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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31. 2016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가짐

엄마 내 길을 갈 수 있어요


아이는 작년 3월, 24개월을 채우지도 못하고 말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아이의 입소를 앞두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흉흉한 소식들을 쏟아 냈기에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떼어놓고 복직하던 때와 비슷한 불안감을 또 한 번 맛봐야 했다.


너무 어린데 안 보내면 안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던 엄마도 대안이 있느냐는 짧은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 이 김에 어린이집을 점검한다는 차원에서 어쩌면 아이에게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 크게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입 밖으로 내인 적 없는 걱정이었지만 딸의 불안이 엄마의 눈에는 읽힌 게 분명했다. 엄마가 봐주면 안 되느냐고 농담으로라도 조르지 않는 딸이 안쓰러워 뭐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도 그냥 그 논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이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글이나 얘기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고 직접 겪어봐야만 판단이 가능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내겐 바로 '어린이집'이 그랬다. 이상하리만큼 정보도 찾을 수 없고 들을 만한 곳도 없었다.


우선 집 근처 어린이집 한 군데를 방문해보고 보내기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다. 고민은 많이 했지만 선택에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특별히 더 좋은 점이 무엇인지 잘 구별이 가진 않았지만 구립이라며 엄청 자부심을 보인 곳이어서 일단 안심을 했다.  

    

나는 깔끔하게 매듭지어지지 않는 부분들을 어렵게 생각 말고 한 가지만을 기억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어린이집은 ‘보육’을 하는 곳으로 인정하고 먹고 자고 잘 싸고 안전하게 맡겨졌다 무사히 돌아온다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그 이상은 어떤 것도 바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해서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어야 했다. 잘 먹었다고 하면 배가 덜 불러있어도 그런 줄 알고 잘 잤다고 하면 낮잠을 싫어하는 아이라도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 눈에 눈물이 맺힌 상태로 내 품에 안겨도 즐거워했다고 하면 그냥 다 그런가 보다 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봐주는 일이 고된 것임을 인정하고 헤아릴 것, 예민 레이더가 발동되지 않도록 신경을 분산시켰다.  

    

종일반이라 오후에는 통합보육이 이루어져 다른 반 선생님이 하원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선생님을 마주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영혼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무조건 "우리 아이 오늘 너무 잘했어요."를 연발하는 다른 반 선생님을 함께 웃으며 응대할 수가 없었다. 뭘 잘했다는 거지?


그래도 그 선생님을 싫어하기보단 수더분하고 솔직한 담임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하지만 어린이집 자체에 초점을 맞추거나 떨어져 있음에 미안해하지 않고 아침저녁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마음을 집중했다. 


아파트 단지 내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이라 입구 앞 주차가 가능했지만 일부러 조금 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시라고 손을 잡고 걸었다. 또, 급하다고 데려다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가는 행동은 되도록 안 하려고 했다.


아침 5~10분은 엄마에게 있어 오후의 1시간과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좇는 그 눈에 끝까지 안도감을 심어줄 때까지 언제나 여유로운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달렸다.      


그리고 먼저 와 있는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했다가 일일이 불러주며 인사를 해줬다. 엄마 없이 앉아 있는 그 어린것들이 가엾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도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길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실천했다.  

     

저녁에 데리러 갈 때면 세상 가장 대단한 일을 한 듯 대해줬다. "오늘도 재미있었어? 얼른 우리 집에 가자." 해가 짧아 어둑해진 밤길을 운전할 때면 달님이 어디 있는지 왜 우리를 쫒아오는 건지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고, 해가 길어져 길가를 볼 수 있을 때면 도로 위에 차들과 신호체계에 대해 말해주거나 집 주변 풍경과 건물 등을 설명해주었다.   


