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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잘자요 Dec 12. 2024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내 안에 내가 있다ㅣ글 알렉스 쿠소/그림 키티 크라우더/번역 신혜은



처음 이 책을 접한 날은 유독 힘들었고, 또 안심했던 날 다음이었다. 일 년 동안 허리디스크로 일도 쉬고 거동이 불편했던 나에게 부모님께서 제안하셨다. 서울에 가서 이제라도 수술을 받자고 말이다. 이제 와서인지, 이제 라도인지 모른 채 복잡한 양가감정을 갖고 서울에 올라갔다. 결과는 ‘수술이 필요 없다.’였다. MRI 상으로 튀어나온 디스크가 보기에도 예쁠 정도로 잘 흡수되어 있었다. 기쁘면서도 슬펐다. 그런데 왜 몸은 여전히 지팡이에 의존해야 할 정도인가?     


다음날, 그림책 수업 시간이 됐다. 선생님께서 여러 권의 그림책을 소개해 주셨고, 보자마자 나는 이 책에 눈이 꽂혔다. 조성모의 가시나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이 가사를 보면서 항상 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딱 그 가사를 책 제목으로 옮겨놨고, 그림 또한 가시나무속에 있는 내 모습을 연상케 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나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것 같아 대신 카메라 플래시를 팡팡 터트렸다.




내 안에 있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삶의 단계를 지나올 때마다 퀘스트가 주어지듯 괴물은 그 모습을 달리한다. 나는 어떤 괴물이 올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은 과거 때문에 우울해지고, 미래 때문에 불안해진다고 한다.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예기 불안에 시달린다. 하지만 책에선 말한다. 이겨낼 때마다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고. 전에는 유채꽃인 듯했는데 이번엔 동백꽃이려나?



사람들 앞에서는 인상 깊은 책이라고 소개했는데 그때 나는 울었던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울컥 올라왔던 감정은 누르지 못하고 그날 사람들 앞에서도 눈물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그 당시에는 정확히 무엇 때문에 감정이 터져 나왔는지 잘 몰랐으나 지금 돌아보니 내 마음을 두드리는 듯한 상상이 나를 울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인 게 너무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내 안에는 나를 없애려 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문제는 우리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우린 그냥 돌만 던졌다.

말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내 안에 항상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나 같은 아이의 입은 비밀로 닫힌 문이었다.’     


‘난 사방을 찾아 헤맸다.

말들을 찾아 헤맸지만 얻은 건 침묵뿐이었다.

비밀을 찾아 헤맸지만 남은 건 공허뿐이었다.’     


내 안에서, 결정하는 건 나다’



내가 ‘바른 삶’을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생각들. 구름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초라함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살다 보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괴로워지는 경우가 있다. 나 같은 경우 이상을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해 현실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던 때가 많았다. 유독 그런 감정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날이었던 것 같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몸만 자라 비밀만 많아진 어른아이가 되었다.      


‘수술해서라도 통증을 빨리 낫게 해 줄게’라는 나를 위한 말들을 찾아 헤맸지만,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비밀들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지만, 몸이 낫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없다는 공허한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결국은 몸의 통증을, 아우성을 묵묵히 참아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울컥 눈물을 흘리고 쌓인 감정을 표현하면서 얻은 답은 있다.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그림책이 있구나, 내가 울 수 있구나, 울 수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꽤 많구나. 감정의 해소는 그 힘을 주는구나. 그게 나를 안도하게 했다.   

   



그림책은 시를 읽을 때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시는 쓰인 글로 상상하게 하지만 그림책은 말 그대로 글과 그림 모두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을 구글에 검색하면 소개가 이렇게 나온다. 심리 치유와 관련하여 자아 탐색의 서사를 풀어낸다. “내가 항상 나인 건 아니었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애매모호함이 바로 시와 그림책이 가질 수 있는 여백의 미, 함축적인 글들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림책은 0세에서 100세까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공감한 것도 바로 이 책이 시작이었다. 어른들이 읽어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림에도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에 내가 혼자서 여러 번 읽으면서 감동했던 내용들은 여러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면서 다르게 이해했구나 느꼈던 부분도 있고,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 된 덕분에 확장되기도 했다. 책 맨 앞부분과 맨 뒤 부분의 차이와 까만 아이의 복장 차이를 포인트로 두고 보시길 바란다. 책 내용에 재미와 이해를 더해주는 키 포인트이니 말이다.     


사실 나는 책이란 것은 혼자 읽고 혼자 생각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덮으면 다 읽었다 끝!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림책으로 이렇게 많은 사유와 통찰을 얻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진부하고 당연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 사실 거기서 모든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것을 끌어내는 것은 모든 예술가의 숙명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게 적어도 나한테는 너무나 성공적으로 와닿았다.


앞으로도 그림책을 통해 나의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적어도 책을 빌리거나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들을 이야기할 것이고, 내 글을 읽은 분들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오늘의 책에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진리.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가시처럼 돋은 나의 뼈 위에 삶이라는 살을 붙여나가는 것이다. 단단한 근육들은 나의 가장 큰 자산이 되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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