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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20. 2016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쇼생크 탈출(1994) 2015년 7월 기록


오래된 영화다. 고1 때 본 영화이니 무려 20년이 넘었다. 감성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이건 내가 좋아하는 영화야!' 하고 손에 꼽는 영화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긴 시간 동안 사색의 순간이 올 때마다 이상하게도 종종 생각이 나는 영화였다. 게다가 높은 평점으로 커뮤니티에서 가끔 회자가 되곤 하니 리뷰를 써 볼 만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에 대해 논하던 그 장소에서 내가 했던 말이. “주인공이 탈출하고 자유를 느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저에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레드(모건 프리먼)’가 가석방 심사에서 의지와 열성을 다해 열심히 살겠다고 말할 때는 거절이 되다가 힘 잃고 기운 없는 표정으로 가석방 결정 여부에 의욕을 잃었을 때(체념), 그때서야 그를 풀어준 것이 너무 슬펐다.”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 내가 처했던 상황들이, 내가 내린 결정들이 나중에 얼마나 생각날지는,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전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듯 생생한 기억을 남겼단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내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중에도 이 생각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만 영화를 다시 보고 주인공의 명민함과 능력에 대해 좀 더 세세하게 알게 되면서 주인공에 초점을 맞춰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주인공은 누명을 썼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다. 오직 탈출만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것을 성취해내는 인물이며, 영화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영화가 나오고 십 수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도 보았듯이 어쩌면 더 재미나고 흥미로운 요소로 무장한 비슷한 형식의 작품은 더 찾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오랜 시간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부조리한 사회를 축소해놓은 듯한 감옥이라는 공간 설정과 자유를 갈망하는 지적인 주인공, 그리고 순응해가는 인물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이나 주변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그저 순응하며 살 것인가, 헤어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인가. 단지 발버둥 치는 것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쟁취해 낼 것인가. 쟁취하려 한다면 발버둥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전략과 기다림, 그리고 타이밍. 인생이 보이는 듯했고 뜬금없이 배우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년 전 그날,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 체념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하기보단 왜 희망에 대한 의지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무려 19년이다. 그가 탈출용 토굴을 판 기간이. 조금씩 티 내지 않고 들키지 않게 숨죽인 그의 노력이 상상만으로도 버겁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흐른 시간도 공교롭게 20년이다. 과연 나는 스스로 고수하고 간직한 어떤 신념이 있는가? 성취를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해온 나만의 길이 있는가?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고, 꾹꾹 눌러두었던 잠재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영양가 있게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 주변을 길게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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