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mmy Hear 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Jun 09. 2016

아이를 맡긴다는 것

엄마, 나는 엄마가 둘이에요


휴직기간이 끝나고 출근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마음은 불안하고 회사를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등이 일었다.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데다 맡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끝맺지 못한 고민 때문이었다.   

   

사정을 알고 아이를 선뜻 맡아주시겠다고 하시는 남편의 은사님 댁은 사실 내 고려사항에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내색은 크게 안 했지만 못 이긴 척 차선을 따라야 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단지 그분이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면서 쌓인, 공유할 만한 부분이 없다는 ‘모름’에서 오는 주저였다.   

   

우연한 기회로 아이를 돌봐주실 분과 이틀을 보내게 되었다. 얼마나 잘하시나 감시하듯 바라본 건 아니었지만 노련한 손길로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저런 게 ‘엄마 모습’이구나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주저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를 맡기는 것에 대한 내 불안을 짐작하시고 티 나지 않게 먼저 다가와 주셨단 것을 알고 그 사려 깊음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역시 참 어른은 다르구나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주 5일씩 일 년 반이란 기간 동안 맡겨지고 자기 집에서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지만 지금도 '부천 엄마'를 만나러 일주일에 한 번 그곳으로 1박 2일짜리 여행을 떠난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아이를 맡기는 일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필요 물건을 계속 이고지고 다닐 수 없어 두 개씩 구입하거나 부족한 것들을 즉시 사다 날라야 했고 몸이 안되면 전국 각지 물류센터 기사분과 택배 기사분들이 동원되었다.


처음 몇 주는 내가 아이와 만들어 놓은 규칙과 습관이 깨질까 두 사람의 주변을 관찰하듯 맴도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데려다 놓던 날 A4 용지에 정리해 드린 아이의 특성과 챙겨야 할 것을 쭉 한 번 읽어보시고 사모님은 그저 웃으셨다. 그 웃음 뒤엔 육아에 대한 철학과 자신감이 녹아있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시고 불필요한 건 아이에게 적용하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나의 노력을 무시하지도 않으셨다. 차분하고 느긋하게 그저 아이와 두 사람의 교감에만 신경 쓰셨다.

     

커갈수록 아이는 엄마의 바람 이상으로 그곳을 더 좋아했다. 데리러 가는 날이면 차 안에서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며 잘 적응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고 내가 아닌 사모님을 엄마라 부르는 것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네가 있는 곳이 네 집이고 널 돌봐주는 사람이 엄마다라는 생각으로 서운해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추슬렀다. 직접 돌봐주지도 못하면서 아이의 애착 1순위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면 이 무슨 욕심인가 싶었다. 말도 못 하는 그 어린것이 나를 그저 물건 사주는 사람으로 기억할지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아이는 그래도 엄마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랑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마를 찾을 거예요.” 혹여 내가 서운할까 해주시던 말, "아이 없는 동안 불안해 말고 그 시간에 운동이라도 다녀요.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배려의 말까지 초보 엄마를 향하던 따뜻함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분유를 먹이는 동안 아이는 잘 자고 잘 먹었다. 커갈수록 입에 들어가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내가 만든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이유식을 하는 동안 집에서는 잘 먹지 못하고 오히려 주린 배를 사모님 댁에서 배불리 채웠다. 이유식을 만드시는 수고스러움이 송구스러워 시판 이유식을 배달시키면 이런 걸 왜 먹이냐고 타박을 하시기보다는 직접 만드신 것과 적절히 섞여 먹여주셨다.  

   

아이가 좀 자라나 식사를 할 줄 알게 되자 매 끼 새로 지은 밥에 감자를 하나씩 올려 아이가 스스로 떠먹을 수 있게 하시고 딱 먹을 만큼의 고기양만 살살 볶아 입맛을 돋우셨다. 아삭아삭 씹는 맛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연근을 살짝 튀겨 간식처럼 먹여주시고 매일 아침엔 토마토를 갈아 좋은 입맛을 들여 주셨다.


그러니 내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아니 부족한 부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못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아이 간식과 기저귀는 물론이고 세제부터 아이 칫솔 하나까지 모자람 없이 놓치지 않고 챙기려고 애썼다.


