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서는 법을 배울 시간

by 푸린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늘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왔다. 처음엔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주 무너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움을 받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해졌고, 어느 순간 그 익숙함이 나에게는 문제가 되어 있었다.



조울증으로 인해 무절제하게 늘어난 빚은 부모님이 대신 갚아주셨고,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냉장고 청소를 해주거나 거금을 빌려주기도 했다. 친구는 밤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상담사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곁을 지켜주었다. 그들은 분명 나를 사랑했고, 나 또한 그들의 존재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혼자인 줄 알았던 나는 그 따뜻한 손길 속에서 사랑을 배웠고, 그 사랑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점점,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굳어져 갔다. 카드값이 밀려도 ‘누군가는 도와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먼저 떠올랐다. 도움을 받지 못하면 다른 대출을 찾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배달 앱을 열며 이번 달도 예산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불안감은 오히려 소비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켰고, 나는 지출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위기의 순간마다 나는 누군가의 “괜찮아”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 마디가 나를 구해주길 바랐고, 나는 그런 기대 속에서 스스로 서는 법을 조금씩 잊어갔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무너졌을 때, 왜 이렇게 아픈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내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감각 자체를 잃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상담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씨는 혼자 결정할 때 불안해하죠. 그 불안을 견디는 게 지금의 숙제예요.”


나는 ‘혼자 결정하는 나’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늘, 누군가에게 묻곤 했다.

“이사 여기 가도 될까요?”
“이 일, 그만둬도 괜찮을까요?”
“지금 만나는 사람, 계속 봐도 될까요?”


그 질문들 속에 담긴 건 결국 하나였다.
‘나는 틀릴까 봐 무서워요.’




일상의 부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 뭐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카드값이 얼마나 밀려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다. 한 달 지출이 얼마인지, 왜 그만큼 썼는지 들여다보는 일조차 두려웠다.
머릿속에는 늘 “이번 달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만이 떠다녔다.

그러면서도 돈을 썼다. 작은 지름, 필요 없는 정기구독, 언젠간 쓸 것 같은 잡동사니들. 그리고 월말이 되면 부족한 잔고를 확인하고 나서야 절망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상담사 선생님이 상담료의 일부를 지원해 주셨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의 수퍼바이저는 “어차피 다른 데 쓸 돈 아니냐”며 지원을 반대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오기가 생긴 나는 지출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그 후부터 상담실에서 돈을 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하는 망설임이 생겼다.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고마움과 함께 묘한 불편함도 불러왔다. 누군가가 대신 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내 마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까지 조금씩 줄여버린 것 같았다.


친구가 나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줄 때도,
‘이젠 나도 그만 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내 마음을 위축시키고, 내 존재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도움을 받는 것과, 기대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선의를 받기보다는, 그들에게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지면 나 또한 함께 쓰러지도록 구조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구조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다. 완전한 독립을 꿈꾸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내 삶의 방향만큼은 내가 정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삶. 그 삶의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실천부터 시도해보고 있다. 카드값이 밀리기 전에 직접 내역을 확인해본다. 이번 달은 식비를 절반으로 줄이기 등의 목표를 정하고, 가능한 한 실천하려고 애쓴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면 특근비 뿐 아니라 식대도 제공되기에 이를 십분 활용했다. 뿐만 아니다. 소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배달. 결제를 누르기 전, 냉장고를 먼저 열어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들여다본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배를 채우고, 동시에 정서적인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단순히 밥에 김을 싸 먹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 아직은 그 불안감으로 밥을 많이 먹을 때도 있지만, 무의미한 배달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익숙해지면 체중 감량을 위해 밥의 양도 서서히 줄여볼 생각이다.


계획을 세울 때도,
“이 정도면 괜찮을까?”를 누군가에게 묻기 전에
“이건 지금 내 상태에 무리 없는 걸까?”를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려고 한다.


혼자 선다는 건 여전히 외롭고 낯설다.

하지만 그 속엔 분명, 내 감정과 삶을 지킬 수 있는 균형감각이 자라나고 있다.

나는 지금, 그걸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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