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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30. 2022

100개의 영화 단상 5. 족구왕

일렁이는 청춘의 풍경



이 영화에 관해 정말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혹은 정말 적절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나는 임용고시 2차 면접 전날에 호텔방에 누워서(임용고시 2차 수업 실연 및 면접은 각각 하루씩 이틀 동안 치러지기 때문에 본래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시험을 응시한 나는 혼자 호텔에 묵으며 이틀간 시험을 치렀다.) 휴대폰 화면으로 영화 <족구왕>을 봤다. 아마 임용고시에 응시한 적 있는 사람들은 2차 면접 전날 누워서 영화를 보다니 이게 뭔 소린가 싶거나 혹은 긴장을 풀기 위해 그럴 필요가 있다고 공감하거나 할 것이다. 수업 실연을 빠른 순번으로 치르고 나면 다음날 면접까지 시간이 꽤 남는데, 나는 오후에 호텔방에서 뒹굴거리면서 족구왕을 보고 나서 면접 관련 자료를 조금 들춰보고서 잠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임용고시에 최종 합격했지만, 당시에 수업 실연을 마치고 진이 빠진 채로 호텔에 돌아와서 침대에 드러누워 <족구왕>을 보기로 결심한 것은, 그날 했던 수업 실연이 '망했다'는 생각 때문에 허탈하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족구왕>은 그 전에도 여러 번 본 적 있는 좋아하는 영화였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수업 실연에서 시간 조절에 실패해서 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게 다 뭐하는 짓인가 싶고(추운 겨울에 혼자 낯선 도시의 호텔방에서 다음날 최종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 고단함과 외로움에 대해 자기연민이 들기도 했고) 어찌 되었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밀려들 때 '아, 족구왕이나 봐야겠다'하고 결심한 것이었다. 당시의 나의 마음은 이 영화의 정수를 이해한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영화가 주는 에너지와 메시지를 이해한다면, 그리고 다분히 위로가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 나는 밀려드는 회의감과 허탈함을 무마시킬, 씁쓸하면서도 기분 좋은 영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지친 채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손에 들고 혼자 낄낄거리고 울고 웃으며 영화를 보고 나니까 갑자기 의지와 함께 이전에는 없던 마음의 강 같은 평화가 생겨나서 캐리어에서 면접 준비 자료를 주섬주섬 꺼내어 그런대로 머릿속에 정리를 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다음날 면접은 괜찮은 컨디션과 편한 마음으로 물 흐르듯 치렀고(자포자기한 심정도 한 몫했다. 당시에는 임용고시 1차에 합격하고 2차에 응시할 때 1차 필기시험 점수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필기 점수를 모르는 상태였는데, 수업 실연에서 감점이 크다면 이미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점수를 까 보니 수업 실연에서 시간 조절 실패로 인해 감점이 된 것은 맞지만 1차 필기 점수가 높았고 면접 점수가 만점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이 면접 전날에 <족구왕>을 본 것이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긴장하지 않은 채 해탈에 가까운 상태로 구술면접에 임한 나는 여유만만한 태도로 질문마다 술술 답변을 했고 일부 문항에는 다소 강경한 답을 했다고도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면접에서 만점에 달하는 점수를 받은 것이 그 전날 수업 실연에서 감점을 받은 것을 상쇄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첫째 날에 망쳐버려서 둘째 날에 다 내려놨더니 오히려 합산으로 좋은 점수가 나오고, 중요한 시험 전날 호텔방에서 뒹굴면서 <족구왕>이나 본다고 하면 남들이 '미쳤구나' 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나에게는 결국 도움이 되고, 그렇게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것. 스스로를 위한 소신 있는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이 인생에 어떤 선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나는 그때 후련한 마음으로 면접장을 나서면서 나는 이제부터 족구왕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찌 됐든 다 끝냈으니, 그게 뭐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서, 내 주변 사람들도 내 에너지에 물들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런 스펙도 소득도 되지 않더라도 그저 미쳐서 몰두하게 하는 그런 삶을 살 거라고.

 

영화 <족구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영화가 주는 가슴 벅찬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병맛을 표방하고 B급 감성을 표방하지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매달리던 것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절망을 줄 수도 있고 성공했다는 쾌감을 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미래에 기여하고 대비하는 '스펙'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절이 흐를수록 더욱 시달리고 있지만, 우리가 꼭 그렇게 살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 어쩌면 그렇게 살 수만은 없는 시절이 인생에 있다는 것. 청춘은 아프지 않아도 되고 아픈 게 아니라 건강해야 하고, 좋아하는 것에 오로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몰두하는 경험이 비로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는 것. 그 감각을 느껴보지 못한 채 청춘을 지나쳐 살아가는 것은, 스펙을 위한 경험만으로 채워진 삶은, 청춘에 그리고 우리의 짧은 인생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저 좋아서 '족구'를 하고 싶은 복학생 만섭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의 단상을 보여주며, 취업준비장으로 변해가는 대학의 풍경을 비추며, 그 안에서 터져 나와야 마땅할 열기를 '족구'에 대한 열기로 대변하며.


