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퇴청 마루에 곱게 양산 들고 앉아 서울살이를 그리워하는 분 바른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나는 이런 이미지를 TV 화면에서 본 걸까, 아니면 소설 속 묘사를 내 나름대로 이미지화한 걸까? 왜 이런 모습이 그려질까 싶어 찬찬히 생각을 들여다보니 아들을 보러 시골에 내려가 지내는 내 모습이 더도 덜도 안 하고 딱 그 짝인 탓이다. 차이가 있다면 도시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금세 되돌아올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는 것과 그래서 따분하지도 않고 구속이라고 여겨지지도 않다는 것일 테다. ‘아들 보고 싶어 어째’를 연발하시는 할머니께 난 아이 떨어 뜨려 놓은 짠한 존재고, 아이를 봐주시는 분에겐 오가느라 고생 많은 엄마다. 두 분 내외는 늘 잠이나 실컷 자고 산이나 실컷 보고 가라신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그곳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야무짐 같은 게 있긴 했었나 싶을 정도로 늘 여기서만 한 템포 늦고 힘이 달린다. 일찍 철들어 서러웠던 어린 시절을 그렇게나 철없는 엄마로 눈물겹도록 보상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