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허리디스크가 많이 호전되어 어느 정도 운전을 할 수 있게 됐다. 길거리를 스쳐 지나다 보이는 현수막에 ‘달 샤베트’ 뮤지컬이 보였다. 워낙 유명한 그림책이라 내용은 몰랐어도 그림책이 뮤지컬로 나올 수도 있는 건가? 하며 신기해했다. 이참에 잊고 있던 책 내용을 되짚어보자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후회 안 할 만큼 여전히 글씨체도, 그림도 예뻤다.
나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보고만 있어도 향기가 느껴진다. 사람이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오감을 사용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느끼지 않았는데도 느껴지는 오감을 즐긴다. 그리고 남들보다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달샤베트는 열기에 녹아내리는 달을 받아 샤베트로 만들어 열대야를 극복하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옥토끼에게는 달맞이꽃으로 새로운 달을 만들어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출처 : 나무위키
작가는 왜 하필 달맞이꽃에 달 샤베트를 준 걸까? 처음에는 단순히 ‘달’ 라임이 맞아서, 아니면 이름 그대로 달맞이하는 꽃이기 때문에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가 달맞이꽃을 처음 알게 된 건 호주 여행을 갔을 때였다. 호주에서 사서 가기 좋은 기념품을 알아보는데, 그때 처음 달맞이꽃을 알게 됐다.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가 달맞이꽃인 것을 처음 알게 됐고,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그때쯤 열이 확 오르거나 잠을 못 주무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달맞이꽃은 나에게 그래서 진정제로 기억된다. 이참에 달맞이꽃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한다. 흥미로웠던 건 달맞이꽃은 정말 밤에만 꽃을 피우고 낮에는 오므라드는 꽃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것까지 고려해서 달맞이꽃을 선정했을까? 과학적으로 낭만적이다. 아, 여기서 정보 하나 더! 달맞이꽃이라고 무조건 밤에만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양한 아종이 있는데 낮에도 활짝 피우는 낮달맞이꽃 등도 있긴 하다.
이름과 꽃말이 워낙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라 관련 설화들이 다른 식물들에 비해 많다고 한다. 살펴보니 인디언 전설, 그리스 신화 등이 있는데 슬픈 사연으로 달을 몰래 사모하다 죽은 주인공들이 달맞이꽃으로 피어났다는 이야기들이 주였다.
* 달맞이꽃 꽃말 : 말 없는 사랑,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 마법, 마력
인상 깊었던 점은 그림책인데도 입체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인물 모드가 있는 것처럼 강조하고 싶은 인물이나 달 샤베트는 사실적으로 그리고 나머지 배경은 희미하게 그렸다. 그리고 대비와 명암을 잘 사용했다. 그림책 중에서도 이 부분이 단연 돋보이는 특징이라 생각한다.
동물들이 달 샤베트를 하나씩 들고 있는 장면에서는 중학교 수련회 마지막날 경험했던 촛불의식이 떠올랐다. 괜스레 부모님이 생각나고 눈시울을 붉혔던 그 추억. 각자의 집에서 달콤한 잠에 빠진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내가 편하게 잠에 들었던 어느 날들을 추억하게 했다. 최근 약에 도움을 받아도 불면을 고치지 못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잠든 모습들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림책은 매개체가 되어준다. 깊은 마음 속으로 쉬이 들어가지 못할 때 도움이 된다. 잊고 있던 내 마음을 꺼내기에도 더없이 좋다. 요새는 잡지 책장을 만들어놓고 인생 그림책을 하나하나 전시해놓고 싶은 심정이 자꾸 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달샤베트를 맞은 달맞이꽃이 밤이 되어 활짝 폈을 때였다. 달은 점에서 시작해서 초승달, 상현, 반달, 보름달이 되어갔다. 노란빛이 까만 밤하늘을 채워 갔다. 어두운 곳에서 작은 빛은 언제나 희망이다. 빛은 빛을 불러온다.
마지막까지 주목해야 할 점은 반장 할머니는 옥토끼까지 편하게 잠드는 것을 보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 달샤베트 한잔을 나눠주기 시작한 일이지만 거기서 책임감이 시작되기도 한다. 혼자 편하게 달샤베트 한잔을 마시고 편한 잠에 빠져들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밤새 참고 옥토끼의 잠까지 책임져준 것 아닌가?
누군가의 밤을 위해 자신의 밤을 희생한 반장 할머니. 오늘도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누군가의 밤을 꺼주는 모든 반장 할머니에게 달샤베트 한잔을 건네고 싶다. 유독 추운 요즘과 같은 겨울에는 이냉치냉이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