나는 나름대로 낭만이 있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 흥청망청 술을 마신다고 낭만이 생기는 게 아니다. 나는 캠퍼스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을 사진에 담고 간직하는 일을 좋아했다. 공강 때 벤치나 조용한 교내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했다. 도서관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학점 관리도 하고 알바도 하고 과외도 하고 동기들과 눅눅한 학과실에서 밤새워 전공 공부를 하다가 다 같이 잠들어서 망했다고 시험장으로 헐레벌떡 뛰어보기도 하고 다른 학과의 전공 수업을 신청해 들으면서 다른 꿈을 꾸어보기도 하고, 리포트 기한을 맞추느라 24시간 카페에서 졸아보기도 하고, 하릴없이 캠퍼스를 거닐며 졸업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어쨌든 다 한 것 같다. 영화 <족구왕>이 세상에 나올 무렵 나는 대학 3학년이었고 모두가 슬슬 취업 준비나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하고 몰입할 때 나는 교환학생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든 가고 싶었고 더 큰 낭만 속에서 살고 싶었다. 미국에 가서 한껏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돌아오니 2015년 캠퍼스의 풍경은, 적어도 내 주변의 풍경은 더 이상 이전에 내가 알던 여유롭고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었다. 분명 내가 1, 2학년일 때(2012년-2013년)도 3, 4학년과 취준생은 있었을 텐데, 그때는 언제나 널널하던 도서관에 이제는 자리가 없었다. 취업시장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취준생은 해마다 누적되고 대학의 공기와 풍경이 변해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임용고시 준비에 몰입하고 변해가는 캠퍼스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나는 영화 <족구왕>을 자주 생각했다. 동기들도, 주변에 스쳐가는 사람들도, 이제 막 입학을 한 후배들도 더 이상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뤘듯이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모든 것을 '나중'으로 혹은 아예 없는 것으로 미루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몇 년 새에 이제는 캠퍼스의 낭만이란 술과 연애만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때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과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기분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고요하게 풍경을 응시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몰두하는 일,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보는 세계를 넓혀가는 일. 스펙을 쌓는 데에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도 그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적지만 분명 있었다. 그들은 점점 <족구왕>의 만섭이와 같은 존재처럼, 현실에서 동떨어진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사람들 중에 말 그대로 '노답'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서 시간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종종 대화를 나누고 좋아하는 것들을 서로 공유했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잘들 지내고 있을까. 변해가는 캠퍼스의 공기를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조금 서글펐다. 그렇게 조금씩 변해갈 테니, 캠퍼스도 사람들도. 우리는 어느 시점에는 분명 낭만보다는 현실을 좇고 효율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청춘의 시절 내내 이어진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섭이가 족구를 했듯이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일렁이는 청춘의 기쁨과 슬픔을 터트릴 수 있는 각자의 무언가를. 그것이 족구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거라면 더욱 좋다.

          

<족구왕>을 떠올리면 엔딩 장면과 함께 흐르던 노래 페퍼톤스의 '청춘'이 떠오른다. 짙푸른 봄이 돌아오면, 따가운 그 햇살 아래서, 만나리라 우리들은, 손꼽아 기다린 날처럼. 영화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테마곡은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고, 같은 원리로 영화가 그 노래를 더욱 애정하게 만든다. 청량하기 그지없는 페퍼톤스의 '청춘'을 들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나를 짓누르던 것들을 잠시 잊고 다시 조금 힘을 내서, 혹은 힘을 빼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드라이브를 할 때도 듣기 좋은 노래다. 햇살 아래 탁 트인 해안도로를 벤츠를 타고 달리던 만섭을 생각하며, 나름의 낭만이 있던 캠퍼스를 추억하며,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만섭이들과 청춘들을, 나를 응원하며.



청춘 (For 영화 족구왕) - 페퍼톤스


짙푸른 봄이 돌아오면

따가운 그 햇살 아래서

만나리라 우리들은

손꼽아 기다린 날처럼


일렁이는 축제의 풍경

춤추는 나뭇잎 아래서

만나리라 우리들은

부풀은 마음을 감추고


바람, 머리칼을 한없이 흩뜨려 놓아도

옅은 너의 미소는 -


알 수 없는 마음의 날들

반쯤 부신 눈을 비비며

만나리라 우리들은

따분한 얘기를 나누러

학생회관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뽑아

텅 빈 운동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누군가의 열린 창 틈으로 새어 나오던

트롬본의 울림이 - 라라라라라라 -


모두 좋아했던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너

여전히 그 자릴 맴도는 서투른 마음을

눈물이 날 만큼 크게 웃어버리고 나면

그땐 알 수 있기를


짙푸른 봄이 돌아오면

따가운 그 햇살 아래서

만나리라 우리들은

손꼽아 기다린 날처럼

만나리라 우리들은

모두 어제였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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