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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22. 2016

식물을 잘 키우고 싶다

취미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오기가 되어있었다.


화분이 죽었다. 벌써 네 개 째다. 이사 오면서 구입한 해피트리 한 그루가 일 년 간 잘 버텼기에 용기를 내었는데 잘 자랄 것처럼 보이던 화분이 처참하게 말라죽어버리자 허탈감도 들고 우선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아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과연 계속해도 되는 일일까? 처음 두 개는 5월 초 여행 때문에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라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지만 그렇다고 재빠르게 다시 살려낼 방도도 알지 못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그 예쁘던 화분이 저렇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세 번째 화분은 밤마다 좋은 향기를 풍긴다는 말에 혹해 이름도 모르고 구입했는데 집에 온 지 딱 삼일 만에 죽어버렸다. 처음엔 당황 정도에서 끝났지만 이번엔 뭔가에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화분이 또 죽었냐는 남편의 말을 살짝 무시하고 다시 화분을 사러 갈 타이밍을 머릿속으로 따져봤다.


입주한 집에 화분을 사놓고 키우겠단 생각 자체가 신기해서인지 아빠는 책장 맨 위 칸에 선반을 대서 화분을 키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셨다. 처음엔 번거롭고 너무 일을 크게 만드는 것 같아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새로운 공간은 마땅치 않고 딱 거기면 좋을 거 같아 못 이긴 척 수락을 했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나. 처음부터 정해두었던 것처럼 그 위에 작고 예쁜 화분을 죽 늘어 세워 놓으면 정말 딱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 번째 화분이 작별을 고함에도 추가로 두 개를 더 들여와 마음 졸이며 며칠을 지켜봤다. 다행히 별 탈없이 잘 자라 주었다. 그런데 나의 안심과는 다르게 남편은 정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화분을 왜 또 샀어?" "죽었으니까 샀지." 말해놓고 보니 그때서야 질문이 이해가 되었다. 처음 화분을 죽인 날 이제 저러다 말겠지 싶었던가 보다. 내가 바로 포기할 줄 알았던 것일 테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백 개 정도 죽이면 그땐 그만 둘께. 나는 지금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야."

시계를 중심으로 양쪽에 화분이 주르륵 놓여있고 각기 다른 모습이 내 눈에는 참으로 예쁘다. 새로산 장미허브(맨 왼쪽)

결국 네 번째 화분이 또 안녕을 고했고 회식이 있던 날 먼저 들어오던 길에 차를 세우고 화원으로 들어갔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처음 그때처럼 꿍꿍이를 벌이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들어가서 우선 한 바퀴 둘러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다 바로 하소연을 시작했다. "제가 화분을 다 말려 죽였어요. 진짜 집에 화분을 키우고 싶은데 물을 주란대로 줬거든요? 수, 토 날짜도 정해서 잊지 않고 줬는데 다 죽었어요."


아들 또래의 화원 집 딸아이가 엄마 주변을 맴돌며 따라다니자 나는 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너도 네 살이니? 우리 아들이랑 딱 동갑처럼 보이는데 너는 참 좋겠다. 식물 많은 데서 자라서. 그게 말이죠. 이사하면서 집에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것 같아 화분을 좀 들였는데 아이비는 죽고 트리안도 시들해지고 있어요."


뒤늦게 나온 남편 분이 나에게 이것저것 추천해주려 하시자 안주인이 조용히 남편을 쿡 쳤다. "아이비도 죽이셨대." 뭔가 한계가 정해지는 느낌. 남편분도 웃으셨다. "아 그러시구나. 근데 그걸 왜 죽이셨지?" "물을 수, 토 이렇게 주셨대." "아.. 요즘 같은 이런 날은 좀 더 주시거나 좀 보셔야 되는데."


손가락을 푹 찔러서 화분 흙을 만져보라는 말이 그렇게 참신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겉흙을 만져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판별법 같은데 내가 화분을 사러 간 곳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손가락을 쏙 넣어서 축축한 기운이 나면 아직 물을 주지 않아도 되고, 물을 줄 때는 흠뻑 주고 바닥으로 확 흘려보낸 뒤 다시 두라는 것들, 조금 더 얹어주는 설명에도 식물 초보자는 한껏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래서 냄새가 너무 좋아 혹한 장미허브 하나를 많이 퍼질 수 있게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달라고 했다. 이건 오로지 눈을 위한 것. 그리고 만 원짜리 탐스러운 스킨 하나를 수반에 담아 키우기로 하고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공기정화 역할로 임명했다. 맘에 드는 스킨 골라놓고도 수반이 없어 화원에서 새로 구입하려고 하자 처음치곤 비싸다며 그냥 다이소 같은 데서 2천 원짜리 대야 하나 사다가 키워보라는 참견도 정말 고마웠다.


아, 딱 좋다. 이렇게 제일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나에겐 가장 필요한 조언이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니 우선은 식물 키우는 재미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그러니 어떤 고민과 좌절을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잠시 우쭐할 테다.


상자에 담아 조심스레 들고 온 화분을 꺼내 자리를 잡아주고 눈에 담으며 신나 하고 있는데 남편이 현관에 들어섰다. 시치미를 뗄까 하다가 화분을 샀다고 바로 고백을 했다. 이번엔 또 샀냐는 질문도 없이 그저 웃길래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남편은 전날 하지 못한 말을 해주었다. "의지가 대견해."


죽었는데도 다시 사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키우고 싶으니까, 정말 하고 싶으니까, 아들이 사모님 댁 화분에 물 주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으니까. '목 말리지. 너도 물마셔.' 하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엄마가 아닌 분도 그렇게 좋은 영향을 주시며 키우시는데 집에서도 그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아들 핑계만 대는 것 같아 그냥 솔직한 내 심정을 말했다.


"나도 초록색 보니까 기분이 좋고 그래."


"응. 잘 키워봐. 여보."


다음엔 어떤 화분이 우리집에 오게 될지 새로 만날 식물이 아프지 않도록 공부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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