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Jul 27. 2016

여전히 기다립니다.  

5일의 마중(2014) 2015년 8월 기록


한창 공연준비로 바쁜 연습실. 주인공 선발을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단단’은 갑자기 사무소로 불려가게 되고 먼저 와 있던 엄마와 함께 아빠 ‘루옌스’의 탈주소식을 듣게 된다. 당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딸과는 달리 10년도 넘게 연락이 끊긴 사람이라며 남편과의 접촉 가능성을 차단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눈길과 사연담은 표정은 짓는 '펑완위'(공리)이다.      


“엄마, 나에게 ‘우칭화’(주인공) 역할을 맡길까? 절대 그 사람 만나면 안돼.” 혹시라도 아빠 일로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걱정부터 하는 딸이다. 그런 딸의 부탁은 철없는 투정일까 아니면 한발 앞선 영악함일까. 상황을 파악하러 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말한다. “루옌스가 도망친 건 알고 계시죠?” 반동분자의 가족에게 감시는 시작되었고 딸은 굳게 다문 입술로 눈치껏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릴 뿐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밤, 밖에서 똑똑 문소리가 난다. 문을 열 수 없는 펑완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공리라는 여배우가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지 알 것만 같은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지 못한 엄마는 결국 남편을 만나러 가기로 다짐한다. 여태 널 위해 살았으니 이번에는 네 아빠부터 생각 해야겠다는 엄마와 얼굴도 모르는 아빠란 사람 때문에 원하던 배역을 뺏기고는 분해 견딜 수가 없었던 딸은 결국 대립한다.   

둘은 루옌스가 남기고 간 쪽지에 적힌 장소로 그를 찾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그의 직업이 교수인걸로 보아 지식인 숙청의 희생자였을 것이다). 결국 곁에 서보지도 못하고 이름만을 부른 채 잡혀갈 거였으면서 이 장면 하나까지 오는데 거의 30분이 소요되었다. 공들여 두 사람의 애절함을 이끌어 내기까진 일단 성공이지만 관객은 흡수할 주변 정보는 얻지 못한 채 그저 감독이 이끄는 대로만 따라왔을 뿐이다. 시대가 주는 아픔이란 배경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했겠지만 나는 조금 벅차고 숨이 찼다.   

        

문화대혁명의 시기, 통제와 규제 속에서 사연은 깊어지는 법이다. 그 사연의 이면까지 예상하기에 내 배경지식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장예모 감독은 간결하게 상황설명을 하고, 자국민을 위한 숨겨놓은 의도나 특유의 감성보다는 보편적인 상황묘사에 힘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루옌스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펑완위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편이 돌아오겠다고 한 매월 5일에 그를 마중하러 나가길 반복한다.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루옌스. 과거에 쓴 편지를 읽어주던 루옌스는 자신을 진짜 '편지 읽어주는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까봐 회의감에 빠진다.


“아빠, 그 많은 방법을 생각해 낸 건 엄마를 옆에서 돌보기 위해서잖아요? 그 이상 뭐가 중요해요?”      


영화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이 난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돌보는 남편. 장난 같은 슬픈 운명이지만 기다림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왠지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사연 깊은 영화라 한동안 그 여운이 지속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