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면 충분했다

이직의 이유

by 유화

남편과 대화를 하다 한해 열심히 일한 덕에 내년에 연봉이 오르겠지만 세금 때문에 걱정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김에 그간 필요하지만 미뤄뒀던 절세에 대한 공부를 차분히 해보고 더 나아가 경제적인 감각을 키워 가정 내 소득관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알고 막연함에서 벗어난다면 노후를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길로 이어지는 시작은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던 차에 학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개원 시 학원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어도, 아이들 스케줄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오락가락 조정해도, 영어파트를 모르는 원장을 대신해 학부모 상담을 다 하고 직접 입회를 시켜도 어느 것 하나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저를 뽑아주고 인정해 준 원장님이 잘되길, 학원이 잘돼서 나도 같이 성장하고 안정되길 바라고 바랐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고작 4만 원 때문이었습니다. 신규단지 입주초기는 학원을 지켜보는 기간이었는지 좀처럼 늘지 않던 원생이 어느 시기가 지나자 크게 늘게 되고 동일한 시간대에 아이들이 몰리면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시점이 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어떻게 받기는 하겠지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할 수 없고 장기적으로 학원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로 파트강사 채용을 제안했습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저를 원장이 모른 척 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파트 강사를 곧 뽑겠노라 했지만 논의는 되고 있는 듯 보여도 계속 보류되고, 이마저도 경비 절감을 이유로 긴 연휴가 끝나는 뒤로 시기를 자꾸 미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미뤄지는 몇 달간 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 인센티브를 요구했고 원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어려운 시기를 원만히 넘기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파트 강사가 오고 첫 달부터였습니다. 인센티브에 자꾸 이유가 붙었습니다. 저는 기준치 이상의 페이를 더 받지 않기 위해 되도록 시간대에 맞는 적정인원을 파트 강사에게 넘기고, 신규생에 대해서는 관리가 필요한 아이 아닌 이상 제가 더 받으려는 욕심 같은 건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첫 달은 파트강사에게 넘기면서 발생한 수업일수 부족, 그리고 두 번째 달은 입원으로 결석한 아이를 뜬금없이 퇴원처리하면서 금액을 자꾸 조정하려고 들었습니다. 이런 행태에 지난 7개월간 신규 학원을 정착시키는데 온 힘을 다한 저로서는 허탈감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랑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자세한 부분까지 신랑이 알 필요도 없고 속속들이 나열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딱 하나, 나 같으면 나 같은 강사 만나면 돈을 더 주고 싶을 거 같은데 오히려 돈을 깎네? 40명 가까이 원생이 늘도록 퇴원생은커녕 컴플레인 하나 받은 적 없는 나를, 내가 원장이면 업어주고 싶을 거 같은데 그건 아닌가 봐? 세상은 참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길게 일하지 않고 오후 낮시간만 일하면 되는 게 좋아서, 늘 넘치는 인정을 받고 아이들이 이뻐서, 저에게 이것저것 의논해 주는 엄마들이 고마워서, 게다가 새로운 파트 강사는 절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좋아해 주며 마치 어미새 보듯 따라주셔서 어지간하면 학원에 그냥 남으려 했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학원을 오랫동안 다니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친구 엄마이자 친구로 지낸 지 6년 된 지인이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무지막지한 열정을 쏟아내고 또 결국은 속상해하고 있는 저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열정을 다른데 쏟으면 좋겠다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자신의 회사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정말 돈을 벌고 싶어 졌습니다. 아니 일한 만큼 보상을 받고 싶어 졌습니다. 그곳은 그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가정주부지만 용돈벌이 삼아 일하고 있는 줄 알았던 친구는 놀랍게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백만 달러 원탁회의)의 약자로 1927년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시작된 생명보험업계에서 고소득 보험설계사들이 모인 전문가 단체) 달성자였습니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사람을 아직도 보이는 대로 아는 만큼만 판단하고 있는 저의 오만함과 저를 그토록 좋게 봐주는 지인한테마저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걸 제안할 기회를 주지 않은 제 뻣뻣함에 대한 실소였습니다. 시기와 동기가 결합하자 결정은 일사천리였습니다. 저는 다음날 바로 퇴사의사를 밝히고 아무 미련 없이 학원을 나왔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 개인 신상별, 진도별, 특징별 보고서를 6개월간 작성했기에 인수인계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약속된 날짜까지 지각 한 번 없이, 감정동요 없이 똑같이 수업하고 나왔기에 원장은 감사의 금일봉을 전했고 원장이 저의 퇴사소식을 전한 딱 한 명의 어머니이자 저에게 무한신뢰를 보내주신 두 아이를 둔 어머니는 허겁지겁 달려와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지막엔 눈물까지 보이셨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저는 어디에서도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자신이 있고, 또 새로 시작해도 또 잘해 낼테죠. 세상은 태도고 내가 하는 만큼 알아줍니다. 그런데 보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장 오래 근무했던 기관에서도 그랬고 퇴사 후 제가 선택한 무수한 알바들에서도 그랬습니다. 그저 달콤한 인정의 말들만 가득했지요. 사실 그 말들로 행복했고, 그 말들로 충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인정을 돈으로 환산하고 싶어 졌습니다.


면접을 보면서 혹은 1:1 교육을 받으면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이 일을 왜 하기로 했고,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 보라고요. 저는 기업들에게 정부사업을 지원하면서 혹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정해진 내용을 잘 전달하는데 타고난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고 제가 이 회사에서 알게 된 지식으로 저와 우리 가정부터 점검한 뒤 같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주고 싶다고 답변했습니다. 진심이었고 동기로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