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모으는 남자

by 블루참


나는 깃털을 모은다.


사람들은 깃털에 대해 일종의 보편적 이미지 archytype이 있는데 영어로는 quill이라고 부르는 깃털이다. 우리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잉크 찍어 편지를 쓸 법한 물건을 깃털로 인식한다.


download.jpg?type=w1 이것이 퀼, 깃털과 깃대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외에 깃털의 종류나 이름을 말해 보려 하면 깃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 놀라게 된다. 괜찮다. 우린 사실 남의 털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흔히 쓰는 소가죽만 해도 부위별로 소재별로 패턴별로 카우하이드, 풀그레인, 스플릿 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뭐 우리가 살면서 깃털을 볼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점퍼에 들어있는 오리털 다운 정도 말고는.



WHIO_ACT_02_Whio_FeathersWhat_are_they_for__FeatherDIAGRAM.jpg 부드러운 다운, 뻣뻣한 비행 깃, 그 중간쯤의 컨투어



공부는 말을 모으는 것이다. 맥주를 모르고 마실 땐 생맥주 아니면 캔맥주이지만 맥주를 만들기 시작하면 간단하게는 라거와 에일, 이를 다시 필스너, 페일 에일, 브라운 에일, 사워 에일, IPA, APA, New England IPA, session, saison, bock, porter, stout, 밀맥주, 등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면 다시 생산지, 색, 홉, 몰트, 거품 특성, 투명도, 산도, 쓴맛의 정도로 분류하여 정리할 수 있게 되는데 이에 따라 서빙되는 잔의 모양이 다르고 온도가 다르고 안주가 다르게 된다.

54948bf3eab8ea5d6d0f398f.jpg 나는 다 마셔봤다.


이렇듯 사용할 수 있는 명사의 수는 우리가 대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일단 깃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 깃털에 사용하는 명칭을 꽤 여러 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chicken-feathers-patterns.jpg 딱 봐도 많다.

대개는 새의 몸에서 위치에 따라 윙, 다운, 테일, 컨투어 등으로 나누고, 그 깃의 구조와 형태에 따라 세미 플럼, 브리스틀, 필로 플럼, 퀼, 헤클, 마라보 등으로 나눈다. 새의 부위와 깃털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깊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위치의 이름이 특정 형태의 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herl, shoulder, cape, saddle, sickle 은 특정 신체부위를 의미하는 단어와 깃의 형태를 의미하는 단어가 분리되기 어렵다. 아예 깃의 형태를 깃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Sword나 stripe는 그 형태를 가리키는 이름이 깃털의 이름이 된 경우다.

f88864c0e55ba5f16bf336cebcd69015.jpg 흉악한 놈처럼 보이지만 저 털 때문에 패션계에서는 유명하다.


특정한 깃털이 유명하게 쓰여 일반명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 대머리 황새를 마라보(marabou)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얻었던 얇은 깃대 주변으로 솜털이 둥글게 감싸 보송보송 올라와있는 깃털을 마라보라고 불렀다. 패션계에서는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었고 지금도 잘 쓰이고 있지만 칠면조 털로 대체된 이후로도 여전히 마라보라고 불리고 있다.

FIG-1_large.jpg 오리 엉덩이 털 채취. 기름지고 냄새가 난다는 특징이 있다.


또는 특정한 깃털이 그 고유명사로 유독 강하게 남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CDC 깃털. CDC는 Cul de Carnard의 약자인데 말 그대로 오리의 엉덩이 털을 의미한다. 유독 부력이 좋고 털이 보드라워 플라이 낚시에 많이 쓰인다. 플라이 낚시는 바늘에 깃털을 묶어 작은 벌레처럼 보이게 하여 물고기를 잡는데 물위에 뜨는 플라이를 만드는데에 부력이강한 CDC는 아주 좋은 소재가 된다. 아마 이정도까지 알고 있다면 최소한 패션업계에 종사중이거나 플라이 낚시꾼일게다.


하지만 깃털의 이름을 기억해봐야 무슨 쓸모가 있으랴. 오리털 잠바 사러 가서 자랑스럽게 이 잠바는 페더 20프로라고 쓰여 있지만 사실은 컨투어20프로가 들어있어 라고 아는 척 할 수 있는 정도겠지. 그래도 남들이 관심없는 무언가를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최소한 잊혀지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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