간단한 건 근처에서 직접 사주겠다는 것도 극구 만류했고 아이 기저귀로 넘쳐나는 쓰레기봉투 한 장도 부담케 하지 않으려 했다. 가능한 대로 아이와 놀아주는 삼촌들 간식과 사모님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제품들도 챙기려 했다. 못 보던 장난감이 생기거나 내가 사주지 않은 옷을 입고 있으면 또 아이와 멀리 이동이라도 하고 오시는 날이면 그 값을 미루어 짐작해서 바로 통장으로 이체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나의 칼 같은 정산이 아이에게 마음껏 사랑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내 자식 키우듯 대하는 마음을 하나하나 일일이 돈으로 메꾸려 하니 작은 선택도 주저하고 불편하게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날부터 목욕탕에 데리고 가 씻기신 후 음료 고르는 맛을 알게 해주실 때는 “아들 신났겠네요!” 하고 말았다. 이발시켜주시겠다고 미장원에 데려가셔서 머리 자른 사진을 보내주시면 “예쁘게 잘랐네요.” 그런가 보다 했다. 음료수 값, 미장원 비용, 입장료, 유류비까지 작은 것 하나하나 다 챙기고 보답해 드리고 싶어도 뭐가 필요하다고 말하시기 전까지 크지 않은 비용에 대해서는 나도 일절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엄마 자리를 잠시 양보하자 사모님은 진짜 엄마가 되어 주셨다. 『엄마랑 뽀뽀』란 책이 있다. 동물별로 엄마랑 아기랑 뽀뽀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각 페이지 마다 '재롱둥이 우리 아가 엄마랑 뽀뽀, 장난꾸러기 우리 아가 엄마랑 뽀뽀' 하고 쓰인 아주 단순한 책이다. 다 읽어주는데 채 1분도 안 걸리는 -내겐 매우 시시했던- 그 책을 보여주시는 모습은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어주시려고 무릎에 앉히시는 게 아니고 갑자기 아이랑 마주 보고 거북이처럼 납작 엎드리시더니 뽀뽀를 하시는 게 아닌가. 둘은 책에 나오는 모든 동물의 모습대로 흉내를 내고 있던 거였다. 원숭이가 나오는 부분은 아기 원숭이처럼 매달리게 하시고, 코끼리가 나온 모습은 그림대로 등에 태워서 뽀뽀를 했다. 얼마나 여러 번을 했는지 아이도 익숙하다는 듯이 함께 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아니 알았다고 해도 과연 해줬을까? 동물 이름만 겨우 알아도, 뽀뽀라는 행동만 알아도 충분한 책이었다. 그런데 사랑을 하면 내 수고로움 보다 상대방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크고, 책을 읽는다는 건 재미난 놀이가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도 나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책 한 권을 읽는 과정을 통해 그 간 켜켜이 쌓인 아이의 행복감이 내게도 전해졌다. 순간 먹이고 씻기고 밤이 되면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 “뭘 그렇게까지 해주세요. 힘드신데.”라고 말했다.    

  

“힘든 거 없습니다.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우리만 봐서 미안하네요.” 잠깐의 생색 같은 것도 없으셨다. "아이 엄마 아빠 때문 아니고 우리 아이가, 나는 좋아요. 그래서 그래요." 돌아오는 말도 언제나 아이 먼저, 아이 위주였다.


아이를 맡기려면 가능한 시간을 정해서 아이 봐주시는 시간을 서로 지키고 쉬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드려야 한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게 쉽지가 않았고 죄송한 걸 알면서도 늘 부탁을 하고 말았다. 저 오늘 야근해요, 저 오늘 회식 잡혔는데, 아이가 아프대요, 아이를 맡겨도 될까요?


“아이가 좋다면 나는 언제든지 좋아요.” 약속된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약속되지 않은 시간까지도 늘 언제나 3년을 꼬박 아이를 위한 대기조로 있어 주셨다. 쉽지 않으신 일을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라는 듯해주시는 게 매번, 언제나 감사였다.


아이를 맡긴다는 것. 눈감고 다른 사람의 손에 의지해 걷듯 불안하지만 믿고 우선은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모든 불안을 잠재우고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히려 아이가 더 잘 자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집에서 아이를 품에 끼고 키웠다 한 들 지금보다 더 잘 키웠을 자신이 없고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더더욱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해서 그분의 노고와 수고로움이 당연한 게 아니란 사실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는 듯 글을 쓰지만 내 아이의 8할은 사모님의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아이의 언어구사력이나 온순한 성향은 모두 그분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아이를 곁에서 지켜본 지인은 "나 그 사모님이란 분이 궁금해."라고 말해서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를 길러줄 그런 사모님을 만난 아이가 참 부럽고 고맙다. 자기 몫의 사랑을 챙겨 받은 그 아이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클 것이란 확신이 든다.


* 부천 어머님, 4월에 쓴 글을 이제야 올려요.

조심스럽고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능력이 여기까지네요. 항상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약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