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는 아이의 취미생활은 피아노치기

by 유화

아이를 야구부에 입단시키고 엄마가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던 사교육이 바로 피아노 레슨이다.

학교가 끝나면 정문 앞에서 대기했다가 레슨 한 시간을 시키고 훈련시간에 맞춰 학교에 다시 복귀시키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이가 거부를 했다. 피아노가 싫은 게 아니라 훈련시간에 촉박하게 도착하는 것도 싫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야구부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땐 어려서 아이가 조리 있게 설명을 했던 건 아니지만 '안돼, 엄마 야구부에선 그게 안돼.'라는 말로 나를 멈춰 서게 했다. 이제 야구부 3년을 겪으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야구부 일정상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는지를 말이다.


그래도 그때 당시 바로 포기는 하지 않았었다. 기존에 다니던 피아노 학원 원장님께 토요일 오후 한 시간 개인레슨이라도 이어갈 수 있게 부탁을 했다. 원장님 수업이고 따로 시간을 내주셔야 하는 거라 비용이 적진 않았지만 야구랑은 상관없이 그냥 처음 계획했던 대로,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다 다짐했던 대로 하고 싶은 고집 같은 게 있었다.


뭐가 됐든 영어랑 피아노는 유지해주고 싶었다. 수학은 진도가 있고 사회, 과학은 책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거 같은데 영어랑 피아노는 귀로 들어야 하고 야구처럼 시간을 들여 훈련하는 방식이어서

엄마가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영어는 3년을 끌어 최근에 화상영어를 마쳤지만 아쉽게도 피아노를 유지할 수 있던 기간은 길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지 않은 공백도 길어지고 앞으로 더 늘 거 같다는 확신도 없어서 올해 이사할 때 기존 피아노를 처분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다. 귀멸의 칼날 ost를 연주해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학원을 보내줄지 묻자 자기가 패드 보고 연습할 테니 악기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 돈으로 글러브를 새로 장만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자주 치지도 않을 피아노를 다시 구매하자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한곡을 완성하더라고 그게 어디냐 싶어 피아노를 구입해 주자 아이는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면 평일이면 30분, 주말에는 한 시간 이상씩 피아노를 쳤다.


칠 수 있는 곡이 많지도 않고 체계적으로 배워 향상되는 느낌은 없었지만 패드만 보고 그렇게 배우는 것도 신기하고 늘 심취해 있어 아이가 피아노를 칠 때면 나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자꾸만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아냈고 그래서 몇 번 따라 흥얼거리면 엄마도 관심 있어한다는 걸 알았는지 저녁을 하는 동안 이곡 저곡 바꿔가며 무슨 곡인지 맞춰보라고 문제를 내곤 했다. 엄마는 마치 듣기 평가처럼 집중을 하고 순서대로 이름을 말한다.

- 귀멸의 칼날, fly my wings, 레오..


다 알고 있네? 하며 아들이 기뻐한다. 그렇게 많이 들으면 누구라도 맞출 수 있을 만큼 친 걸 또 치고 치면서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는 게 신기하다. 특히 fly, my wings라는 곡은 연주곡으로 먼저 접하고 가사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가사가 좋았는지 엄마에게도 한번 찾아보라고 한다.


부러진 날개로도 기어이 날아오르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 노래에서 어쩌면 운동을 하는 자신을 모습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해야 살아남을 거 같은 스포츠의 세계에서 저런 여리고 따뜻한 감수성이 빛을 발할 날이 있을 거란 걸 엄마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