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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pr 26. 2016

이렇게 사는 것

기억 속의 내 모습


“너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 몇 년 만에 집으로 찾아온 친구가 한 바퀴 둘러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으면서도 그냥 나는 물었다. “왜, 뭐가?” 그리곤 웃었다. 친구는 우리 집 물건들이 일렬로 줄 맞춰 정리되어 있고 밖으로 나온 물건이 없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응, 애 키우다 보니 그러네.” 뭐라고 더  길고 장황하게 말했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길 하고 싶었던 건지, 무안한 건 아닌데 순간 아련해졌다. 예전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려는 시간을 가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나 어땠었지? 

     

“언니, 나는 언니가 반찬 사 먹을 줄 몰랐다.”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이것저것 반찬을 내놓고 있었다. 어제 새로운 반찬가게에 가봤는데 한 팩을 더 사면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얼른 더 집었다고 설명하니 친한 동생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부끄러운 건 아닌데 마음이 콕콕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던 것도 같다. 

       

지방으로 발령 난 친구가 볼 일 보러 나온 김에 집 근처까지 와 준 마음이 고마워 저녁을 함께 한 날이었다. 열심히 먹고 있는 나를 보며 느닷없이 물었다. “야, 근데 너 왜 이렇게 살쪘어?” 나는 준비라도 한 양 고작 몇 킬로 때문에 아등바등하느니 마음 놓으니까 편하다고 응수했다. 

    

지인들을 굳이 변호하자면 한 사람은 집안이 정갈하다. 한 사람은 집 밥에 사활을 걸었으며, 한 사람은 결혼 전 모습 그대로 늘씬했다. 각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고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내 모습을 그들은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래, 내가 변해있었다. 

     

그녀들이 기억하는 나는 실제 존재했고 그 말을 해 준 지인들은 나를 위해 가장 솔직한 말을 한 것이라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았지만 계기가 되긴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되었다고 핑계를 삼긴 했지만 예전의 나를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조금 느긋해지고 덜 까다로워 데서 오는 변화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맘도 조금 있다.       

나는 어떤 색깔로 살아가게 될까 이미지 : 그림닷컴


예전의 나를 고수한 채 살 필요도 없지만 가장 좋았던 모습이나 나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다시 상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기회는 굉장히 드물고 그런 점에서 나는 이런 얘기들을 사심 없이 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꾸밈없고 솔직한 지적은 나에게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스스로 불만이 없고 정말 만족하고 있었다면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좀 더 정돈되고 싶었고, 나는 좀 더 건강한 음식에 신경 쓰고 싶었으며, 나는 늘어나는 뱃살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었다. 

     

잡념이 사라지고 의식이 명확해지니 행동은 옮겨지고 변화는 바로 일어났다.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힘듦에도 기쁜 일이라면 여자로 살아가는 일은 기쁘기 위해 힘든 일인 것 같다. 놓치고 싶지 않은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는 조금 더 바빠지겠지. 달라지는 건 없다. 단지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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