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에서 홈런이 나오면 축제였다. 다들 환호하고 톡방에서 축하를 날리고 며칠 뒤면 야구부에 어김없이 홈런턱 간식이 배달되었다. 당사자도 기쁘고, 부모도 기쁘고, 또 축하해 주는 이들도 모두 기쁜 일이다. 그만큼 홈런은 귀하고 귀하고 또 누구나 바라는 바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중간에 공식적으로 홈런턱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부모가 기쁨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막는다고 막아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들은 올해 홈런을 두 번 쳐봤다. 한 번은 연습경기에서, 한 번은 정식대회에서였다. 연습경기에서는 아빠가 따라갔던 김에 거기 계신 분들께 음료를 대접했다고 했지만 마지막 대회에서 친 홈런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이제 그럴 시기가 지난 것이다.
그럴 시기가 지났다는 건 시기에 따라 그 기쁨도 그 의미도 조금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이건 누가 정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그랬다. 6학년 형아가 대회에서 자기 몫을 한 건 그렇게 기쁘고 축하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게 진정으로 기쁘고 의미 있었던 건 아이의 첫 안타였다. 4학년 말 형들이 나간 대회에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어 나간 타석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첫 안타를 쳤다. 그때는 그게 이렇게 의미가 있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정확하게 뇌리에 남아 기억될 줄은 몰랐다. 그날을 이렇게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안타턱을 쐈기 때문이다.
첫 안타는 무조건 쏴야 한다고 했다. 왜지? 안타턱을 쏴야 잘되는 건가? 믿거나 말거나 무슨 이유에서건 그냥 쏘라니 믿고 저녁을 샀다. 예민하던 앨리스는 사실 순진한 구석도 있었다. 안타턱? 이게 뭐 큰 일이고 한턱을 쏴야 하나? 다행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세 집이서 간단히 먹은 저녁이 2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야구부 생활을 하는 동안 배우고 도움 받는 것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레슨비였다고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안타턱을 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너무 답정너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나는 스스로 축제를 열길 바란다. 잘 알지 못하는 먼 길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길에 들어섰다면 무엇인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기원제를 하고 떠나도 좋을 것 같다. 주변을 먹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시작을 알리면 두고두고 기억할 거리가 생길 것 같다. 내 시작을 복스럽게 여겨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