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해지는 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같은 경우 남편을 취직시켰다. 고정적인 돈을 그것도 넉넉히 가져오라고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게 작년 11월의 일이다. 다행히 남편은 지금 직장에서 일 년을 버텨냈고 최근 승진도 했다. 떠밀려가듯 들어간 곳이 아니라 그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주고 있다. 덕분에 아이가 진학할 학교 근처로 이사도 할 수 있었고 풍족하진 않아도 숨통이 좀 트였다.
과거 남편은 갑작스럽게 제주로 떠났고 그곳에서 8년을 고군분투했다. 처음 5년은 기관에서 나중 3년은 사업을 하면서 말이다. 조금 더 시간을 주면 언제든 해낼 거 같았지만 아이가 야구를 하면서 더 이상 기다려줄 수가 없었다. 그게 미안하고 안타까웠지만 나는 그의 와이프여야 하는 것보다 아이의 엄마가 우선이었다.
“여보가 잘할 거 알아. 시간이 아쉽지. 그래서 그만두라고 안 해. 그냥 덜 주고 힘들어도 내가 벌면 되고 그냥 이대로 유지하는 할 수 있는데 아들 야구는 못 시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아이가 야구를 할 수 있게 엄마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야구레슨장을 운영하는 지인을 둔 엄마의 친분이 시작이었을까? 이십 년 전 잠시 가르쳤던 아이가 야구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일찌감치 그 학교를 점찍어둔 선구안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알바를 하며 딱, 딱, 어디선가 들려오는 공소리를 듣고 뭐에 홀린 사람처럼 쫓아가 저희 아이 좀 가르쳐달라고 조른 막무가내 정신까지 갖췄다면 이 정도면 나무랄 데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우연이고 행운이고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남편이 사업을 접도록 만든 건 다른 영역이기에 조금 모진 다짐이어야 했고 지금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다행히 당사자는 크게 미련이 없어 보인다. 때마침 괜찮은 오퍼가 있었고 남편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끝나지 않을 거 같던 터널 속에서 신랑도 누군가 자기를 멈춰주길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기약 없이 지속될 거 같은 제주생활은 조금은 허망하게 막이 내리고 우리 세 식구는 다시 모여 살게 되었다.
하지만 함께 살면 더 대화가 많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처럼 남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이 성과나 대표의 칭찬이야기다. 늘 그랬다. 어디서든 잘하고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 이제 우리 부부는 공통의 모토가 생겼다. ‘칭찬 말고 돈으로 주세요!’ 나는 이번 승진도 크게 축하해주지 않았다. 다음날 월급명세서를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누구가에겐 한없이 다정한 내가 이렇게 모질어지는 이유는 뭘까? 엄마가 되는 건, 특히나 야구를 운동을 하는 아들을 둔 엄마는 지독해지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해서는 안 되는 일 말고는 못할 일이 없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