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였지만 아무 것도 아닌 일

기다림의 시간

by 유화

4학년에 시작해 3년이란 시간을 야구부에서 보낸 아들이 시즌아웃을 했다. 시즌아웃은 마지막 대회나 시합을 끝으로 모든 야구부 공식적인 일정에서 제외되고 졸업 전까지 훈련만 참석하거나 그마저도 예외사항으로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이야기하면 신기해할 만큼 아이의 야구 시작 계기는 크게 특별하지도 않고 재능의 영역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올시즌 너무나 빛났던 야구부의 여정이 너무나 가슴 뭉클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존재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이는 5학년까지 벤치신세였다. 최근 야구부 후배에게 하는 말을 들은 바로는 5학년에 정규시합에 두 타석 정도 서봤었다고 하니 4학년부터 전국대회에 나가게 된 그 동생 앞에서 그 말을 하는 본인의 심정은 어떨지 차마 가늠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가 올 2월 동계 프로그램에서 차차 기량을 쌓아 투수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3월 전국대회 지역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함께 했던 형들의 염원이었던 소년체전에도 지역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시작이 정말 좋았다. 그런 기세로 지역 대회는 중학교배 한 대회를 제외하곤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고 한 번은 최우수상 선수, 한 번은 홈런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이 아이 혼자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임을 고백하고 인정한다. 기존부터 너무 잘해주던 동기들, 부족한 인원을 메꿔준 능력 있는 후배들, 뚝심 있게 지도해 주신 코치진부터 내 시즌이라도 저렇게는 못할 것 같은 후배 부모님들의 지원과 정말 내 자식을 대신 키워주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헌신해 준 운영진 덕분이다.


나 또한 아들 시즌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상반기 6개월은 모든 일 다 제쳐두고 아이 야구부 일정만 챙기겠다는 각오로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출근하던 일을 정리했다. 지방일정은 지원조로 함께하고 전국대회 예선통과를 자축하기 위해 6학년 부모님들의 지원금을 받아 매일 간식을 준비해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다 간식이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야구부 일정이 됐고 이에 다른 부모님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어떤 간식을 하면 좋을지 이것저것 예시로 사다 나르며 한 달간 봉사를 했다. 또한 갑작스레 회장이 사임을 하고 그 아들이 야구를 그만두게 되면서 불안정해진 운영진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자문역할을 자처하고 항상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했다.

올 시즌 돌아보면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6학년 아이들의 학습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주 토요일 훈련이 끝나면 밥을 먹인 후 영어를 지도해 준 일이다. 한두 명만 참석하거나 와서 떠들고 분위기 망치면 시범수업 후 수업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전원이 참석한 것은 물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은 집중하고 성과를 냈다. 거짓말처럼 ‘단어시험을 잘 봤다’, ‘읽기 테스트를 통과했다’며 자신들의 성장을 늘어놓고 나만 보면 영어이야기뿐이었다. 그로 인해 행복해진 건 다름 아닌 우리 아이였다. 학교에서 집이 멀어 운동 후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던 아이는 좀 더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줄 수 있었고 영어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도우며 봉사의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사실 운동이라는 게 특히 야구부라는 게 특성상 아이 혼자 야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어지간히 괜찮은 시스템도 갖춰진 곳에서 부모들의 헌신과 경제적 지원으로 힘들게 해야 하는 게 운동이고 야구다. 그래서 작은 부분이나마 내가 야구부에 기여하는 게 좋았고 함께 성장하는 게 기뻤다.


돌이켜보면 야구부 생활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신랑이 기본만 해라, 나서지 마라 하는 말들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정말 이렇게나 수군거릴까 싶을 정도로 말이 많고 자식을 앞세운 모임답게 시기질투도 있는 곳이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험담할 것이 넘쳐나고 중도를 지키는 게 답도 아니다. 여러 이유로 떠난 이들도 있고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뭉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아이들은 야구를 잘한다고 해서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부족하다고 해서 제외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야구를 시키면서 힘들었던 점은 외부적인 요소보다 기초를 다지고 살아갈 지식을 쌓아야 할 시간에 이렇게 운동만 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였다. 끊임없이 들었던 의문이지만 돌이켜보면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그동안 엄청난 학업량을 소화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아이는 다행히 수업시간만이라도 집중하자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주어 소소한 평가들은 무난한 점수를 받아오고 틈틈이 책을 읽어 학습공백도 크게 없었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에겐 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스쳐간 많은 인연 속에서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고 앞으로 야구판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힘들게 배웠다. 노력한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가 특히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없었던 5학년 말이었다. 겨우 서 본 한 타석에서 나온 안타가 수비 실책으로 그라운드 홈런이 되어 그 대회에서 홈런상을 받았던 건 아이의 야구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어 주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 아이의 시즌아웃을 계기로 그간의 여정을 적으며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성과를 늘어놓고는 있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이 모든 성과가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3년간 몰랐던 이 사실을 아이가 최우수선수상을 받던 날 깨달았다. 잠시 억울하기도 했고 무척 기쁘기도 했으나 이는 그저 지나가는 여정에 불과하다. 진짜는 중학교 때부터이고 아이는 앞으로 시즌제 중학교에서 일 년 간 없는 선수처럼 지내야 한다. 하지만 또 한 번 무한의 기다림을 극복하고 아이가 도약해 낼지 말지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한 번 해본 아이는 또 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가장 잘했던 건 조바심 내지 않았던 거니까.



아들 졸업 미리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