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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11. 2016

인생의 아름다운 한 때

인생은 아름다워(1999) 2015년 6월 기록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98학번으로 대학 신입생이 된 나는 그해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 꼽는 <타이타닉>을 만나고 <러브레터>에 빠진다. 그다음 해에 개봉한 영화들도 매트릭스, 식스센스 등 꽤 쟁쟁했지만 그 해는 단연코 이탈리아 출신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이야기하며 왜 신입생 시절의 영화를 언급하는가 하면 나는 스무 살 초기 시절의 그 영화들을 잊지 못하고 늘 기억하며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과거의 향수에 빠지고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는 꽤 현실에 충실하다고 여겼고 의식적으로 그러려고 노력해왔으나, 영화나 음악과 같은 취향에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새로 개봉되는 영화를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가 알고 기억하는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조금 더 즐겁고 애틋하다. 그중에서도 <타이타닉>은 몇 번을 봐도 아름답고, <러브레터>는 상상만으로도 아련해진다. 이런 걸 두고 나이가 든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 영화와 그때 영화의 정서가 다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여러 영화들 가운데 특히 이 영화는 20대 초반의 내가, 그리고 30대 중반을 넘어선 내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질 만큼 확연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 영화였다. 파시즘과 극우 민족주의가 팽배했던 1930년대 말 이탈리아. 시골 청년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친구와 함께 도시로 상경하여 우연히 ‘도라’를 만나게 되고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다.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맑고 순수한 귀도에게 빠진 도라는 그를 따라 마을로부터 도망을 치고, 둘은 아들 ‘죠슈아’를 낳아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의해 아들 죠수아와 함께 수용소를 끌려가게 된 귀도는 아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수용소 생활을 게임이라 칭하며 탱크 선물을 위해 울지 말고, 보채지 말고 기쁘게 지내자고 제안을 한다.    

죠슈아가 아빠의 말을 믿었는지, 의심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부분보다는 공포와 절망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런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초인적인 힘으로 아들을 지키려 했던 마음에 집중해 보자고 권하고 싶다. 귀도의 아들 죠슈아를 보는 내내 내 시선은 그 아이를 떠나지 못했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휴머니즘, 아이러니, 모든 것을 다 떠나 그 아이의 웃음이 그 아이를 웃게 하는 아버지의 대사만이 들리고 보였다. 처절함과 슬픔 속에서 낙관을 발견한 이 영화와 함께하며 나는 아들의 웃음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감독의 와이프가 실제로 부부 역할을 소화해 냄으로서 한 남자가 운명을 걸만큼 사랑한 ‘도라’의 역할에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세 가족이 시내를 타고 돌아내려 오는 그 모습은 살아가는 내내 머릿속에 잊히지 않은 채로 내가 가정을 꾸려 나가는데 커다란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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