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세대에 대한 우리의 동경
요즘 사람들이 ‘레트로 감성’이라며 어설픈 흉내를 내곤 하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의 아날로그 유물들과 그 시절 특유의 감성은 분명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고 특별하게 여길만한 것이다. 최근 군산에 방문해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초원사진관 앞에 가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왔다. 영화에서 심은하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 영화만의 감성과 색감이 얼마나 아련한지에 대해서 90년대생인 우리들은 마치 추억에 젖듯이 한참을 이야기했다.
살아본 적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나와 내 주변의 8090 처돌이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다 보니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나 보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최근 몇 년간 레트로 감성 어쩌고가 밀물처럼 유행하는 것을 보고 그 시절의 향수와 매력은 꽤 보편적인 것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진짜 아날로그 유물을 향유하며 살았던 세대 특유의 정서와 낭만, 그들만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의 양상을 영원히 부러워하고 살아본 적 없는 시간(대략 60년대생인 나의 부모님이 20대에 대학을 다니고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90년대 후반까지의 시절)을 추억하듯 갈망하는 우리들에게는 공통된 특이점이 있다. 90년대 초반 혹은 중반에 태어나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스마트 세대에 조금 애매하게 걸친 세대로서, 유년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과 남아있는 애틋한 유물들이(빛바랜 필름 사진들, 부모님이 젊을 적 쓰던 낡은 삐삐 같은 것, 오래된 전화기, 엄마의 사진기, 편지로만 소통하던 시절의 수많은 편지 뭉치 등)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을 품고 있다는 점, 그러나 그것들이 유년기의 추억으로만 남았고 성장기에는 닿을 수 없는 추억으로 멀어져 갔다는 점, 청소년기를 거치며 아날로그적 풍경은 빠르게 일상에서 사라지고 디지털 기기와 스마트 기기에 빠르게 적응하며 성년기로 접어든 점, 그리하여 지난 시절을 동경하고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고 빠르고 복잡한 현세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90년대생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내 주변의 '8월의 크리스마스 감성 처돌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90년대 후반과 00년대 초반에 유년 시절을 보내며 그 시절 문화가 어릴 적 추억으로 남았고 10대 후반 무렵에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쥔 우리들. 10대 후반에서 성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어도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고(요즘 10대들은 날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세대 격차가 느껴진다), 문자메시지가 아닌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룹채팅이 손에 쥔 휴대폰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연락과 정보의 접근성, 연애를 비롯한 전반적인 인간관계의 양상, 모든 것을 비롯한 삶의 양상이 급변하면서 타고난 얼리어덥터가 아닌 이상 조금은 삐걱대면서 적응한 세대가 우리들이다. 'MZ세대'라는 말로 이 세대를 묶어서 설명하기에는 그 범주가 너무 넓다. MZ세대인 우리가 느끼기엔 그 분류가 더욱 세분화되어야 한다. 세분화된 분류체계 안에서도,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워서 80년대, 90년대 영화를 보며 향수에 젖어드는 우리를 부르는 말이 따로 있었으면 한다. 이전의 조금 더 느리고, 고요하고, '초연결'의 시대가 아니던 삶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어릴 때는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다수 있다 보니 내 또래 대부분이 이런 경향을 공유하지 않나 싶었는데 살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시대의 변화에 기쁘게 또 빠르게 적응하고 이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즐기는 사람이 더 많다. '메타버스'의 시대까지 도래하지 않았는가.(세상에.)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찍어준 필름으로 인화된 빛바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 그 순간을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보고, 유년기의 필름 사진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필름 사진에 대한 애정과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감 없이 공유하기도 한다. 80년대 대학가요제 노래들을 좋아하고 그 시절 감성을 동경하며 부모 세대의 "그땐 그랬지" 하는 연애담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내 친구들은 당연히 공통적으로 90년대 후반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 시절 도시의 풍경, 사람들의 차림새와 말씨와 분위기,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모든 낭만적 사건들에 마음이 동요한다.
