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May 26. 2016

그리운 시장골목

나를 설레이게 하는 곳


초등학교 하교길을 시장을 가로지르며 오갔다. 오전엔 버스를 타긴했지만 어차피 반도 못가 다시 걸어야만 하는 코스라 집에 올때는 슬슬 걷는게 오히려 편했다. 학교 앞 분식집보다 조금 비싸긴 했어도 맛깔난 맛에 이끌리던 떡볶이집을 하루가 멀다하고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었다. 그 당시 시장에는 구경할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다고 기억된다.


고등학교 반학기를 앞두고 새로 이사온 동네는 버스노선도 많지 않고 전철도 타려면 마을버스로 삼십분 이상을 나가야해서 몇 년을 거의 고립상태로 지냈다. 교통은 불편했어도 논자리가 남아있어 비가 오는 날이면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내가 좋아하는 목욕탕도 두 군데나 있어 한적하니 정말 살기에 좋다고 느껴지는 동네였다.


무엇보다 여러 개의 아파트 단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작은 시장하나가 들어서 있어 잊고 있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규모에 비해 없을 것 없이 알차게 들어선 시장은 타 지역 사람에게도 이미 명물이 된 곳이었다. 어느 동네에 사냐고 했을 때 동과 아파트 이름은 잘 몰라도 시장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멀리서도 온다고 했다.


서울로 돈벌이를 하러 다니던 때는 고단한 시간으로 기억되지만 그래도 견딜만 하다고 느끼게 해 준 하나가 일부러 시장 근처 정류장에 내려 걷는 일이었다. 어두울 때 나가 어두울 때 돌아오는 삶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슬슬 걸어 퇴근하는 일이 내 템포를 찾을 수 있고,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도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때라 이것저것 반찬 거리도 사고 사무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람사는 느낌을 받으며 느릿느릿 천천히 걸으며 지났다.


식사가 늦어지는 날엔 분식집에 들러 잔치국수 한그릇을 후르륵 먹고 집에 돌아왔다. 양념장이 든 우묵가사리를 사와 티비를 보며  먹기도 하고 주말엔 과일을 사러 들렀다가 떡꼬치나 호떡 하나를 입에 물고 돌아오기도 했다. 낱개 포장된 1~2천원 하는 떡도 눈에 띄는 대로 사왔다.


특이한 구조지만 재래시장 안에는 중형마트도 함께 들어와 있어서 반드시 마트를 가야만 살 수 있는 물건도 함께 사올 수 가 있었다.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시장과 마트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교통이 조금 불편해도 시장이 있는 동네에 산다는 건 어쩐지 마음 든든한 일이었다.


친정을 벗어나 거처를 옮기면서 시장 가까이로 다시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어린시절 드나들던 바로 그 시장으로. 번화가였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더 큰 시장도 있었지만 예전 그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어쩐지 아련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석바위 시장'. 그 곳의 이름이다. 심지어 그 곳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내 오래된 지인까지 생겼다. 그녀를 대동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그 시장을 찾아갔다. 오랫만에 찾은 그 곳은 내가 다니던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 되어있었다. 길가와 상점 경계는 깔끔하게 구분되고 캐노피와 차양으로 인해 날이 궂어도 수월하게 장을 볼 수 있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신발을 적시던 바닥 꾸정물도 어쩐지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러한 변화가 이동하고 구경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었지만 환한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시장 통로가 어두컴컴하고 조금은 삭막해보이는   기분탓일까.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있는 모습일 테지만 변화된 후 처음 가본 시장과 내가 기억하는 시장이 달라 조금 어색했다.


낯설기도 하고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익숙하지 않아 붕- 뜬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자주 가지도 못했으면서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전처럼 머무르길 바라고 있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래,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되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장도 가고 가끔은 마트에도 가던 내 장보기 패턴은 아이가 생기면서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져만 가고 있다. 생협에서 사야하는 주스와 과자, 한살림에서 구입하는 조기, 온라인 산지직송으로 주문해 먹는 과일, 따로 주문하는 아이 보리차 등 굳이 찾아야하는 가게와 즐겨찾기 되어있는 사이트가 늘어났다. 가끔은 간식과 상비약 구입을 위해 해외배송도 받고 더 가끔은 견과류를 보러 백화점 유기농 코너에도 가곤 한다.


몇년 간 구입처가 다양해진 탓에 당장 시장에서 모든 구입에 대한 해결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당근과 감자를 낱개로 구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를 식탁으로 불러들이는 마법의 '조기' 가 무척이나 저렴했고 게다가 덤까지 주시니 받아도 되나 쭈뼛거리면서도 왠 횡잰가 싶었다. 내 입맛을 돋울 소금에 절인 오이지도 잔뜩 샀다. 과일은 크게 싸다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직접 골라주는 주인이 존재했고, 조개나 오징어 같은 해물은 확실히 신선하고 식감이 더 쫄깃했다.  


나는 여행을 가서도 그게 외국이든 우리나라의 시골이든 되도록이면 그 곳의 시장을 가보려고 한다. 어쩐지 경쾌하고 활기찬 느낌이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서이다. 맛있는 음식과 볼거리가 다양한 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시간도 잘가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의식하지 않고 그 시간에 충실하게 속할 수 있었다.


나 말고도 시장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제주도에 여행을 가서도 단연코 핫플레이스는 시장이다. 지난 봄, 일부러 찾아간 동문시장은 현지사람보다도 외지 젊은이들이 더 많았다. 줄을 서서 떡볶이와 오메기떡을 사먹는 모습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나이드신 분들께는 생활이지만 젊은이들에겐 놀이가 된 문화, 중년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는 '시장'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오늘만 존재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시장을 오가며 늘어난 공상과 생각들, 물건을 주의 깊에 바라보는 능력,

아주머니들을 보며 그 이면의 삶을 생각해봤던 상상력, 내가 글을 쓰면서 꺼낼 수 있는 몇가지 안되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는 능력들은 모두 그 때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시장'이라는 컨텐츠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현실이 참으로 재미가 있다.              

     

"시장 가자. 반찬 만들자." 15년 전 내가 해주던 밥을 먹으며 함께 공부했던 동생은 이제 내 반찬을 만들어주는 친정언니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 가자. 너무 좋아."


깨끗하고 편리하지만 진열품을 쇼핑하는 마트와 달리 묻고 답하고 흥정할 수 있는 것이 시장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손대중의 힘이 계량의 힘을 이겨내는 곳,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보며 벅차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그 생동감으로 아이에게 전해 줄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곳.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곳, 시장이다. 시장엔 언제라도 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한 관심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