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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ug 11. 2016

아이에게 맞는 때, 그리고 몰입의 즐거움

엄마 진짜 진짜 재미있어요


아이에게 사주게 되는 무수히 많은 물건 중에 '교육용'이라는 말과 '지능개발'이라는 말처럼 강력하게 구입을 재촉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 단어가 붙은 제품을 볼 때면 자석처럼 이끌려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힘든 것이 아이를 둔 사람의 마음이다. 거기에 더해지는 아이의 관심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입의 이유가 되어준다.


새로 산 퍼즐을 열심히 맞추는 아이를 보며 언젠가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퍼즐을 처음 구입했던 날이 떠올랐다. 아기의 모습을 아직 지우지 못하던 때의 한창 어리기만 한 아이는 퍼즐 한 조각을 유난히도 신중하게 놓았 나는 아이의 그 눈빛이 참 좋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해내고 싶고 완성하고 싶은 마음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마음이 뒤섞여 가끔은 쩔쩔매기도 했지만 고민하는 그 모습을 지켜주고 싶어 나는 귀퉁이부터 맞추라는 등의 요령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끔 전체 그림이 어떤 모양일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거드는 정도였다.


엄마가 하는 것을 흉내내기도 하고 판에 있는 모양과 조각 모양이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큼직하고 쉬운 몇 조각의 퍼즐을 완성한 아이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에서 멈췄고 몇십 조각의 퍼즐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더 큰 성취감에 목말라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퍼즐을 잘 맞춘다고 할 때 조각의 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얼마만큼의 시간 안에 맞출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외운 건지 어쩐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탁탁' 놓아 퍼즐을 맞춰나가는 아이를 보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뿌듯하고 감격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퍼즐을 사주었었다. 혹시 내 아이에게도 지능적으로 뛰어난 영재성이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서 그런 특별함은 찾을 수 없었다. 관심도도 낮았다. 그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고 엄마가 옆에 붙어 앉아 있으면서 뭐라도 해주니까 좋은 아이의 마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아이가 퍼즐 몇십 조각씩을 능숙하게 맞출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 조각 미만의 제품도 혼자 하는데 시간이 꽤나 필요했고 제대로 보관을 못한 탓에 지금은 짝이 맞지 않아 애물단지가 된 기존 것들을 보며 새로운 퍼즐 구입에 대한 필요는 어느새 마음속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나들이로 서점에 들른 아이가 별천지를 만난 양 신이나 이것저것 물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이왕 온 김에 책 한 권이나 만원 이하의 장난감 정도는 사줄 의향이 있었기에 맘껏 탐색해보라며 풀어주었는데 어쩐지 초반 집어 든 퍼즐과 공룡 책에 마음이 뺏겨 다른 것들에는 딱히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곳에서 '모형 거미'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나도 혹 했다. 평상시 거미와 거미줄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사주면 분명 좋을 제품이었다. 하지만 손바닥 반만 한 모형의 가격이 이만 원이 훌쩍 넘는데다 무엇보다 무선 조종이 가능한 제품이라는 사실이 구매를 꺼려지게 만들었다. RC 제품들은 처음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두 가지 물건을 동시에 챙겨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고 금세 닳아버리는 배터리를 구입하고 교체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 순전히 내 기준으로 사주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거 사자. 응?" 살살 달래 봐도 아이는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순간 당황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엄마도 단호했다. 구미를 당길만하고 더 저렴한 물건을 찾기 위해 엄마의 걸음이 바빠지자 아이는 내 곁에서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천천히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난, 이. 거. 살. 거. 야." 순간 오늘은 저걸 사야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엄마가 거미 안 사줄 거야. 거미 사러 온 날이 아니잖아. 퍼즐 사자. 어때? 그림이 멋진데?"

짝이 안 맞아 처치 곤란하다며 사주질 않던 엄마는 느닷없는 흥정으로 퍼즐을 내밀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런데 퍼즐 코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거미가 있던 자리로 걸어간다. 통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돈을 아껴서도 반가웠지만 내 말에 귀 기울여 준 것에 대한 안심이 무엇보다 컸다. 그리고는 다음에 왔을 때 그 제품이 없으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살짝 보이는 아이에게 제자리에 잘 두면 우리가 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고 퍼즐을 구입하고 나왔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처음부터 자신이 원했던 것이 '퍼즐'마냥 매우 신나 하며 소중히 다뤄 주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옆집 친구에게도 퍼즐을 샀다고 자랑을 하고 집에 와서는 퍼즐을 맞출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그림을 바라보았다.


퍼즐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로봇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끔은 눈에 뻔히 보이고 도가 지나친 상술에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그 간 아이를 키워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소소한 교구나 장난감들은 아이를 즐겁게 해 준 일이 더 많았다.


고맙고, 예전 퍼즐을 사주던 때의 마음 생각났다. 그래서 금방 싫증을 내고 한 두 번 하다 말더라도 절대 퍼즐 값 4,500원을 아까워하며 타박하지 않아야지 싶었다. 그런데 며칠을 두고 보니 아이는 퍼즐을 손에서 놓지 않고 추고  췄다.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했다. 심지어 오래  전에 해준 말까 기억해내어 전체 그림에서 로봇의 머리와 자동차의 일부를 구분해내는 방식 적용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정한 그때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영 인연이 없다고 단정하는 건 조금 섣부른 선택일지 모른다. 내 임의대로 한계를 짓고 다시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건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에게 ''라는  찾아왔다. 그래서 아이는 몰입할  있었고 자신만 머릿 세상에서 한껏 즐겁다. 이제 시작된 아이의 퍼즐 추기를 당분간은 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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