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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29. 2016

아이가 멀쩡히 자랄 수 있을까

엄마 나를 지켜주세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의심병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엄마의 새로운 특기란 과대망상증을 장착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들은 세상 모든 것에서 아이에게 유해할지 모를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아이가 앓거나 갖게 될지 모를 수많은 병들을 살피며 어린것을 지키고자 애쓴다.


언젠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자폐성이 있는 아이들은 어떤 특징을 보이지?라는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는 보채지 않고 유난히 혼자서 잘 놀았다. 혹시 우리 아이가 자폐가 있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멀거렸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이라지만 사실 이런 어이없는 생각들은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된 탓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처음엔 그저 순하고 내성적인 아이려니 했다. 혼자 시간을 잘 보내면 엄마는 편하고 좋은 거지, 기특한 녀석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도 늦고 유난히 엄마를 밝히지 않는 아이를 보며 엉뚱한 생각이 저절로 드는 건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육아 조언을 참고하고자 가끔 들리는 인터넷 카페를 또 기웃거렸다. 엄마를 찾고 끊임없이 놀잇거리를 가져오는 아이들은 적극적이고 엄마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아이들과 달리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를 보니 내 아이가 정상이 아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이를 24시간 끼고 있지 못하니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의 의견과 판단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워낙에 아이 상태를 민감하게 살펴주시고 믿고 의지하는 분들이었기에 그분들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사시일지도 모르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사람을 쳐다보는 게 똑바르지 못하고 검은 눈동자가 정면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기엔 분명 나에게도 그런 시선을 보인 적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우선 책이고 인터넷이며 가리지 않고 그 또래 아이 얼굴이 나온 사진들을 샅샅이 뒤져 살폈다. 정면으로 바라보게 찍힌 아이 얼굴에서 사시처럼 보이는 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가더라도 내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었고 무턱처럼 보였던 아이의 입매가 치아가 나고부터 괜찮아졌던 것처럼 그냥 지나가는 현상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다행히 유명한 노란 표지 육아서에서 비슷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는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떤 날은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며 소아마비가 의심된다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이건 뭐지 싶어 머리가 하얘졌다. 솔직히 너무 지나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 수첩을 확인해 예방접종을 맞춘 게 틀림없는지 확인을 요하시는 말투에는 혹시나 모를 조심스러움이 담겨있어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찍은 동영상에서 아이는 어쩐지 힘없이 어기적 걷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동영상에서는 걷다가 주저앉고 있었다.      


단순히 감기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고개가 아주 미세한 각도로 기울어져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두어 번 더 살펴보고 큰 병원으로 가야 할 때는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묻지도 않았고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던 사실을 갑자기 말로 전해 들으니 거의 충격 상태에 휩싸였다. 너무 놀라 이렇다 할 대답도 제대로 못해보고 돌아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결국, 이 모든 케이스에 아이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고 의사가 한 말은 섣부르고 과한 진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위험은 어딜 가나 존재했고 내가 모르던 ‘아이가 걸리기 쉬운’ 병명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도 별반 다르지 않고 그냥 지나가지를 못했다. 열 때문에 입원하여 가와사키 판정을 받았고 독감은 기본으로 설염, 후두염, 폐렴까지 앓았다. 위생을 신경 쓰지 않아서이거나 아이를 유해한 환경에 노출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원인 모를 이유도 있었고, 어린이집에서 옮겨오기도 했고 그저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걸리는 것도 있었다. 

     

과연 이 아이가 멀쩡히 자랄 수 있을까? 자라서 대학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마 한 번 찢어지지 않고, 깁스 한 번 하지 않고, 뜨거운 물에 데이지 않고 자라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의 소식을 접하고, 신종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각종 폭력이 우리를 위협하는 지금, 우리 아이라고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다른 아이의 상처와 아픔을 보면서 내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마음 놓고 할 수가 없었다.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 생각되지 않던 사소한 위험들이 한꺼번에 우리 아이를 위협할 것 같았다.   


과연, 걱정하다 죽을 이름 바로 엄마이지 싶었다.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거, 그런 걸 바라는 게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멀쩡히 자라는 게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란 걸 알고 싶지 않아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욕심이 생기거나 무언갈 바라고 싶어 질 때 처음 아이를 가졌던 그때를 되돌아본다. 손가락 발가락 다 있고 아프지 않은 아이가 나온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건강하기만을 바라겠노라 빌던 때를 말이다. 숨만 붙어 있어도 감사하겠단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엄청나게 겸손하고 깨우친 엄마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겁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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