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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글로 Nov 04. 2021

생계형 교사로 근근이 살아가지 않으려면...

현장에서 써먹는 실용적 이해와 교육기법을 발굴하는 책 읽기

성공적인 가르침은 좋은 관계에서 출발한다


성공적인 가르침은
좋은 인간관계에서 출발한다.


심리 치료 이론의 한 영역을 당당히 담당하고 있는 현실치료의 창시자인 윌리엄 글라써 박사는 위 명제를 단언한다. 좋은 관계에서 좋은 가르침이 생긴다는 것!



당신이 한 학생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을 때
분명한 사실은
그 학생이 학급이나 학교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학생을 잘 다루지 못한
당신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어떠한 학생도 성공할 수 있다 중)



교사가 소위 학생들이 잘 따라주지 않을 때 교사도 답답하고 힘들지만 그 잘 따르지 않는

학생도 그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대부분 그 학생은 일부러 그러지 않는다.

일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대부분의 초등학생과 유아들의 경우는 정말 그렇다.

(인간사는 늘 변화와 예외 상황이 있기에 가끔 악한 어린이도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도 그 아이의 환경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당신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건강하고,
당신이 바라는 그 이상으로 행동한다면
당신의 삶은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

(윌리엄 글라써)



학생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교사다. 교사를 통해 학생의 삶은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중요 타자로 엄마를 강조하는데 매우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가정의 울타리를 나와 처음으로 맞이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 타자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그를 시작으로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단 사람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만난다.


중요 타자(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다른 사람)는 그만큼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그 삶에 공포와 불안을 안겨 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ADHD를 비롯한 지도 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학생을 만나면?


소위 ADD(주의력 결핍장애),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ODD(반항 행동장애)라 불리는 것들은
당신이나 다른 성인들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은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 교사에게 있다.
학생들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전에,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득하기도 전에 강압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교사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교사에게 있다."라는 문장은 교사가 읽으면 상당한 반감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지가 뭘 안다고? 현장을 봤어? 현장에서 해봤어?'하고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둘 것은 윌리엄 글라써 박사는 이론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실행 전문가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소위 '문제아 학교'에(우리나라에서 소년원에 해당하는 학교) 가서 그들의 행동을 실증적으로 변화시켰다.


현실치료가 1960~1970년대 정신분석이 주름잡던 시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현장에서의 효과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ADD(주의력 결핍장애),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ODD(반항 행동장애)에 해당하는 학생이 학급에 있다면, 그 교사의 고통은 나도 안다. 20여 년의 교육 현장에서 교사에게 지도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부여하는 학생&학부모를 여러분만큼 만났다.


얼마나 그 과정이 지난한지 충분히 안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지낼 것인가?


거기에서 학생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으로 교사를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변화를 도모하는 과정이 평범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노동과 역량과 지혜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체력도 역량도 지혜도 있어야 한다. 그걸 해내기 위해서는.


결과로만 비난을 받는 것은 그간의 학생을 변화시키려 했던 교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교사의 자존감에 상처가 될 것이다.


다만, 당신이 그냥 교사가 아닌 좋은 교사라면 거기서 멈추지 말았으면 한다.

가르치는 것에서 보람과 기쁨을 얻으면서 교사 생활을 보내려면

체력도 역량도 지혜도 스스로 배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 교사이기 위해 멈추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생계형 교사로 겨우 살아가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교사의 삶 풍성하게 하기)


20년 전 학교 현장이 교사에게 10의 역량을 요구했다면 21세기 2020년대의 대한민국 교사에게는

전 영역에서 역량을 100을 요구한다. 그만큼 교사 노릇하는 환경이 매우 어려워졌다.


하지만 멈추면 그냥 교사다. 생계형 교사로 남는 것이다.

싫지만 매일 출근을 반복하는 일상의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역량을 높이려는 노력 없이 포기를 일삼다 보면 결국은 생계형 교사로 남게 되며

학교라는 교사의 직장에서의 시간들은 질적으로 교사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


우리가 교사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향상시켜야 하는 이유는 "좋은 교사"가 되기 이전에

자신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함이 먼저다.


물리적으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학교에서만 8시간에 출근 시간 왕복 1.2시간을 더하면 기본적으로 직장을 위해 하루 중 사용하는 시간이다.

거기에 집에 와서 준비하는 수업연구나 교사로서의 자기 연찬의 시간을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만 계산해도 일주에 40시간 1년간 200일 정도의 수업일수를 생각하면 1600시간.


교사로서의 역량이 학생과 학부모를 감당할 수 없다면

당신의 교사로서의 직장생활은 즐거움보다는 고통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단순히 교사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로 지내려면 교사로서 역량을 높여야 한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생계형 교사로 산다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학교의 업무 포함 학생을 대하는 일 등 모두 일의 강도가 100이라면 교사의 역량은 200을 만들면 된다.

200의 역량이면 학교에서 100을 사용하고 나머지 100을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교사의 역량이 학교에서의 여러 일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면

즉 역량이 50밖에 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그것을 다 써버리고 정작 본인의 삶에 소진할 에너지를 남길 수 조차 없다.


