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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16. 2016

아들이라는 미지의 세계

엄마 나는 엄마하고 달라요


뱃속 태아가 아들이란 사실에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정기간 동안 나만의 화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가 아니라 '아들'을 무슨 수로 키워야 하나. 였다. 딸로만 큰 엄마들은 아들이었던 적이 없기에 그 특징을 이해하고 제대로 이끌어주기가 쉽지가 않다. 물론 딸들이라고 해서 수월하기만 한 것은 아닐 테지만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면에서 딸들은 어쩔 수 없이 엄마 편이다. 그런 점에서 아들 엄마는 뭔가 마이너스 상태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아이를 보면 어른들이 꼭 하는 말이 있었다. 남자애라 확실히 다르다고. 그 '확실히'는 노는 폼새, 원하는 장난감, 그리고 몰입하는 방식 등을 말하는데 키우는 동안 생각이 조금 바뀌어 사실 속으로 그런 게 어딨냐고 콧방귀를 뀐 적도 몇 번 있었다. 아이의 성향이란 키우는 방식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서 남자아이도 얼마든지 세심할 수 있고 여자아이도 공주옷만 입혀주며 키우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찾아보고 이런 나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나 성향은 양육태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성별의 차'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변했다가 이유 있는 불안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우선은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자동차, 곤충, 공룡을 존중해주겠다고, 뛰어놀게 하면서 에너지를 발산시켜 줘야겠노라고 1차적인 다짐을 했다.

참 겁이 없는 아이. 미끄럼틀도 그네도 무서워하질 않았다. 남자가 되어 가는 시간 30개월

놀이터에서 땀이 흠뻑 젖도록 뛰어논 날이면 밤에 자기 싫어하는 아이가 수월하게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아 날이 풀리고부터는 될 수 있으면 삼십 분이라도 놀려주고 있다. 다행히 아이를 봐주시는 분도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해 주시거나 아침저녁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기초체력을 만들어주셨다.


나중에 검도를 취미 삼아 주면 좋을지 축구교실을 다니게 하면 좋을지 조금 이른 고민이 들 때쯤 나는 아들 엄마들의 '앞선 실사례'를 통해 아주 조금 남았던 각에서 완전히 벗어남과 동시에 불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한 달에 한 번 주말 점심에 모여 간단한 식사와 두 시간 정도 수다로 짧고 굵게 만나는 모임이 있다. 평상시에는 막내 노릇을 할 일이 거의 없지만 언니들만 있는 이곳에서만은 어리광이 늘고 질문이 많아지는 곳이다. 결혼생활도, 맞벌이도, 그리고 육아와 학부모 역할나보다 먼저 부딪혀본 언니들은 그냥 해주는 일상의 말들도 모두가 내게는 살아있는 경험이고 같은 지혜의 말들이었다. 그런 모임에서 이번 화제는 단연 '아들'이었다.


'아들'과 '딸'은 다르다. 그리고 엄청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딸 둘만 키우다 늦둥이 아들을 키운 언니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아들 때문에 위에 누나들 때는 안 가던 학교를 찾아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아이가 자주 맞고 돌아오는 게 이유였다. 누나들 밑에서 순하게 큰 아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니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친구 아이가 툭툭 건드리길 몇 번, 운동을 배운 아이의 장난스러운 손지검에 맞은 아이가 코피를 쏟았던 것이었다.


배를 맞았는데 코피를 쏟은 이유를 명확히 알 순 없었지만 스트레스인지 어쩐지 보다 그게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랬다. 선생님을 찾아간 이유는 단순했다.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상대방 엄마에게 직접 아이에 대해 불편한 말을 하는 것이 곤란해 선생님의 중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시켜도 되는 것인지, 잘못 배워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반대로 방어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겠다는 확신이 오가며 생각이 많아졌다.


바로 그때 아들 하나만 키우고 있는 언니의 또 다른 에피소드가 기다렸단 듯이 튀어나왔다. 엄마를 지켜주겠다며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장면을 흉내 내던 아들은 앞니 두 개를 날리고서야 그 행동을 그만두었. 지난 졸업식에 의치라도 하고 사진 찍을 수 있게 의사 선생님께 사정사정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웃기면서 걱정이 되고, 걱정이 되면서도 이빨이 부러졌다는 상황이 잘 실감 나지 않아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언니, 그래도 엄마를 지켜주겠다는 말이 행복하지 않으셨어요?" 동시에 "정말?"이라는 짧은 외마디가 돌아왔다. 이건 뭔가 아니다. 웃으며 바로 사과했다. 하하하. 제가 육아를 글로 배워서 이모양이네요.


그래도 너무 영악한 거보다 공부 좀 못하고 느려도 남자애들이 순하고 착하지 않아요? 다시 한 번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정말로 과연 그럴까의 준말이었을 테다. 아 진심 좌절이었다. "아 진짜 그렇게 차이나요?"


자연스레 이야기는 학습적인 부분까지 넘어갔고 나는 조금 더 현실에 직면했다. 맞고 온 아이의 둘째 누나가 이번에 중학교에 1등으로 입학을 했다. 꼭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자아이들은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욕심도 있어서 특별한 잔소리가 필요 없지만 동갑내기인 -이빨 부러진- 아들은 시키지 않으면 절대 알아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명의 언니가 공부방을 운영하며  둘의 학습을 동시에 시키고 케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 결과는 어쩐지 타당해 보였다. 엄마이자 서로에게 이모 같은 존재인 두 언니의 공통된 의견이었고 꼭 둘만이 아니라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만 봐도 대개가 그렇다고 했다. 게다가 중학교 수업의 일정 부분이 수행으로 이루어지는데 꼼꼼하고 착실하게 챙겨나가야 할 점수를 남자아이들이 알아서 다 까먹으니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잠시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생각들도 오갔다. 그래서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소신을 펼쳤다. "그 사슴이 거울을 들고 있는 그림 아래 '사슴이 땡땡땡 봅니다.'라는 문제 있잖아요. 거기에 '거울을' 넣지 않고 '미쳤나'를 넣어서 '사슴이 미쳤나 봅니다.'라고 완성시킨 시험지 짤이 너무 기억에 남는데, 그런 게 창의적이고 자기 생각이지 않아요?" 언니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런 아이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


난 이런 답을 적은 아이가 처음 본 그때도, 지금도 창의영재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아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직 학교 교육의 광풍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어쩐지 순진한 엄마의 철없는 생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까지였으면 나는 어쩌면 아들을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금방 벗어나와 그냥 자연스럽게 아이를 아이답게 마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다음은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성'에 눈뜨는 시기였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사용연령이 점차 낮아지면서 유아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물을 자주 접한다. 특히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불건전한 영상에 대한 접근이 비교적 쉬워졌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빨 부러진-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반 아이들과 컴퓨터로 음란 영상 서치를 시도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엄마의 휴대폰으로 시도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를 두고 아빠가 같이 보자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오픈시켜 주어 넘어가긴 했지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어떻게 풀어주고 다뤄줄 수 있는지는 부모가 된 지금도 정확히 답이 서질 않는다.  


"언니 나 이거 글에 써도 돼요?" "응 써. 이런 에피소드 백 개도 줄 수 있어. 매주 카톡으로 보내줄 수 도 있어." 아들에 대해 넘치는 에피소드가 있다는데 어쩐지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아, 앞으로 나는 아들과 어떤 날들을 맞이하게 될까. 미지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매우 조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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