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번갯불에 콩 볶듯' 성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클릭 한 번에 모든 수치가 계산되는 엑셀처럼, 내 인생도 투입 대비 결과가 즉각적으로 도출되기를 바랐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곧장 '잘하는 상태'가 되어야 했고, 그렇지 못할 때 느끼는 조급함은 나를 끊임없이 갉아먹었다. 조급함은 일종의 전기난로 같았다. 스위치를 켜면 금방 뜨거워지지만, 끄는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고 공기를 건조하게 만드는 그런 열기 말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내 마음속에 전기난로를 치우고 화목난로(Wood-burning stove) 하나를 들이기로 했다.
화목난로에 불을 지피는 과정은 결코 조급함과 친해질 수 없다. 우선 산책하며 잘 마른 장작을 주워 모으듯, 일상의 재료들을 수집해야 한다. 아침 8시의 고독한 독서, 테니스 코트에서 휘두른 서툰 헛스윙, 낯선 이들과 나눈 짧은 대화들. 이 모든 것들은 당장 불길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내 삶을 데워줄 소중한 땔감이 된다.
장작을 넣는다고 바로 불이 붙는 것도 아니다. 신문지를 구겨 넣고 작은 불씨를 정성껏 살려야 한다. 조금만 서둘러 큰 장작을 덥석 얹으면 불씨는 숨이 막혀 꺼져버린다. 빨리 잘하고 싶다는 조항적인 욕심이 도리어 성장의 불꽃을 꺼뜨리는 것과 같다. 기다려야 한다. 불길이 장작의 표면을 타고 올라가 제 스스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화목난로 앞에서 무릎을 맞대고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움직인 것은 불안이었지만,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늘 조급함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빨리 잘하고 싶어 안달일까?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마다 눈앞은 캄캄하다. 테니스 라켓을 잡자마자 페더러처럼 우아한 서브를 넣고 싶고,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쇼팽의 야상곡을 유려하게 완주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공 하나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도레미파솔을 더듬거리는 초보자일 뿐이다. 이 간극에서 오는 불안은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빨리 결과를 내야지",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성과를 만들어야지"라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 불안의 뿌리는 깊다. 재무회계 직무, 직장인으로 살며 나는 늘 '정확한 결과'와 '마감 기한'의 압박 속에 있었다. 오차 없는 숫자를 뽑아내야 했고, 정해진 시간 안에 결산을 끝내야만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습성이 일상을 침범한 것이다. 취미조차 내가 정복해야 할 '업무'처럼 대하고, 빠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내 가치가 증명되지 않는 것 같아 조급해졌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조급함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나는 아침 8시의 고독을 뚫고 낯선 이들 앞에 나를 던졌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코트 위를 달린다. 만약 내게 아무런 욕망도, 불안도 없었다면 나는 그저 침대라는 안온한 늪에 빠져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불안은 내가 성장을 갈구하고 있다는 '연료'였지만, 빨리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은 내 엔진을 과열시켰다. 이제 나는 그 불안이라는 연료를 화목난로 안에 차곡차곡 쌓는다. 그리고 조급함이 고개를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직 장작이 타오를 시간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테니스를 배우며 나는 내가 얼마나 '통제'에 집착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힘을 뺄 때 비로소 공이 멀리 나간다는 사실은, 직장 생활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지치지 않는다는 이치와 닮아 있었다. 또 다른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면서는 내 손가락의 둔탁함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불협화음을 견뎌야만 비로소 화음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듯, 내 인생의 서툰 시기 또한 하나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화목난로의 진가는 불이 붙은 후에 나타난다. 전기난로처럼 금방 식지 않는다. 장작이 타서 남긴 숯불은 은은하고 깊은 온기를 오래도록 품는다. 내가 읽은 책 한 권이, 내가 흘린 땀방울 한 줄기가 당장 내일의 나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땔감들이 내 안의 난로에서 서서히 타올라 숯이 된다면, 언젠가 내가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지날 때 나를 지켜줄 가장 단단한 온기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8시의 카페에 앉아 내 마음의 난로를 살핀다. 남들에게 화려한 불꽃쇼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모은 장작들이 내면을 충분히 데우고 있는지, 그 온기가 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조급함과 불안을 통과하는 중인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난로에는 지금 어떤 장작이 타고 있는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진짜 성장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깊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