어린이집에 가고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별 거 아니라는 걸 알게 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아침은 늘 “난 유치원 안 갈 거야.”로 시작했다. 눈을 떴든 정신을 차렸던 어느 상태와 자세도 상관없이 그게 안방에서건 차 안에서건 순서와 장소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럴수록 안 간다는 아이 때문에 짠한 마음보다 맡길 곳 없는 절실함에 비중을 두어 슬퍼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오직 무사히 있다 오는 것, 그거 하나면 되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잘 있다 돌아오기만을 빌어도 아이는 무척이나 많이 아프고 계속해서 탈이 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낯선 환경에 있다 돌아오는 일, 그걸 매일 반복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너무너무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규정상 아프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보내야 할 땐 다른 아이들에게 병을 옮길까 못 보냈고, 원에서 등원을 요청해도 어린이집 생활을 버틸 재간이 없어 보이면 며칠씩 쉬게 하느라 보내지 못했다. 아이는 스스로 방어 기제를 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멀쩡하다가도 어린이집에 이틀 이상 출석하면 신기하리만큼 다시 열이 나고 입맛을 잃었다.  

   

그 누구보다 잘 적응할 거라고 확신을 하던 선생님들은 아이의 결석이 길어질수록 어린이집을 그만두진 않을까 슬슬 걱정하는 눈치를 보였다. 워킹맘이니 아파도 봐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서 약 먹이고 보살피겠다 해도 미련없이 데리고 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린이집 등원은 한 달 의무 출석일수 11일을 채우는 게 유일한 목표가 되어갔다. 3개월이 고비였고, 좀 나아지는데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반은 해봤으니 반은 보내지 말고 내년에 다시 시작해볼까?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약해졌지만 이번에 그만 두면 영영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할 것만 같아 도저히 그만두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약에 의지하고 보내는 날이 적어도 그래도 최악이 아니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스스로와 타협했다. 최소한 뉴스에서 처럼 맞고 오거나 굶기지는 않지 않는가. 몰랐으면 쉽게 포기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오히려 매스컴에서 전해준 최악의 소식들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을 버티고 어린이집을 옮긴 아이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이었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이곳을 좋아하고 잘 다닐 수 있을 것이란 걸. 꾸미는 목소리와 수식을 덜어낸 군더더기 없는 안내, 한 눈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는 체계, 높은 천장과 널찍한 교실, 그리고 신선하고 아낌없는 간식까지. 이건 모두 다른 곳을 겪어 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맘에 들어. 너무 좋아. 1년을 기다려서 들어온 보람이 있어. 기대도 안 했는데" 회사에서 가깝단 이유로 선택한 곳이었다. 그런데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건 내겐 더 이상 없을 만큼의 행운처럼 느껴졌다. 상기되어 아이처럼 좋아하는 내게 남편은 너무 섣부르게 좋아하지 말고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의 고통을 함께 겪은 동지로서 속으로는 분명 안심을 하고 있을 터였다.

    

새로운 곳에서 두 달여를 보낸 아이는 아침에 눈을 번쩍 뜨고, 과일이나 우유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안 간다는 말 대신 누가 데리러 올지를 확인하는 여유도 생겼다. 어린이집이 달라져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사이 아이가 크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생긴 변화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게 어린이집을 잘 만나서인 것 같아 어린이집을 잘 운영해주시는 원장님께 정말 감사했다. 업고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거 같았다.


회사 동료들 인사도 "요샌 애 안 아파요?" "어린이집 잘 다녀요?"였는데 내가 안심하고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보고 잘 적응하나 싶어 함께 기뻐해 주었다. 친청엄마도 며칠간은 아이가 울지 않았는지 문자를 보내 확인하시더니 '울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답을 듣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 다녀오십시오.”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신발장에 자기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인사도 곧잘 하는 아이다. 엄마의 마음가짐은 처음 입소하던 날과 특별히 달라진 게 없는데 일 년 전과 다른 아이로 성장한 아이를 보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너는 알아서 네 갈 길을 가는구나’ 고작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일 뿐인데, 낮동안 잠시 헤어져 있는 것일 뿐인데, 매일 아침을 공항 길 배웅하듯 군대 입대길 배웅하듯 온갖 짠내 나는 마음을 끌어다가 뒷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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