이것은 학폭 등의 민원에 한번 시달려 본 교사라면 뼈저리게 공감되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일에 휘말리면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한동안의 일상이 망가진다.




교사의 역량은 멈추지 않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려는 태도에서 생긴다


그래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벽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대처하고 대응하고 가르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떻게 교사로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깊은숨을 들이쉬고 마음의 공간과 시간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벽 앞에서 한탄하거나 자신이나 학생이나 학부모를 원망하거나 비난하고만 있지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행히 최근 초등의 경우는 인디스쿨이나 다양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20년 전에 비하면 그런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이 아닌 그래도 조언을 구하고 자료를 구하고 정보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멘탈의 훈련을 위해 개인 상담이나 심리적 수련하기를 멈추지 말자.

책도 읽고,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비용을 들여서라도 마음을 세상의 강력한 세풍에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좋은 교사라서가 아니라 교사 각자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교사 간의 연대 또한 강화해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지키는 것은 결국은 학생을 지키는 것이다.



책에서 발굴한 교육적 이해 


잘 가르쳐야 내 삶의 질도 좋아진다


# 가르치기 전에 긍정적 관계 맺기에 집중하자.


 매월 3월이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조언이 교사들의 마음을 흔든다. "3월에 학생들을 잡아라. 그래야 1년의 교육이 된다." 강력한 규율로 학생들을 지도해야 1년의 교육의 기틀이 잡힌다는 선배의 선배의 선배교사로부터 내려오는 고대의 신탁과 같은 말이다. 초임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 말의 위력이 최근에는 한층 옅어진 것은 그것의 효과가 실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때는 체벌이 그 강력한 규율과의 궁합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체벌은 아동학대가 되었고 그 대안은 생각보다 부실한 상태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3월의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제 그 기틀, 즉 교사의 가르침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학급 문화를 만들어갈까? 그 현명한 제안은 "긍정적 관계 맺기"다.


## 관계 맺기는 학생의 배움의 질을 정하는 것이다.


 학생의 내면이 돌로 채워져 있다면 거기에 물을 붓는다면 다 옆으로 흡수되지 않고 흘러버릴 것이다.

 그러나 내면이 스펀지로 채워져 있다면 물을 붓는 만큼 스펀지가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만큼 흡수할 것이다.


 좋은 관계는 학생의 내면의 질적인 상태를 바꾸는 과정이다. 돌에서 스펀지로 말이다.


### 학생을 배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가르치면 그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관계를 잘 맺은 학생은 교사의 말을 잘 듣기 시작한다. 그때 교육은 그 효과성이 극대화된다.


전체를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모든 학생이 100% 준비를 다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업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별적인 어떤 교육적 조치는 어떨까? 야구 선수가 투수가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를 지날 때 그 순간 휘두르는 배트의 반경 내에 들어올 때 정확하게 힘을 모아 치는 것은 순간적 타이밍이다. 개벌적 교육 조치는 그렇게 이뤄져야 효과적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조성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좋은 교사가 아니라 교사로서 질적으로 잘살기 위해 교사의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대안을 추구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벽에 부딪힐 때 좌절하고 낙담하고 자신의 멘탈의 유리를 두드리기보다는 유리멘탈의 두께를 두껍게 하자. 찾고, 모으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교사의 역량이 높아질 것이며 그에 따른 유리멘탈의 두께는 두꺼워질 것이며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유리멘탈이 될 것이다.


가르침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 멘탈의 두께는 당신을 그 좌절을 딛고 넘어서게 해 준다.


##### 역량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는다.


왜 이런 것이 교육적 이해에 들어가는지 의아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영역은 일종의 전제이자 토대다.

두 개의 심장 박지성 선수도 아무리 기량이 좋고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체력이 소진된 뒤에는 뛸 수 없다. 교사의 교육의 역량이 높아지면 에너지가 남고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있을 때 알고 있는 교육의 기술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학교는 업무며 학생의 상태며 학부모의 민원으로 힘든데 그것을 감당할 역량 부족은 아이들의 지도 시 이미 교사의 상태를 소진 상태로 몰아버리고 말지 모른다. 그래서 학생지도, 학부모 대응, 학교 업무 처리 역량이 향상이 되면 여유로운 심리와 시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상태가 교사가 최적의 교육을 학생에게 실시할 수 있는 상태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전문가의 영역이다.


###### 멈추지 않는 태도는 결국은 교사 자신을 성장시킨다.


이런 태도에서 해결의 고민을 하게 그 고민 속에서 다방면의 방법을 찾다 보면 자신과 문제 학생과의 관계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교실 환경에서 수업조차 변화하기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더더욱 멈추지 않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책에서 발굴한 교육 기술 3 : 좋은 관계 맺기


# 학생을 이해하는 관점을 지니기 1 : 공감의 메커니즘 이해하기_감정은 바람의 성취 여부에 따라 생성된다


 공감은 대체로 감정에 대한 이해 및 수용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얕은 공감 수준이다.

