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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05. 2016

아이의 두려움 헤아리기

엄마 나는 아직 잘 몰라요


삼십 대 초반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가끔은 안도의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경험치가 쌓이고 지난 과거의 시행착오들로 인해 나는 다음 선택과 결정에 좀 더 쉽게 발을 뗄 수 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닥쳤을 때 그 자리에 서서 울고만 있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위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령 없이 살아서일까, 부족한 탓이었을까 어쩌면 그렇게 하나하나 겪지 않고 지나치지 않고서는 올 수 없었던 것인지. 그런 과거들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조금 대견하기도 하고 과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아쉬움이 없다.


그래서 아이를 보다 보면 문득 짠한 마음이 든다. 내가 알기 때문에 도와줄 순 있어도 대신해줄 수는 없어 그저 바라봐야 하는 순간들이 곧 멀지 않아 줄줄이 이어질 것이 가늠되는 탓이다. 그러니 작든 크든 스스로 결심을 하거나 자기 선택만큼의 감내를 해야 하기 전 아직은 내 품에서 어리광이 가능할 때 아이의 두려움을 알아봐 주고 조금 덜 겁먹고 나아가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거 다 제쳐두어도 기억해야 할 것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단연코 아이의 입장에서 헤아리기가 아닐까 싶다.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내가 아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 놀라울 정도로 그 마음이 읽혀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이 들리는 날이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이 아이를 지켜내라고 신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바지에 응가를 하고 탁자 밑에 꼼짝없이 숨어 엄마를 부르던 아이는 내가 다가서자 겁먹은 얼굴을 한 채 다음 말을 예감한 듯 슬프게 나를 쳐다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아이에게 흔한 말로 혼내고 싶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일루와. 엄마한테 와."


그러자 안도감으로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돌며 아이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진짜 괜찮아요?"


아이의 질문 한마디에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세 돌도 안된 아이도 다 아는 것이다. 자기가 실수를 했고 엄마가 화를 낼 수 도 있지만 이해를 통해 자신이 싫은 말을 듣지 않고 그저 평온할 수 있었음을. 그렇게 예견된 호통과 울음을 잠시 건너뛰면 아이와 엄마 사이에는 생각지 못할 만큼의 끈끈한 유대가 이어져 다음 고비에서 강력한 의리로 마주한다. 그리고 아이의 선택은 반드시 엄마 쪽으로 기운다. 이번 말은 좀 들어야겠다고.


어른인 나도 참 많이 실수가 두렵고 모르는 상황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 가득한 아이에게는 매일매일이 행복한 성장이기도 하지만 매일매일이 두려움일 수도 있다. 뒷일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아이는 얼마나 두려울까. 극복이 어려워 보이는 두려운 상황 자체도 문제지만 아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막연한 예상까지도 아이에게는 모두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에겐 축적해둔 데이터가 있지만 아이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처음이 아니어도 언제나 다시 처음이다. 그 날의 기분과 시간대와 장소가 달라서 처음이고, 반응해 주는 사람이 달라서 처음이다. 그래서 아이의 어떤 행동이 실수에 가깝거나 잘못이라 느껴질 때도 그때는 왜 그랬냐고 '아이를 혼낼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본다.


어른인 나도 잘하고 있다 느껴지다가도 어느 날 문득 내 스스로 잡아먹힐 듯한 두려움을 느끼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고 새로이 밟아가야 할 것이 많은 아이의 두려움이란 얼마만큼일지 그 작은 마음속에서 매일 변화하는 심정을 나는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어른으로서, 좀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조금 친절해 줄 순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름대로의 결심을 해보는 것으로 '엄마'란 이름에 다가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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