저렇게 사랑하는 게 사랑이지, 카톡으로 사랑하는 게 이게 사랑이냐,를 외치며 지금의 사랑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를 우리는 이야기한다. 삐삐 치고 전화 오기 기다리고, 공중전화 박스 안에 초조하게 서서 전화 걸고(포인트는 상대방의 연락처를 외우고 있는 것과 동전이 떨어지면 안타깝게 전화가 끊긴다는 것이다), 꼬불꼬불 선 달린 집전화가 울리면 혹시 그 사람일까 봐 부리나케 달려가서 받고, 편지로 약속을 정하고, 약속 장소에 안 나오면 연락도 못해보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래 그런 게 사랑이지, 우리처럼 카톡으로 읽었나 안 읽었나 읽씹이냐 안읽씹이냐 논하는 게 이게, 사랑이냐,를 외치고 한탄하면서도 우리의 연애와 삶의 양상은 결국 스마트폰 없이는 무언가 이루어질 수 없고 모든 것이 빠르고 쉽고 그만큼 빠르고 쉽게 변하고, 쉽게 만들고 확인하고 지울 수 있는, 그런 양상을 띄어간다. 가끔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넘쳐나는 정보와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는, 멈추지 않고 뛰어야만 한다는 당연한 압박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80년대, 90년대 로맨스 영화가 주는 위로란 참 특별하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느리고 고요한 삶을 이어가기란 쉽지가 않고 깊이가 없다고 손가락질받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너무 복잡해져서 한 가지의 일과 하나의 감정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빠른 자극이 만연하고 그에 맞춘 빠른 반응이 요구되는 시대에 어리둥절한 채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았다. 분명 '요즘 애들'에 속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동경하는 정서가 '요즘' 것이라기엔 애매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느껴지기도 한다. 축복받은 세대라고도 하지만, 과연 우리가 축복받은 세대일까? 대학 때 내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학 교수님은 마지막 수업 때 우리를 보고 '불쌍한 세대'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삶과 연애와 일의 양상이 온갖 매체를 통해 공유되고, 경쟁과 서바이벌은 TV 프로그램에서든 현생의 매일에서든 당연한 것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기란 힘들어졌다. 그래서 살아본 적도 없는 시간이 그렇게도 그리운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부모로부터 혹은 매체를 통해 간접 체험한 80-90년대의 낭만을 동경하는 인간들은 다들 조금 지쳐있고 조금 느리게 살고 싶어 하는 인간들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는 서로에게 조금씩 더 다정하고자 하는, 각자의 속도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감사한 일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영화라며 추천했을 때 나는 '한석규가 나오는 로맨스물'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에 문득 그 친구의 말이 떠올라 혼자 집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연신 짓는 한석규와 풋풋하고 아름다운 심은하를 보면서, 초원사진관을 둘러싼 그 시절 풍경을 보면서, 이건 우리의 아날로그 세대에 대한 열망이 모두 담긴 함축물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그 친구가 왜 이 영화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살아본 적 없는 시절이 또 그립고 애틋해서 마음 한쪽이 시큰한 지경이었다. 지금은 좋은 것들이 훨씬 많아졌고 이전보다 편리한 시절인데도 그 시절을 또 마음 다해 부러워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틀어주던 비디오를 생각하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었던 때를 어렴풋이 추억하며.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사진관 사장님처럼 언제나 허허,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짓는 그런 사람은 그 시대에만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날 서고 지친 사람들을 마주하고 사람을 경계할 일이 훨씬 더 많은 지금의 우리에겐 그저 판타지 같은 존재랄까. 바보 같으리만치 순박한 웃음을 띠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느긋한 그는 판타지처럼 무해하고 부드럽다. 이 영화를 추천한 친구는 영화 속 한석규 같은 사람이 자신의 이상형이 되었다고 했다. 허허, 하고 웃는 선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
영화 속 심은하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 시절 사람들이 쓰던 특유의 말씨가 심은하의 대사마다 묻어나서 설렜다. "아저씨 사자자리죠,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던데, " 하며 사진관 아저씨에게 서슴없이 고급진 별자리 플러팅을 하는 그의 모습은 <봄날은 간다> 이영애의 '라면 먹고 갈래?'와는 또 다른 풋풋하고 당돌한 매력이었다.(별자리 플러팅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이고 우주적인가. 요즘 사람들은 별자리 이야기보단 mbti 이야기를 한다. 'mbti가 뭐예요? 저랑 mbti 궁합이 잘 맞나 검색해 볼까요?'보다는 '사자자리죠, 사자자리가 저랑 잘 맞는다던데.' 쪽이 훨씬 더 괜찮은 플러팅 아닌가? 언젠간 별자리 플러팅을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내 또래에 자기 별자리를 알고 있거나 별자리에 관해 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마음을 전할 수 없고 만날 수 없으면 더 이상 소식을 알 수 없던 시대의 누군가를 사랑하고 추억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한다. 한없이 가벼운 연락과 마음들에 대해서, 지나간 따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의 기억에 가장 진하게 남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에 제대로 된 사진 하나 남지 않았는데도, 매일을 찾아가 잠시라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에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휴대폰에 무슨 알림이 뜨는지 전혀 모른 채 함께했던 사람과의 시절이라는 걸 떠올린다. 지금 우리 세대가 그 시절 사람들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기억의 소유에 매몰된 매일의 일상에서 나는 조금 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더 애틋하게 마음을 다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일상은 아주 중요하다. 즐겁게 사진을 찍어서 SNS에 남길 수는 있지만, SNS에 남기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런 작은 의식들이 삶을, 기억을 더 풍요롭고 진하게 만든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눈밭을 배경으로 올라갈 때, 아니 그런데 어째서 <8월의 크리스마스>인가, 여름의 한가운데 나무 그늘 밑에 서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줍게 웃던 8월만으로 충분히 좋지 아니한가, 그냥 8월 한여름, 일순 없었는가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고 제목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았다. 크리스마스만큼 특별한, 그리고 외로운 가운데 반짝반짝 빛나는, 저무는 시절에 찾아온 따뜻한 사랑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