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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14. 2016

아이를 낳고 가장 중요했던 것

아이가 말했다 "엄마, 배 뚱뚱해요."라고


아이를 낳고 내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모유수유도 아니고 산후우울증도 아닌 바로 살이었다. 내 살들. 아이를 품고 있는 동안 15킬로가 쪘다. 결혼하면서 아이를 바로 가질 생각이었었기에 식을 앞두고 다이어트는 생각도 안 해봤다. 오히려 그때도 3킬로가 늘었던 상태니 도합 18킬로가 쪘다.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 최고의 사이즈였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살은 빼면 되는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지냈다. 살이 어떻게 그렇게 찔 수 있는 건지 신기해하면서도 언젠가 전처럼 금세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데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출근 전 원상태로 회복하고 출근을 하고 싶었다. 둥실했던 산모의 모습을 깨끗이 지우고 그저 한 명의 직원으로 복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두고 한 6개월 걸려 천천히 시도했으면 좋았을 법하지만 나에게는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였고 약간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제 날짜에 규칙적인 산통을 느끼고 병원에 가야 하는 적절한 시기에 -통증이 10분 간격으로 잦아지기 전, 3cm가 열렸을 때- 딱 맞춰 여유 있게 병원에 도착한 나는 금방 아이 낳고 점심 먹게 해준다는 선생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응급상태'로 넘겨졌다. 수술대에서 회복실로 옮겨지면서 태어난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일이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끼며 마취상태에서 겨우 눈을 떴다.


그렇게 예상치도 못한 3일간의 입원을 끝내고 조리원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체중계를 재보니 딱 7킬로가 빠졌다. 아이랑 양수 무게 다 뺐는데도 이 정도면 나머지 저 살들은 뭐지? 수술하고 회복이 덜되어 몸이 부은 건가?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모유수유를 하면 살은 자연스레 빠지는 줄 알고 그때만 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는데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기 힘이 들어 자꾸만 요령이 생겼다. 원숭이처럼 팔로 짚으며 다니는 게 편해서 그게 자연스러워지던 차에 어느 날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긴팔 내의를 껴입고 수면양말에 산발머리까지, 꼭 덩치 큰 동물이 앉아있는 것 같았다. 아, 이래서 산후우울증이 오나보다, 절대로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짓은 하지 말자, 찾아오는 우울증도 들어 올 틈이 없게 정신력으로 버텼었다.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 '다이어트 워' 같은 살 빼기 프로그램을 보며 눈물을 흘렸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살이 찌고 안 빠지고의 문제는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인 줄로만 알았기에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지 조차 알지 못했다. 언젠가 살로 고민의 말을 하자 아직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지인들은 임신으로 찐 '그런' 살은 금방 빠지는 거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아해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 자연분만이 용이하도록 뱃속에서 아이를 작게 키우라고, 살찌지 않도록 조심시키는 의사들도 있다는데 출산일까지도 맘 편하게 해주셨던 고마운 선생님을 잠시 원망해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 물건도 다 준비해놓고 육아서적도 읽을 만큼 읽었던 나는 시간이 남을 때 회복에 힘쓰는 게 아니라 다이어트(식이요법 아닌 체중감량) 정보에 목말라했다.


어른들이 중시하는 삼칠일을 조용히 보내고 산모의 필요시간 6주를 최대한 몸 상하지 않게 지낸 후 대중탕에서 목욕재계를 마치고 바로 체중감량에 돌입했다. 많은 고민 중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마사지와 간헐적 단식이었다.


알고 지내는 피부샵 원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산모 관리를 따로 받을 능력도, 시간도 안되니 내가 갈 수 있는 특정 시간에 맞춰 제발 나 좀 도와주시라고. 아이가 아침 분유를 먹고 잠을 자는 두 시간을 이용해 씻지도 않고 차를 몰아 딱 마사지만 받고 돌아오길 매일 반복했다. 그러자 2주 가까이 움직이던 않던 체중계가 더디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사지가 크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늘었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지 않도록 잡아주고 회복시켜주는 데는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원장님 말씀도 그렇고, 내 생각에도 식이조절이 되지 않고는 살이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회복 중인 산모가 무턱대고 굶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출근 전 약 한 달을 앞두고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다. 먹고 싶은 걸 무리 없이 먹으면서 일정 시간을 공복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실컷 잠을 자거나 어영부영 한 끼를 지나 다음 끼니를 조금 일찍 먹으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효과는 있었다. 출근 전 딱 3킬로를 남기고 모든 살이 빠졌다. 당시만 해도 그 3킬로는 옷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 출산 전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할 수 있었다. 직원들도 놀랬다.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독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마사지 값이 아깝지 않고 살 빼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 고작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팔과 종아리가 간지러워 몇 날을 긁어대는데 이유를 알지 못하다 순간적으로 급하게 뺀 살이 원인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병원에 가보라는 성화가 이어졌고 아깝지만 식단 조절을 그만두고 몸을 회복시켜야 했다. 거짓말처럼 간지러운 피부가 나아지긴 했지만 단시간에 노력해서 뺀 살은 금세 차올랐다. 몇 달 동안 늘어났던 피부들은 다시 늘어나는 것이 자기의 숙명인양 돌아가고 싶어 했다. 좌절감이 들었다. 요가도 해보고 시간이 안 맞으면 집에서 스트레칭도 했지만 선택적 단식만큼 효과는 없었다.


삼 년이 지난 지금, 살도 계속 조금씩 오르고 체형도 완전히 바뀌었다. 세 번 정도 시도했던 간헐적 단식은 세 번 모두 피부 트러블을 동반했기에 더 이상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 몸을 빠져나가면서 체질까지 변화시켜 이젠 살도 맘대로 빼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이를 낳고 훈장처럼 생긴 살들과 퍼석해진 피부를 마주할 때면 아주 조금 슬퍼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온 것 같은 착잡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아이와 바꾼 것이기에 괜찮다는 말도 솔직히 할 수가 없다.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이므로,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만족할 수준의 모습을 찾고 싶다. 그게 나에겐 가장 중요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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