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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ug 03. 2016

싸이의 '아버지' 그리고 아빠

노래 하나로 떠오르는 감성


싸이를 좋아한다. 그의 재치 있는 노랫말과 라임 좋은 랩 가사들 그리고 귀에 착 감기는 선율 등 굳이 이유를 꼽지 않고 길게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나는 그가 좋다. 정확히 '강남스타일' 이전의 덜 유명하고 방송에서도 더 자주 볼 수 있었던 시절의 싸이가 좋은 것인데 이유가 없다지만 싸이가 더 좋아진 건 분명 그가 만들어준 '아버지'라는 노래 때문이다.


경제력, 자상함으로 설명되기도 하는 좋은 아버지의 자리, 이 둘의 기본 전제를 떠나 내 아버지란 존재가 노래 가사처럼 가족을 위해 그리 헌신했다고 볼 수 없을지라도 '어찌 그렇게 사셨냐'는 말에는 왠지 작은 감정의 해일이 인다. 아버지라는 이름만으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이 있어서일 거다. 


외로움. 나는 아빠를 보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세상에 혼자 놓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주변에 조언을 해줄 사람도 그렇다고 스스로 그런 힘을 키울 기회도 얻지 못한 한 남자의 외로움이 껴졌.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라는 한 마디에 아빠를 위해서는 울컥하면서 열에 열둘을 해 준 엄마에게 밉다고 고백하는 건 사실 지나친 처사 일지 모른.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내 작은 마음 움직임 하나를 보고서도 이렇게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버지'라는 노래의 가사는 한 자 한 자 음미해 볼 정도로 정성 들여 찾아들은 적 없지만 우연히 라디오에서 울려 퍼질 때면 울먹거리거나 그 자리에서 잠깐 멈칫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냥 지나간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들은 사실 유리한 출발선에 놓여있다. 엄마들은 조금만 부족해도 서운하다 느끼지만 아버지들은 조금만 잘해줘도 점수를 얻고 들어간다. 내 글을 본 엄마는 자신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나 처음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시며 눈물을 훔치셨고, 그다음엔 '나 너 진짜 남한테 맡기기도 아까워서 애지중지 키웠다'라고 억울해하시며 울음삼키셨다.


물론 안다. 엄마가 잘해줬다는 걸. 일하면서부터 돌봐주지 못했던 것이었을 뿐. 그렇게 따지면 아빠는 내 곁에 있었던 날들을 손에 꼽는다. 엄마는 돈을 버느라 없었다면 아빠는 일을 벌이느라 없었고 가장으로서 부양자로서의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나에게 좋은 아빠이고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남편으로 부족했던 것이 아빠의 역할까지 없애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정도였다. 4대 독자로 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누이들에게서 대접을 받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둘이 있을 때면 늘 몸개그를 보여주며 나를 웃겼다.


다정했고 집에 큰 결정이 있을 때도 지나가듯 제시한 내 의견을 거의 반영해 주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결정에 영향을 미쳐본 경험은 후에 내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독립적이고 자립적일 수 있도록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쟤는 차갑긴 한데 말을 들어보면 틀린 말이 없어." 


이게 나에 대한 아빠의 평가이자 시각다. 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되짚어 틀린 말이 없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나는 옛날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매너라고 생각했다.


마법에 걸린 날 밤새 뒤척였는지 실수를 해서 내놓은 이불을 화장실 욕조에 넣고 자근자근 밟아 빨고 있는 아빠를 본 적이 있다. 생리대 광고도 무안해하는 옛날 고리타분한 아빠는 딸의 실수를 아무런 타박 없이 지워내고 있었다.


태어난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지금 사랑해주면 되지 그때는 아빠도 서툴렀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다 큰 딸을 두고 보는 게 좋은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빠도 한 걸음에 달려왔을 텐데 그때 오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는 자신까지 있었다.


게다가 그런 실수라면 평생 두고 투정 거리기에 딱 좋지 않은가? 난 서운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하라고 툴툴거렸다. 그리고 그때를 잠시라도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도 그렇게 철없지만 빛나던 때가 있었노라고.


 글을 쓰기  몇 년 전에 써놓은 글 하나를 발견했다. 어릴 적 아빠와 찍은 사진과 함께 그 날 있었던 일을 요약해  글이었다. 내가 먹다 남긴 음식을 다시 들고 먹는 아빠를 보며 느낀 감정에 대한 회고였다. 이상하게도 엄마한테는 계속해서 받으며 미웠다고 말하면서 아빠한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 심지어 가끔 고마워하고 있는 모순적인 감정이 다시 한 번 발된, 이상한 날이었다.



관련글. 매거진 [나를 만들고 채우는 것들] 엄마, 나는 엄마가 미웠어 https://brunch.co.kr/@newdream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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