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라는 가장 어려운 실력에 대하여

by 재미나

기다림은 정지가 아니라 ‘숙성’이라는 능동적인 공정이다


재무제표를 마감할 때마다 나는 숫자들의 즉각적인 대답에 익숙해져 있었다. 전표를 입력하면 합계가 나오고, 결산을 누르면 손익이 계산되는 세계. 그 0과 1의 명쾌한 세계에서 8년을 살다 보니, 내 인생도 투입(Input) 즉시 결과(Output)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정체’ 혹은 ‘실패’라고 낙인찍으며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인생의 장부에는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리드 타임(Lead Time)’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바로 기다림이다.


우리는 종종 기다림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멈춤’이나 ‘지연’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화목난로에 장작을 넣어본 사람은 안다. 겉보기에 장작은 가만히 누워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치열한 능동적인 공정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나무 속 깊이 박힌 수분을 날려 보내고, 불꽃이 파고들 틈을 만들며, 비로소 ‘온기’로 변할 준비를 하는 숙성의 시간 말이다.


기다림은 정지가 아니라, 품질을 높이는 가장 정교한 공정이다.


빨리빨리 결과물을 내며 나보다 앞서가는 ‘완벽이’들을 볼 때마다 조급함이라는 냉기가 발끝부터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저들은 전기난로처럼 금방 뜨거워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내 안의 습기를 말리며 은근하고 오래갈 온기를 만드는 중이다.”라고.


숙성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보내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8시, 나만의 공정을 가동한다.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록: 마음속에 낀 조급함과 불안이라는 불순물을 글로 써내려가며 덜어낸다.

밀도를 높이는 독서: 고전의 문장들을 장작 사이에 끼워 넣어 내 생각의 밀도를 단단하게 다진다.

감각을 익히는 서투름: 테니스 코트에서의 헛스윙과 피아노 앞에서의 실수를 '오류'가 아닌 '적응 과정'으로 장부에 기록한다.


이제 더 이상 멈춰 서지 않기로 했다. 조급함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이 숙성의 과정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남들이 터널 밖에서 환호성을 지를 때, 나는 내 화목난로 안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그 소리를 ‘성장의 배경음악’으로 삼는다.


인생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완벽한 계획은 없다. 하지만 어떤 변수에도 꺼지지 않는 단단한 온기는 오직 능동적인 기다림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당신의 기다림은 지금 어떤 맛으로 익어가고 있는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진짜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숙성의 시간 속에서 가장 뜨겁게 완성되는 법이니까.



(나만 보려고 끄적거렸던 메모..)

나는 몇 개월을 스스로 다짐하고 마음먹고 버티는 동안 누구는 며칠 만에 이 터널을 통과할 것임.

빨리빨리 계획하고 대안을 찾아서 나보다 앞서갈 것임. 타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이 생길 거임.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시기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다짐해야 해. 늦게 타오르는 만큼 더 화려하고 길게 갈 거라고 믿어야 해.


내가 가상의 완벽한 인물을 만들어 놓고, 그와 비교하면서 고통받고 있는가.

인생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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