좀 더 깊은 공감은 그러한 감정이 유발된 바람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메커니즘을 바람의 성취와 좌절에서 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람이 이뤄질 경우 긍정적 감정을 느끼고, 원하는 바람이 이뤄지지 않고 좌절될 때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드면 어떤 학생이 '저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라는 바람을 가지고 학교에 등교하는데 그 친구가 자신과 놀아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다른 아이들도 자신도 놀지 못하게 막는다면 강력한 바람의 좌절이 발생하는 것이다(이건 따돌림이다). 따돌림이 강력한 부정적 감정을 형성하는 이유가 이렇다.

학생이 바라는 관계 맺기의 모습과 다르게 전개될 때 쉽게 부정적 감정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다.


물론 역으로 그 바람이 충족되어 잘 지내길 바라는 친구와 사이좋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그 학생의 학교에서의 관계가 만족스러울 것이고 학교 가는 것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생을 이해하는 관점 지니기 2 : 바람을 이해하면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의 감정과 그에 따른 언행에 대해 가끔 교사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교사는 학생의 바람에 초점을 두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에 따라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학년 학생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고학년 학생도 이 경우가 있고요, 때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교사에게 말하기 싫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세부적 상담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안내하기에는 분량이 많아 추후 따로 다루겠습니다)


이럴 때는 관찰을 통해 그 학생의 바람을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 학생의 바람 현실화 하기 : 바람은 현실적인 것이 있고 비현실적인 것이 있다. 현실적 바람으로 튜닝해주어라.


조금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자면 학생의 바람의 질적 상태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 너무 이상적이거나 불가능한 또는 이루기 어려운 바람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급에서 공부를 잘 못해서 부진에 속한 아이가 우등생이 되겠다든지

예시처럼 사귀고 싶은 친구가 성향이 맞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 교사는 그런 바람을 현실적으로 조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인지행동치료에서는 비합리적인 신념이라는 개념과 연결할 수 있는데요 너무 비합리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으면 실제 그것을 현실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쉽게 바람이 좌절되고 그로 인해 부정적 경험을 하기가 쉬워지는 구조이죠.


사실 우리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 빠져있는 일종의 국민적 증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생활 환경은 나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낮아지는 이유는 경제적 궁핍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제적 기준이 너무 높아서(바람) 거기에 미치는 못하는 자신의 현실(바람의 좌절)로 인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명백하게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면서도 말입니다.


이는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더 높은 상태를 기대하는 수준이 더 빠르게 높아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이나 상황이 미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람의 기준이 너무 높으면 상대적으로 바람의 좌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바람을 현실적으로 성취 가능한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해주어 성취감을 맛보도록 유도해주어야 자존감의 형성에 유리한 환경이 됩니다.



#### 도구를 활용하여 역량 높이기 & 발휘하기 : 공감대화카드를 활용하여 연습하고 익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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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많은 감정카드 자료가 많이 출시되어 있다. 그 자료의 강점이 나름 있지만 초등상담나무에서 발간하는 공감대화카드는 감정과 함께 바람을 다루도록 구분된 자료로 구성되어 있어 좀 더 심도 있는 공감에 접근하기 용이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를 활용하여 교사도 연습하고 학생도 시각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바람에 접근하도록 활용해보자.


##### 감정과 행동 분리하여 지도하기 : 학생의 문제 행동을 지도할 때의 공감은 학생의 감정에 분명한 지도는 학생의 행동에 두라.


가끔 학부모도 교사도 아이들을 공감해주다 보면 지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3월에 긍정적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긍정적 관계를 그 학생과 맺기가 힘들다는 말을 한다. 맞다. 쉽지 않다.


문제행동의 예를 들어보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때리는 습관을 지닌 2학년 남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의 문제는 "뜻대로 되지 않으면 친구를 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리는 상황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이다. 즉, 자신의 뜻대로 되게 하려고 '때리기'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떨까?

이럴 때 공감을 하라는 뜻은 그 "때리는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인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또 이때 이 학생을 지도하라는 것은 그 "때리는 행위"를 응징하라는 것도 아니다.


이 애매한 지점이 지도할 때 정말 어려운 점이며 사례마다의 온도 차이가 크게 난다.

그래서 어떤 정형적 대처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원칙은 세우고 대처에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바로 교사가 감정과 행위에 대한 분리 하여 이해하고 대처가 필요하다.


때리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은 9살이다. 아직은 문제 해결에 서툰 나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 나이에도 잘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


이 학생의 문제는 일단 문제 상황에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혹자는 "가르쳐줘도 하지 않던데요?" 소리 지르고 반항하고... 그것은 배우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격렬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배우는 아이들이 힘든 아이들이다.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우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인데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원래 자리로 가거나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르쳐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형성되는 것이다.


공감은 그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답답함이라든지, 자신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 등은 공감의 대상이다. 그러나 본인도 다른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 부분은 분명히 하고 때리는 행동은 잘못되었으며, 그렇게 때리는 행위 말고 어떻게 해결하면 자신도 상대 친구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가르쳐 주는 것이 교사의 몫이다.


때리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그 아이도 굳이 "때려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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