜서 아르바이터)'란 단어를 처음 접하고 한 직장에서 오래도록 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 프리터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일할 의지가 없거나 취업난으로 급급하게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능력껏 해가며 자기의 시간을 장악하고 사는 삶이란 참으로 충직하고 정직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걱정해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지원해주는 것. 물론 멋지고 뜻깊은 일이지만 최소한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는 삶의 아이러니 속에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진 생각이 조금 다른 듯하다. 나는 스무 살에 독립시키자 하고 남편은 아이 유학비를 모아두자고 한다. 그것도 동의할 수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야구선수는 좀 아니지 않나? 야구에 재능이 있을 가능성도 너무 희박하거니와 그 힘든 걸 굳이 발 벗고 나서서 시켜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잘되면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스포츠 스타를 키워내는 일, 누구나 혹할 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기까지 아낌없는 지원과 끊임없는 인내를 감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더욱 짧은 기간 내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특별하고 특출 난 부모가 못된다.


나도 야구가 좋다. 많이 좋아했다. 지금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몇 년간 야구에 푹 빠져 직장을 옮기는 이유로 퇴근 후 야구장으로 매일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을 꼽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야구선수라는 직업의 극한성과 고충을 어렴풋이 가늠해 볼 수 있어 더 시키고 싶지 않았다.     


"자, 봐봐. 그냥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혼자 너무 잘하고 눈에 막 띄어. 그래서 나라에서 뽑아가잖아? 그럼, 시킬게. 그땐 어쩔 수 없지 머. 운동은 그런 애들이 하는 거야. 연예인도 길거리 캐스팅으로 된 애들이 잘되더라고. 나는 그냥 한 세상 대충 살다 가는 게 꿈이야. 그러니 자식한테도 많이 바라면 안 되지. 안 그럼 벌 받아."


근데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꼭 말이 되는 소리와 이루어질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둘이 앉아 아이에 대해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해대면서 낄낄거리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재미 중에도 큰 재미에 속한다. 그나저나 아들아 넌 커서 뭐가 될 거니? 너는 사실 티라노사우르스 공룡이 아니야. 사람이었어. 다음번엔 다른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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