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정체 모를 인물 '고도(Godot)'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 기다림은 지독한 허무이자 정지된 시간으로 읽힌다. 8년 차 재무회계 직장인으로 살며 성과와 결산에 목매던 시절의 나에게도, '고도'가 오지 않는 시간은 그저 버려진 기회비용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변수를 마주하며 깨달았다. 기다림은 결코 정지가 아니라, 품질을 높이는 가장 정교한 공정(Lead Time)이라는 것을.
극 중 주인공들이 무력하게 고도를 기다릴 때, 나는 내 마음의 화목난로 앞에 앉아 능동적으로 장작을 말린다. 나에게 고도는 '완벽한 결과물'이나 '타인의 인정'일지도 모른다. 그 고도가 오늘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도가 오지 않는 그 시간 동안, 나는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고전문학의 문장을 장작 삼아 내면의 온도를 높인다.
기다림은 정지가 아니라, '숙성'이라는 능동적인 공정이다.
베케트의 주인공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허무에 빠졌다면, 나는 기다림의 공간을 '시도'와 '기록'으로 채운다. 조급함이라는 냉기가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고도가 오지 않는 지금이 바로 내가 젖은 장작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라고. 나무속 깊은 수분을 날려 보내고, 불꽃이 파고들 틈을 만드는 이 숙성의 과정이 없다면, 고도가 온다 해도 나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할 온기가 없을 것이다.
빨리빨리 터널을 지나가는 '완벽이'들은 고도를 만나러 전력 질주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기다림의 길목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머무는 법을 배운다. 고도가 오든 오지 않든, 이 숙성의 시간을 통과한 나는 이미 어제보다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고도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 난로 속 장작은 어제보다 더 잘 말랐고, 덕분에 내 방의 온도는 1도 더 올라갔으니까. 진짜 성장은 고도를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고도를 기다리며 장작을 지피는 그 서툰 손길 속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