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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잘자요 Dec 14. 2024

나는 빠져들고 있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ㅣ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


우연찮게 이 책에 대해서 쓸 때 ‘너의 바다-크래커’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솔직히 말할게 너의 바다에 빠졌어 천천히 네 맘의 낮은 곳으로 가고 있어
솔직히 말할게 너의 세상에 빠졌어 천천히 네 맘의 깊은 곳으로 가고 있어     

하루 종일 너에게 Falling

그림책 심리 상담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나는 점점 그림책에 빠져들고 있다.

오늘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 빠져든 경험을 말해보고자 한다.



빠져든다.

나의 경우엔 보통 빠져든다고 하면 ‘몰입한다’가 떠오르는데 노랫말에서 ‘깊은 곳으로 가고 있어’로 쓰인 대목에선 ‘떨어진다, 들어간다’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애처롭고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주인공이 강물처럼 말할 때 딱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말을 더듬는 아이가 강물과 마주하며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그림책 표지 때문에 손이 갔다. 다음은 오른쪽 상단에 있는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배지에 눈이 갔다. 뭔가 있어 보이는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그림책 중 뉴욕타임스 북 리뷰가 선정하는 10권을 말한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나를 빠져들게 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2페이지를 4페이지로 순간 확장하며 그려낸 것이다.


"우와 -"


조용히 있어야 하는 장소였음에도 새어 나오는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종이 가득 ‘윤슬’과 함께하는 아이가 내 눈을 가득 채웠다. 순간 나도 같이 강물이 되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입해 버렸다. 말 그대로 ‘빠져버렸다’     


평소에도 ‘윤슬’을 볼 때면 물에 금가루를 뿌린 것 같다며 아름다움을 느끼곤 했다. 윤슬은 순우리말로서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한다. 한참 하늘거리는 윤슬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민하게 날 서있던 신경들이 풀어지는 걸 느끼곤 했다.      




다음은 표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맨 앞 그림과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 보이는 그림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쳐요.’ 그 이유는 언급하지 않겠다.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주인공의 경우에는 말을 더듬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부분이 나온다. 비웃음과 비난이 눈에 어른거리는 모습이 나는 너무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쉬이 말할 수 없는 병을 겪고 나서는 시선에 더욱 의식하게 됐고, 그림책에 표현된 어려움을 겪었다. ‘나에 대해 숨겨야 해.’ ‘나를 들키면 어떻게 하지?’ ‘나를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할 거야. 나는 그것을 견딜 자신이 없어.’ ‘그럴 거면 내가 가까워지지 않을 테야’와 같은 피해의식과 방어기제를 숨길 수 없었다.      


내가 경험했던 그 시절의 나는 사람들의 비난 섞인 표정을 정확하게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흐린 눈을 하려고 노력했다. 무언가를 들킬까 싶었던 걸까? 손을 떨기도 하고, 눈을 잘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럴 때 눈에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리면 사람들이 실루엣으로 보이고, 그림책에 표현된 것처럼 얼굴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게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보려 했던 내 모습이 기억이 났다.   

   



애처로운 발버둥.

우리는 각자가 가진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는가. 그렇게 정답이던 오답이던 우리는 답을 찾아가며 살아간다. 아이는 강물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자연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있어왔는지, 앞으로도 얼마만큼 있을지 모를 변함없는 자연에 우리는 압도당하고 겸손해지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게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지평선, 바다 한가운데서 보이는 수평선,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정상,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보이는 쏟아지는 별들, 수없이 흐르는 은하수나 옥빛의 오로라까지.     


일상에 치이는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겨우 하나의 점을 이루는 먼지 조각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이렇게 가끔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할 때서야 느낀다. 내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들은 얼마나 작고 사소한 일들인지. 몰입하는 것, 빠지는 것 중에 단연코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 한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준다. 거기서 우리는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간다.     


올해가 저물어 간다. 연말에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에 빠져보는 것도 좋지만, 자연에 빠져보며 '내 마음의 가장 낮은 곳'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Falling 해보자. 나 또한 자연의 일부분임을 느끼고, 오늘의 나는 무엇으로 말하고 있는지 집중해 보자.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치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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