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달 쌤 수영장| 봄느루 글, 그림
정말 뜨거운 여름이다. 물놀이가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 됐다. 허리디스크에도 조울증에도 수영이 좋은 걸 알면서도 쉬이 시작하질 못한다. 물이 딱히 무서운 건 아니지만, 죽을 뻔한 적도 있었기에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사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고, 새롭게 뭔가를 해야 하나 하는 조급함이 밀려들었다. 그 참에 수영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다시 시작할까, 말까? 나는 새로운 시작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비단 수영에 국한된 말이 아니여서이다.
나는 아직도 물가에서 망설이고 있다.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숨 쉬어야 할지조차 모른 채 말이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헤엄치고, 또 누군가는 벌써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음을 바라만 본다.
그런 나에게 《해달 쌤 수영장》은 아주 특별한 책이었다.
이 그림책은 유난히 조용하다. 사건이 크지 않고, 갈등이 격렬하지 않다.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수영이 무섭고, 물이 낯설다. 친구들은 점점 더 깊은 쪽으로 나아가지만, 그는 따라가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런 주인공에게 해달 쌤은 말한다.
“괜찮아, 너만의 속도로 해도 돼.”
그 한 문장이 마음에 똑, 하고 떨어졌다.
아이를 향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내게도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너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속도를 강요받는다. 학교에서는 진도를 따라잡아야 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 SNS에서는 ‘느긋한 삶’조차 남보다 더 세련되게, 더 여유롭게 살아내야 하는 일처럼 보인다. 이런 세상에서 “너만의 속도로 괜찮아”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선 선언처럼 다가왔다. 나를 나답게 지키겠다는 작고 단단한 다짐 말이다.
《해달 쌤 수영장》의 진짜 힘은 바로 ‘기다림’에 있다.
해달 쌤은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 옆에서 묵묵히 함께 있어준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고, 물에 발끝만 담가도 괜찮다.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물과 친해질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 다정한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물과 조금씩 친해지고, 마침내 자기만의 속도로 헤엄을 시작한다.
내 인생에도 그런 ‘해달 쌤’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의 해달 쌤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느리게 걷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무리한 도전에 스스로를 밀어 넣지 않으며, 지금의 속도와 숨을 인정해 주는 어른. 외부의 기준보다 내 내면의 박자에 귀 기울이며, 잠시 멈춰 설 때조차도 조급하지 않은 사람.
숨 한 모금 마시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에겐 철칙이 있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는 것. 자신의 폐활량을 정확히 깨닫는 것.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미역 따는 해녀와 전복 따는 해녀는 따로 있다. 미역만 딸 수 있는 해녀가 더 깊은 물에서 자라는 값비싼 전복을 탐내다 보면 목숨을 잃게 된다. ‘숨’은 냉정하다.
정신적 에너지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폐활량이 정해져 있듯 내게 주어진 정신적 용량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양된 감정, 넘치는 활력, 고갈되지 않는 아이디어 같은 조증의 에너지를 계속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이주현 - 밀리의 서재
나만의 속도로 산다는 건 결국 나 자신과의 관계를 바꾸는 일이다.
비난이 아닌 신뢰로, 비교가 아닌 격려로, 나는 나를 대해야 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시간표에서 한참 뒤처진 것처럼 보여도, 내가 나의 속도에 집중한다면 그건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단단한 방향성이다. 자신만의 호흡으로 물을 느끼는 사람만이, 정말 편안하게 수영할 수 있다.
나는 아직 물이 무섭고, 때때로 익사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해달 쌤의 말처럼, 서두르지 않고, 내 속도로 천천히 물과 친해져 보기로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너, 도 너만의 속도로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