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라 Sep 16. 2023

사과에 쓰인 편지

어머니의 사랑은 늘 기적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보내신 택배를 받았다. 혼자 상경해 공부하는 딸을 위해 갖가지 반찬을 담아 주신 것이었다. 혹여나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셨는지, 테이프 두 겹이 작은 스티로폼 상자를 견고히 옭아매고 있었다. 주름 하나 없이 꾹꾹 눌러 붙은 갈색 테이프의 정렬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절단면의 끝에서조차 틈을 내주지 않는 굳건한 테이프 탓에 나는 필통을 뒤적여 커터칼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상자의 세 면을 그으니 조개가 입을 열듯 톡 하고 뚜껑이 벌어졌다.


    나는 천천히 상자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비닐로 한 번, 지퍼백으로 한 번 포장된 국과 반찬들이 마치 책꽂이에 정리된 책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게 묻지도 않고 보내신 택배라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들뿐이었다. 이런 신비가 어머니의 위대함일까. 나는 새삼스레 방 안의 온기를 느끼며 감사한 선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위에 얹힌 지퍼백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자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상자의 빈자리에 끼워지듯 편승한 사과 두 알이었다. 반점 같은 갈색 얼룩과 애매한 녹색 지대가 껍질을 제멋대로 칠한 채였다. 나는 모양도 크기도 다른 두 못난이 사과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분명 상자에 자리가 남아 함께 넣으셨으리라. 어머니의 사소한 살뜰함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다음 날, 수업이 일찍 끝나 집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끼니를 두세 시간 앞두고 속이 허했다. 문득 어제의 사과에 눈이 갔다. 멍하니 사과를 잘라 그릇에 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노르스름한 과육 사이사이로 꿀이 그득히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본 사과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스러운 단면이었다.


    머릿속에서 즙이 팡 터지는 듯한 기분과 함께 나는 돌연 어머니의 마음을 느꼈다. 이다지도 달콤한 자연의 선물을 한 입이라도 맛보이고 싶으셨을 그 한없는 사랑을.


    나는 입을 벌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한 조각씩 밀어 넣었다. 싱그러운 향기가 입안에서 사그라들 때쯤 방울진 눈물과 함께 그것을 삼켰다. 어머니가 곁에 계셨더라면 '별 게 다 울 일이다'라며 싱거운 핀잔을 주셨으리라. 그럼에도 내게는 눈물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소소한 기쁨까지도 나누고 싶어 뿌듯하게 눌러 담으신 사과 두 알. 아무 말 없이 보내신 택배였지만, 나는 편지처럼 사과에 담아내신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가 아니면 달리 벅찬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다는 듯, 나는 잠시간 훌쩍이고 또 미소 지으며 감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기주 작가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에게 신이 선사하는 첫 번째 기적'이라고 했다. 지극히 온당한 표현이다. 내가 처음 빛을 본 날부터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어머니의 사랑은 늘 기적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나도 모르게 들뜬 목소리를 곧장 읽어내던 두 눈동자,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온 날 현관 앞에서 묵묵히 나를 도닥이시던 주름진 손.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어쩌면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이면까지도 보인다는 듯 어머니는 늘 옅은 웃음을 머금고 계셨다.


    달콤한 기적을 음미하며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곧바로 천진스러운 답장이 도착했다. '맛있게 먹었어? 사과가 너무 비싸더라.' 생긋 웃으며 귀한 선물에 감사하다는 말로 받아치려는 찰나, 또다시 기적 같은 반짝임이 내 마음을 간질였다.


    '그래도 우리 딸이 먹고 싶다면 또 사줄게.'


    몇 마디 말로 보답할 수 있을 리 없는 그 사랑을, 나는 오래도록 곱씹었다.





꿀이 가득했던 사과와 엄마의 답장. :)






작가의 이전글 어느 밤과 레몬 향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