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거의 10년 차가 되어간다. 2차례 이상 외국계 이직 경험이 있어서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4개월 후, 생각보다 빨리 불안감이 찾아왔다.
1. 모호함
나는 시니어 매니저와 주니어 사이의 중간다리로 입사했다. 아무도 내 역할을 정의해주지 않았다. 처음 1~2달은 딱히 책임질 일이 없기에 그저 시스템과 사람을 익히는 데에 집중했다. 이전 직장에선 수많은 미팅과 업무의 연속이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지만, 새로운 직장에 오니 마치 허니문처럼 달달했다.
3개월의 적응기간은 빠르게 흘러갔으며 곧 나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일단 내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바쁘게 무언갈 했지만, 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긴박하게 일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받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없었다. 나는 어떠한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충족하지 못한 채 자신감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2. 문제 해결사
그리고 알게 된 것은 나는 어떤 일을 처리하는 '프로세서'보다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해결사 역할로 채용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고 간단하면서 구체적으로 정리하세요.' 글쓰기 백일장
3. 자존심
제대로 배우려면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히나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식과 내 능력에 대한 자부심은 잠시 내려놓는다. 이직 후 초반에 배워놓지 않으면 나중엔 더 힘들어진다. 이는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려면 정말 어렵고 난감하다.
4. 시간
이직을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업무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존감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만족하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직하고 몇 달이 지나도 제대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지난 10년간 내가 배우고 해온 방식을 버리고 완벽하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스타트업과 같이 기존에 하던 관습이 적고 빠르게 변하는 곳이라면 운 좋게 한두 달 만에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되고 이미 구조화된 조직이라면 오래 다닌 사람조차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조급하더라도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다시 연습생이 되었고 내게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고 일 잘하는 방식을 훔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