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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10. 2016

엄마, 나는 엄마가 미웠어

서른여덟 딸의 늦은 고백


엄마, 나는 엄마가 미웠어 아니 가여웠어. 

그래서 짐이 되는 건 원치도 않았고 뭘 해달라고 할 줄도 몰랐어. 

일하는 엄마가 당연한 거라 받아들였지만 

엄마들이 집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우리 딸 우리 딸 하며 투박한 손으로 보살피는 시골 할머니 같은 

푸근한 엄마가 갖고 싶었어


늘 말끔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던 엄마가 

주말이면 낯선 얼굴이 되어 시체잠을 자는데 

왜 그렇게 잠이 필요한지 알 필요도 없었어. 

그건 엄마의 삶이고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였으니까


엄마, 아이를 낳으면 다들 엄마 마음을 안대 

그리고 고맙고 눈물 나고 엄마가 보고 싶어 진대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그런 감성엔 절대 젖어들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아이를 낳았었어. 참 독하기도 하지.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씻기고 먹였겠다고 

회상하며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이렇게 해주기는 

했을까 항상 의심하고 억울해했어


잔소리하지 않고 억지로 공부시키는 엄마가 아녔기에 

마음 편하게 클 수 있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그건 나를 위한 변명이었어

학교에서 하는 행사, 필요한 준비물, 

그리고 커가면서 거쳐야 할 무수한 시련들을 

하나씩 스스로 처리해 온 나를 위해 

그런 엄마라도 만들어야 내가 덜 불쌍했으니까

그래도 오빠만 편애하는 할머니와 다르게 나를 향했던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했던 엄마의 믿음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걸 모르진 않았어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젊은 날의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어

엄마는 처음부터 나한테 엄마였는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참으로 어렸더라고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걸 버텨냈네


오늘 아침 아이가 불을 켰다고,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고 

투정을 내는 모습을 보는데 화가 나기는커녕 무슨 맘인가 이해도 되고

자꾸 내 모습이 겹쳐 보여 엄마가 생각났어


나 자는데 세탁기 돌리지 말라고 배 안 고프니까 먹으란 말하지 말라고

온갖 짜증에도 나중에 기억될만한 싫은 소리 안 하고 

묵묵히 받아준 마음이 있어서 

내가 우리 아이한테 그렇게 해줄 수가 있게 됐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그때 혹여라도 밉고 싫은 말을 들었다면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나오는 말로 

우리 아이에게 상처 주고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우리 아이한테 상처 주지 않고 키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줘서 고마워 

엄마는 나에게 특별히 더 해주진 못했지만 

나를 포기하지도 않았던 거야 그치 


남들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해줘 

위 말고 아래 보고 살아 뜬구름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은 말들이 

나를 만드는 바탕이 되고 지지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단 걸 엄마가 되어 알아가


엄마도 알고 있지.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이 엄마 좋아하는 거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대단한 사람이래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는데 해맑고 순수해서 

엄마를 보면 눈물이 난대 


엄마는 기억도 안 나겠지만 백일장에 글짓기하러 가고 싶었던 적이 있어

엄마가 못 가시면 참석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회사 안 가고 같이 가줘서 글 안 써도 앉아만 있어도 나는 정말 좋았어


그 날 엄마가 쓴 글에서 엄마도 글을 쓰고 싶었단 걸 처음 알았는데  

언젠가 했던 그 얘길 기억하고 나보고 엄마 꿈을 이뤄주라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나는 글을 쓰고 

엄마는 작가라고 불러주니 우리 되게 웃기다 그치


나 같은 딸을 딸로 둬서 너무 좋다고, 

딱 원하는 딸 그대로라고 말하는 엄마한테도

나도 엄마가 내 엄마여서 좋다고 말한 적 없었는데

엄마는 좋겠다, 맘에 드는 딸이 맘에 드는 사위까지 찾아줘서


엄마 나는 오래도록 나만 잘난 줄 알고 살 줄 알았는데 

결국 깨달아 이러고 있어

몇 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 돌아와버렸어 


엄마 그래도 너무 변하지는 말자 

엄마도 계속 그렇게 살아 

하고 싶은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아주 가끔 나 김치 갖다 주면서

대신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거 잘 못 챙기잖아 

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걱정 안 끼치는 게 효도라도 

지금처럼 뻔뻔하게 살게 너무 애쓰지는 말고 살자 


미워해서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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