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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02. 2016

내 주변 슈퍼맨, 슈퍼우먼

당신들이 있어 살만합니다


내가 하는 일 중에는 은행에서 이만큼 지급해달라고 청구를 하면 그 금액을 검토하여 지급액을 확정하는 업무가 있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이라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때론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오류를 발견해 내는 일이 나름 재미도 있고, 차액을 발견하면 뿌듯하기도 해서 야근까지 해가며 열심히 하고 있는 업무다.


은행이라고 하면 숫자에 예민하고 절대로 틀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주는 곳인데 청구기간이며 남은 잔액에 대해 잘못된 정보로 계산하거나 이미 끝난 것을 다시 청구하는 등 매번 발견되는 오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놀랄 때가 많이 있다. 개인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은행이 이 업무를 지정된 직원에게 고유 업무로 주는 것이 아니라 업무 이동을 하며 잠시 맡았다 떠나버리는 식이어서 아무도 이 일을 열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처음엔 반복적인 설명을 듣고도 자꾸만 틀리는 담당자가, 그리고 정성껏 업무를 처리해주지 않는 그 무책임함이 야속해서 싫은 소리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차근히 설명해주면 찰떡 같이 알아듣고 잘 처리해주는 담당자들도 생겨났기에 제대로 못하는 담당자들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한 은행 담당자의 남다른 탁월함에 점점 시선이 갔다.


유독 이 은행만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몇 년째 바뀌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바뀔 예정이 있다 들었지만 올 초부터 바뀔 담당자를 미리 지정하고 진작부터 인수인계를 시작했기에 별로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사실 바뀌고 안 바뀌고의 문제를 넘어서 이 업무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너무나 조심스럽고 빈틈이 없어 흡사 장인을 연상케 했다.


다른 은행이 워낙 실수가 많았기에 가장 많은 양을 가장 정확하게 처리하는 게 솔직히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덕분에 그간 내 업무가 일부 수월했고 내 퇴근시간을 앞당겨 주시는데 기여한 바가 크기에 이 분에 대한 나의 신뢰는 날로 높아져 지금은 내 마음속 작은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내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시댁 김장이며 가족행사까지 오라면 가야 하고 찾지 않아도 갈 곳이 많아 늘 바빴다. 가끔 전해 듣는 소식만으로도 감당할 일이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까지 도맡고 있었기에 모임 때면 그 좋은 요리 솜씨를 발휘해 뚝딱 음식을 해대는 모습에 나는 입을 떡 벌리곤 했었다.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언니에게서 이번 5월,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 선물을 받았다. 엄마도 챙기지 않고 그냥 넘긴 어린이 날에 RC 카를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다. 종류와 값어치를 떠나 그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슈퍼우먼 언니가 선물 줬어." 남편에게 말을 전하 짠해지는 마음에 휴대폰에서 언니 이름을 검색했다. (난 평상시에도 그 언니를 슈퍼우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는 메시지를 남겼다. 저만 받으면 어떡해요. 애들이 멀 좋아할까요?라고. 묻는다고 알려줄 언니도 아니었지만 답신 문자에 나는 또 한 번 울컥해졌다.


뭐 대단한 거라고.. 그냥 생각나서.. 동생들 챙겨.. 언니들까지 신경 안 쓰고 살아도 돼. 너무 피곤해진다.




이 성실하고 씩씩한 슈퍼맨과 슈퍼우먼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두 분 모두 세 자녀의 아빠, 엄마라는 사실이다. 둘도 아니고 무려 셋. 상상도 할 수 없는 압박이 밀려오는 숫자다.


은행 과장님은 대부분의 날을 야근을 하시지 않는다. 아니할 수가 없다. 큰 아이 둘을 데리고 출퇴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내는 집에 계시는 부인이 양육을 하고 있지만 둘은 과장님 몫이다. 그런데도 자기 업무를 정해진 시간 내 흩트림 없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책임감과 집중력이 실로 놀랍게 느껴진다.


막 유난한 관심을 가지고 캐물은 건 아니고 과장님의 위에 두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녀 알게된 사실이다. 얼마 전 어린이집 부모 행사에도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오셨는데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면서도 솔직히 살짝 놀랐다. 나는 도시락 하나에도 휘청거리는데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하시다니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언니는 공부방을 운영하며 세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공부시킨다. 그런 언니의 둘째가 올해 배정받은 중학교에 1등으로 들어가 엄마의 어깨를 한껏 추켜 세워주었다고 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지치고 힘들어도 이래서 자식 키우고 공부시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언니 공부방 오래오래 하셔서 우리 애도 데리고 있어주세요.)


전에는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막연히 돈이 많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과장님과 언니를 보며 아이 셋을 키울 수 있는 사람들이란 하늘에서 내려주는 게 아닐까 하고 이제는 생각해본다.


그들을 슈퍼맨이고 슈퍼우먼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여러 가지 역할과 많은 일의 양을 척척 해내서이기도 하지만 조금 색다른 정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랑이 많고 성실하고 불평이란 걸 하지 않는 착한 성향의,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이 영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있어 아이들이 자라나 보다.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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